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孟子辨舜跖之分
호되 只在義利之間
注+孟子盡心上曰 欲知舜與跖之分인댄 無他라 利與善之間也라하니라하니 言間者
는 謂相去不甚遠
하야 所爭毫末爾
라
義與利
는 只是箇公與私也
니 纔出義
면 便以利言也
注+問利與善之間한대 曰 不是冷水면 便是熱湯이니 無那中間에 溫呑煖處也니라라
只那計較 便是爲有利害니 若無利害면 何用計較리오
利害者는 天下之常情也니 人皆知趨利而避害어니와 聖人則更不論利害하고 惟看義當爲不當爲하나니 便是命在其中也니라
는 義也
요 有所爲而爲之者
는 利也
注+朱子曰 此言은 蓋可謂擴前聖之未發하야 而同於性善養氣之功者歟인저니라
愚謂 義之與利 始於毫釐之差로되 實則霄壤之判이라
有心於計較利害
注+按 計較上에 不須加有心字라者
는 卽是人欲之私
니 有所爲而爲者也
요 不論利害
하고 惟義所在者
는 卽是天理之公
이니 無所爲而爲者也
라
固不論利害어든 況義如是則命亦當如是니 又何趨避之有리오
26. 〈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
맹자孟子가
순舜임금과
도척盜跖의 구분을 분별하시되 다만
의義와
이利의 사이에 있었으니,
注+《맹자孟子》〈진심盡心 상上〉에 “순舜임금과 도척盜跖의 구분을 알고자 한다면 딴 것이 없다. 이利와 선善의 사이이다.” 하였다. 사이라고 말씀한 것은
상거相去가 그리 멀지 않아서 다투는 바가 털끝만할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의義와
이利는 다만 하나의
공公과
사私이니, 조금이라도
의義에서 벗어나면
이利라고 말할 수 있다.
注+이利와 선善의 중간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냉수冷水가 아니면 곧 열탕熱湯이니, 중간에 더운 것이 따뜻함을 삼킨(미지근한) 곳은 없다.”
다만 계교計較(계산하고 비교함)하는 것은 곧 이해利害가 있기 때문이니, 만약 이해利害가 없다면 어찌 계교計較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해利害를 계교計較하는 것은 천하天下사람들의 떳떳한 정情이니, 사람들이 모두 이익에 나아가고 해를 피할 줄을 아나 성인聖人은 다시 이해利害를 논하지 않고 오직 의리상義理上 마땅히 해야 하는가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볼 뿐이니, 명命이 이 가운데에 들어 있다.”
“위한(목적한) 바가 없으면서 하는 것은
의義이고 위한 바가 있어 하는 것은
이利이다.”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장남헌張南軒의〉 이 말씀은 옛 성인聖人이 미처 발명하지 못한 것을 확충하여 성선性善과 양기養氣의 공功과 같다고 이를 만하다.”
내가 생각하건대 의義와 이利는 털끝만한 차이에서 시작되나 실제는 하늘과 땅처럼 판별된다.
이해利害를
계교計較함에 마음을 두는
注+살펴보건대 계교計較 위에 굳이 유심자有心字를 가할 필요가 없다. 것은 바로
인욕人欲의
사私이니 위한 바가 있어서 하는 것이요,
이해利害를 논하지 않고 오직
의義가 있는 대로 하는 것은 바로
천리天理의
공公이니 위한 바가 없으면서 하는 것이다.
진실로 이해利害를 논하지 않는데, 하물며 의義가 이와 같으면 명命도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니, 또 어찌 나아가고 피함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