25-1 人苟有朝聞道夕死可矣之志면 則不肯一日安於所不安也니 何止一日이리오
須臾도 不能이니 如曾子易簀이 須要如此라야 乃安이니라
道者
는 事物當然之理
니 苟得聞之
면 則
하야 無復遺恨矣
리라
25-2 人不能若此者는 只爲不見實理니 實理者는 實見得是하고 實見得非라
愚謂 本以人心見處而言하니 惟實見是非之理然後에 爲實理라
若耳聞口道者는 心實不見이니 若見得이면 必不肯安於所不安이라
人之一身이 儘有所不肯爲로되 及至他事하야는 又不然하나니 若士者는 雖殺之使爲穿窬라도 必不爲로되 其他事엔 未必然이라
至如執卷者 莫不知說禮義
하며 又如王公大人
이 皆能言
外物
이로되 及其臨利害
하야는 則不知就義理
하고 却就富貴
하나니 如此者
는 只是說得
이요 不實見
이라
須是有見不善如探湯之心
注+論語季氏篇에 孔子曰 見善如不及하며 見不善如探湯이라하니라이면 則自然別
이니라
昔〈有〉曾經傷於虎者러니 他人語虎에 則雖三尺童子라도 皆知虎之可畏나 終不似曾經傷者의 神色懾懼하야 至誠畏之하니 是實見得也니라
此一節은 反覆推明實見之理 最爲親切하니 學者要亦察理之明하고 立志之剛하야 知行幷進하야 豁然有悟然後에 所見이 爲實見이니 充其所見하면 死生利害 皆不足以移之矣리라
25-4 得之於心이 是謂有德이니 不待勉强이어니와 然學者則須勉强이라
古人이 有捐軀隕命者하니 若不實見得이면 則烏能如此리오
故有殺身成仁
注+論語衛靈公篇에 子曰 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이요 有殺身以成仁이라하니라하니 只是成就一箇是而已
니라
心有實見而後에 謂之有德이니 此則不待勉强이어니와 學者實見이 有所未盡이면 則亦勉而行之可也니라
25-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사람이 진실로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는 뜻을 간직한다면 단 하루도 편안하지 않은 일에 편안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다만 하루뿐이겠는가.
잠시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증자曾子의 역책易簀과 같은 것은 모름지기 이와 같이 하여야 편안한 것이다.
“도道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만일 이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아서는 순하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다시 유한遺恨이 없을 것이다.”
25-2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진실한 이치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진실한 이치를 본다는 것은 옳음을 실제로 보고 그름을 실제로 보는 것이다.
“실리實理와 실견實見이 같지 않으니, 기록에 글자가 누락된 듯하다.”
내가 생각하건대 본래 인심人心의 보는 곳을 가지고 말씀하였으니, 옳고 그른 이치를 실제로 본 뒤에야 진실한 이치가 되는 것이다.
이치는 진실하지 않음이 없지만 다만 봄이 진실하지 못함이 있을 뿐이다.
25-3 언제나 진실한 이치를 마음속에 얻으면 스스로 달라진다.
만약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기만 하는 자는 마음속에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이니, 만일 보았다면 반드시 편안하지 못한 곳에 편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한 몸이 참으로 즐겨 하지 않는 것이 있으나 다른 일에 이르러서는 또 그렇지 못하니, 예컨대 선비는 비록 죽인다고 위협하면서 담을 뚫거나 담을 넘어가 도둑질을 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하지 않을 것이나 다른 일에는 반드시 이렇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책을 잡고 글을 읽는 자가 예의禮義를 말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또 왕공대인王公大人(고관대작)들이 모두 헌면軒冕(富貴)은 외물外物이라고 말하나 이해利害를 당하면 의리義理로 나아갈 줄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부귀富貴로 나아가니, 이와 같은 자는 다만 말만 하고 실제로는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수화水火를 밟음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모두 피하니, 이는 실제로 본 것이다.
모름지기
불선不善을 보거든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니,
注+《논어論語》〈계씨편季氏篇〉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선善을 보면 미치지 못할 듯이 하고 불선不善을 보면 끓는 물에 손을 넣어 더듬는 것처럼 해야 한다.” 하였다. 그러면 자연 달라질 것이다.
옛날에 일찍이 범에게 부상당한 자가 있었는데, 딴사람들은 범을 말할 때에 비록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모두 범이 두려울 만한 것인 줄 알았으나 끝내 일찍이 범에게 부상당한 경험이 있는 자의 정신과 얼굴빛이 두려워하여 지성至誠으로 두려워하는 것과는 같지 않았으니, 이것이 실제로 본 것이다.
이 한 절節은 반복하여 실제로 보는 이치를 미루어 밝힘이 가장 친절하니, 배우는 자가 또한 이치를 살피기를 밝게 하고 뜻을 세우기를 강하게 하여 지행知行을 병진竝進해서 활연豁然히 깨달음이 있은 뒤에야 보는 바가 실제로 봄이 될 것이니, 그 본 바를 채우면 사생死生과 이해利害가 모두 마음(지조)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25-4 이것을 마음에 얻은 것을 덕德이 있다고 이르니, 〈덕德이 있는 자는〉 억지로 힘쓸 필요가 없거니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억지로 힘써야 한다.
옛사람 중에는 몸을 버리고 생명을 바친 자가 있으니, 만약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사는 것이 의義보다 중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죽음보다 편안하지 못함을 실제로 보았다.
그러므로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注+《논어論語》〈위영공편衛靈公篇〉에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룸은 있다.” 하셨다. 경우가 있는 것이니, 다만 하나의 옳음을 성취할 뿐이다.”
마음에 실제로 봄이 있은 뒤에 덕德이 있다고 이르는 것이니 이는 억지로 힘쓸 필요가 없거니와, 배우는 자는 실제로 봄이 미진한 바가 있으면 또한 힘써서 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