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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2)

근사록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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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1 比之九五曰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注+ 五居君位하고 處中得正하니 此道之善者也니라 ○ 或問 伊川解顯比 王用三驅 失前禽호되 所謂來者撫之하고 去者不追라하야 與失前禽而殺不去者 所譬頗不相類하니 如何잇고 朱子曰 田獵之禮 置旃以爲門하고 刈草以爲長圍하니 田獵者自門驅而入이어든 禽獸向我而出者 皆免하고 惟被驅而入者皆獲이라 故以前禽으로 譬去者不追하고 獲者 譬來則取之 大意如此하니 無緣得一一相似 伊川解此句 不須疑니라이라하니 傳曰
人君比天下之道 當顯明其比道而已 如誠意以待物하고 恕己以及人하며 發政施仁하야 使天下蒙其惠澤 是人君親比天下之道也
如是 天下孰不親比於上이리오
積誠實之意하야 以待物하고 推愛己之心하야 以及人하며 發政施仁하고 公平正大하야 群心自然豫附 人君顯比天下之道也니라
4-2 若乃暴其小仁注+沙溪曰 暴 猶顯示也하고 違道干譽하야 欲以求下之比 其道亦已狹矣 其能得天下之比乎
暴小惠以市私恩하고 違正道以干虛譽하야 以是求比 則非顯比矣니라
4-3 王者顯明其比道 天下自然來比하나니 來者 撫之 固不煦煦然求比於物이니
若田之三驅 禽之去者 從而不追하고 來者則取之也 此王道之大
所以其民皥皥而莫知爲之者也니라
煦煦 日出微溫之貌
天子不合圍라하니
蓋蒐田之時 圍於三面하고 前開一路하야 來者取之하고 去者不追하니
亦猶王者顯明比道 初不執小惠하야 以求人之比也
皥皥 廣大自得之意
4-4 非唯人君比天下之道如此 大率人之相比 莫不然하니
以臣於君言之하면 竭其忠誠하고 致其才力 乃顯其比君之道也 用之與否 在君而已
不可阿諛逢迎하야 求其比己也
在朋友에도 亦然하니 修身誠意以待之 親己與否 在人而已 不可巧言令色, 曲從苟合하야 以求人之比己也
於鄕黨親戚, 於衆人에도 莫不皆然하니 三驅失前禽之義也니라
〈易傳 下同〉
[張伯行 註] 又因人君比天下之道而推言之하야 見人有求比之私心이면 則無往而可也
如臣比於君者也
然內盡其心하야 而忠誠有所必竭하고 外盡其職하야 而才力有所必致 顯比之道則然이니
用否 在君하니 非所計也
若阿順面諛하고 逢迎君意하야 庶幾君之暱我 是容悅也 其可乎
又如朋友亦有相比之義 然修身以正하야 而言動嚬笑之不苟하고 誠意以接하야 而忠告善道之不欺 亦顯比之道則然이니
親否 在人하니 非所計也
若巧令淟涊하고 曲從苟合하야 以冀友之親我 是狎客也 其可乎
至於鄕黨有相友相助之道하고 親戚有同災共患之道하고 衆人有一視同仁之道하야 莫不皆然하니
要非有意於人之比己 此易所謂三驅失前禽之義也
凡爲人者又烏可不知易乎
愚謂人生無孤立之理하야 尊卑貴賤 親疏遠邇 情渙義睽 則人道息이니 比之時義大矣哉
只是出乎中心之誠이라야 便合天理之公이니 蓋光明正大 顯之義也
若有一毫私意 卽曖昧不可告人이요 我愈欲求比於彼 適足以增彼之怨怒忿恨이니 遑言比乎
人情物理 曠古如斯
子曰 君子周而不比라하신대 朱子釋之曰 周公而比私라하시니 比非私也 有意求比則爲私耳
程子發明易理하시니 示人之意切矣로다


4-1 비괘比卦구오효사九五爻辭에 “친함을 드러나게 함이니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있는 짐승을 잃는다.” 하였는데, 注+역전易傳》에 “군주君主의 지위에 거하고 에 처하고 을 얻었으니, 이는 군주君主한 것이다.” 하였다.
혹자或者가 “이천伊川이 ‘친비함을 드러나게 함이니,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있는 짐승을 잃는다.〔顯比 王用三驅 失前禽〕’라고 한 것을 해석하면서 이른바 ‘오는 자를 어루만지고 가는 자를 쫓지 않는다.’고 하여, 앞에 있는 짐승을 놓치고 도망가지 않는 자를 죽인다는 것과 비유한 것이 서로 유사하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전렵田獵는 깃발을 세워 으로 삼고 풀을 베어 긴 포위망으로 삼으니, 전렵田獵을 하는 자가 문에서 짐승을 몰고 들어가면 짐승들이 나를 향하여 나오는 것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고 오직 몰이를 당하여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모두 잡힌다. 그러므로 앞에 있는 짐승을 가지고 가는 자를 쫓지 않음을 비유하고, 잡히는 놈을 가지고 오면 취함을 비유한 것이다. 대의大意가 이와 같으니, 일일이 서로 같을 수가 없다. 이천伊川이 이 를 풀이한 것을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
〈伊川先生의〉 《역전易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군人君이 천하를 친비親比하는 는 마땅히 친비親比하는 를 드러내고 밝게 할 뿐이니, 성실한 뜻으로 남을 대하고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며 훌륭한 정사를 펴고 인정仁政을 베풀어 천하로 하여금 그 혜택을 입게 하는 것이 인군人君이 천하를 친비親比하는 이다.
이와 같이 하면 천하天下에 누가 윗사람을 친비親比하지 않겠는가.
성실한 뜻을 쌓아서 남을 대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며 훌륭한 정사를 펴고 인정仁政을 베풀며 공평公平하고 정대正大하게 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자연히 기뻐하고 따름은 인군人君천하天下를 드러나게 친하는 이다.
4-2 만약 마침내 작은 을 드러내며 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은 드러내 보임과 같다.”道를 어기고 명예를 요구하여 아랫사람들이 친비親比하기를 구하려 한다면 그 가 또한 좁으니, 어찌 천하의 친비親比함을 얻겠는가.
작은 은혜를 드러내어 사사로운 은혜를 사려 하고 정도正道를 어겨 헛된 명예를 요구하여, 이러한 방법으로 친하기를 구한다면 친함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4-3 왕자王者친비親比하는 를 드러내고 밝게 하면 천하天下가 자연히 와서 친비親比할 것이니, 오는 자를 어루만지되 진실로 작은 은혜를 베풀어 남에게 친비親比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사냥할 적에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짐승 중에 도망가는 것은 따라가서 잡지 않고 오는 것만을 잡는 것과 같으니, 이는 왕도王道의 큰 것이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호호皥皥(廣大自得함)하여 어떻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후후煦煦는 해가 나와 조금 따뜻한 모양이다.
에 “천자天子는 〈사냥할 때에〉 사면四面을 합하여 포위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사냥할 때에 삼면三面만 포위하고 앞에 한 길을 열어주어 달려오는 것은 잡고 도망가는 것은 쫓지 않으니,
또한 왕자王者친비親比하는 를 드러내고 밝게 함에 애당초 작은 은혜를 잡아서 사람들이 친해주기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호호皥皥광대廣大하고 자득自得한 뜻이다.
4-4 이는 단지 인군人君천하天下친비親比하는 가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사람이 서로 친비親比하는 것도 모두 그러하다.
신하가 임금에 대하여 말하면 충성을 다하고 재주와 힘을 바치는 것이 바로 군주를 친비하는 를 드러내는 것이니, 등용의 여부는 군주君主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아유阿諛(아첨)하고 봉영逢迎(迎合)하여 자기와 친해주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붕우간朋友間에 있어서도 그러하니, 몸을 닦고 뜻을 성실히 하여 붕우朋友를 대할 것이요, 자기를 친비親比하는가의 여부는 상대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곡진히 따르고 구차히 영합하여 상대가 자기와 친비하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향당鄕黨친척親戚, 중인衆人에 있어서도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삼면三面에서 몰이함에 앞에 달아나는 짐승을 잃는 뜻이다.”
〈《역전易傳》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張伯行 註] 또 인군人君이 천하사람을 친히 하는 도리를 미루어 말씀해서 사람들이 친하기를 구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으면 어느 곳에 가든지 할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신하는 군주를 친히 하는 자이다.
그러나 안으로 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반드시 다하는 바가 있고 밖으로 직책을 다하여 재주와 힘을 반드시 바치는 바가 있어야 하니, 현비顯比(드러내고 친함)의 가 그러한 것이다.
나를 등용해주느냐의 여부는 군주에게 달려 있으니 계산할 바가 아니다.
만약 아부하고 순종하며 대면하여 아첨하고 군주의 뜻에 영합迎合해서 행여 군주가 나를 가까이 해주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군주의 마음에 들도록 아첨하여 기뻐하는 것이니 어찌 가하겠는가.
또 붕우간에도 서로 친히 하는 가 있으나 몸을 닦기를 바르게 하여 말하고 행동하고 찌푸리고 웃는 것을 구차하게 하지 않으며 성의誠意로 대하여 충성으로 말해주고 으로 인도하여 속이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는 또한 현비顯比가 그러한 것이다.
나를 친히 하느냐의 여부는 상대방에게 달려 있으니 계산할 바가 아니다.
만약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하여 추접하게 하고 뜻을 굽혀 따르고 구차히 영합하여 벗이 나를 친해주기를 바란다면 이는 친압하는 사람이니, 어찌 가하겠는가.
향당鄕黨에는 서로 친하고 서로 도와주는 가 있고, 친척간에는 재앙을 함께 하고 환난을 함께 대처하는 가 있고, 중인간衆人間에는 똑같이 보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가 있어서 다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요컨대 남이 나를 친하게 하려는 데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주역周易》의 이른바 ‘삼면三面에서 짐승을 몲에 앞의 짐승을 잃는다.’ 는 뜻이다.
무릇 사람이 된 자들이 또 어찌 《주역周易》을 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인생人生은 고립하는 이치가 없어서 존비尊卑귀천貴賤, 친소親疏원근遠近 사이에 이 풀어지고 가 어그러지면 인도人道가 종식되니, 의 때와 가 크다.
다만 마음속의 (진실)에서 나와야 곧 천리天理의 공정함에 부합하니, 광명정대光明正大함이 의 뜻이다.
만약 일호一毫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다면 곧 애매하여 남에게 말할 수 없고, 내가 저 사람과 친하기를 더욱 구하고자 하면 다만 저의 분노와 원한만 더하게 할 뿐이니, 어느 겨를에 친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과 사물의 이치가 옛부터 이와 같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두루 사랑하고 편당지어 친하지 않는다.” 하셨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기를 “이고 이다.” 하였으니, 가 아니요 친하기를 구함에 뜻이 있으면 가 될 뿐이다.
정자程子가 《주역周易》의 이치를 발명하셨으니, 사람들에게 보여 준 뜻이 간절하다.



근사록집해(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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