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者에 有東宮, 有西宮, 有南宮, 有北宮하야 異宮而同財하니 此禮를 亦可行이라
古人慮遠하니 目下에 雖似相疎나 其實은 如此라야 乃能久相親이니 蓋數十百口之家 自是飮食衣服을 難爲得一이라
族大人衆이면 則服食器用이 固有不能齊者니 同宮合處면 則怨爭之風이 或作矣리라
25-2 又異宮
은 乃容子得伸其私
요 所以避子之私也
注+益軒曰 愚謂 上私字는 專厚父之私也요 下私字는 指宴息而言이니라라
古之人이 曲盡人情하니 必也同宮하야 有叔父伯父면 則爲子者何以獨厚於其父며 爲父者又烏得而當之리오
雖同宗祖나 然親疎有分하니 異宮者는 亦使人子로 各得盡情於其親也라
25-3 父子異宮
은 爲命士
注+按 周禮에 以九儀之命으로 正邦國之位하니 一命은 受職이요 再命은 受服이요 三命은 受位요 四命은 受器요 五命은 賜則이요 六命은 賜官이요 七命은 賜國이요 八命은 作牧이요 九命은 作伯이라 註曰 命은 王命也라 九等之命이 各異其儀하니 所以正其位之尊卑也라以上
이니 愈貴則愈嚴
이라
一命爲士니 則父子亦異宮이니 愈貴則分制愈密이니라
25-4 故異宮
이니 猶今世
에 有逐位
요注+益軒曰 愚謂 逐位者는 逐一爲序하야 作各局也요 非分財而離居라 非如異居也
니라
[張伯行 註] 此는 又言異宮之制 不同於異居也라
蓋所謂異宮者는 猶今世之有逐位요 非遂分析而居也라
夫異宮則得各盡愛親之情이요 不異居則不失其敦倫之意니 仁之至요 義之盡이라 其兼得之矣로다
“옛날에는 동궁東宮‧서궁西宮‧남궁南宮‧북궁北宮이 있어서 집은 달리 하면서도 재물은 함께 하였으니, 이 예禮를 또한 행할 만하다.
옛사람은 생각함이 원대遠大하였으니, 목하目下(당장)에는 비록 서로 소원한 듯하나 실제는 이와 같이 하여야 오래도록 서로 친할 수 있으니, 식구가 수십백 명인 집안은 자연(진실로) 음식飮食과 의복衣服을 똑같이 하기가 어렵다.
종족宗族이 커서 사람이 많으면 음식飮食과 의복衣服과 기용器用이 진실로 똑같게 할 수가 없으니, 한 집에 모여 함께 거처하면 원망하고 다투는 기풍氣風이 혹 일어날 것이다.
25-2 또 집을 달리함은 바로 자식이
사정私情을 펼 수 있도록 용납해주는 것이요, 자식의 사사로움을 피하는 것이다.
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위의 사자私字는 오로지 아버지에게 후하게 하는 사정私情이고, 아래의 사자私字는 〈자식이〉 편안히 쉬는 사생활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사사롭게(더 보살펴 드림) 하지 못한다면 자식된 도리를 이룰 수 없다.
옛사람은 인정人情을 곡진曲盡히 다하였으니, 반드시 한 집에서 살아 숙부叔父와 백부伯父와 함께 있다면 자식된 자가 어떻게 홀로 자기 부모에게만 후厚하게 봉양할 수 있으며, 부모된 자도 또 어찌 이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비록 종宗과 조고祖考를 함께 하였더라도 친소親疎의 구분이 분명히 있으니, 집을 달리하는 것은 또한 자식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 어버이에게 정情을 다하게 한 것이다.
25-3
부자간父子間에 집을 달리함은
명사命士注+살펴보건대 《주례周禮》에 “구의九儀의 명命으로 나라의 지위를 바로잡으니, 일명一命은 직職을 받고 재명再命은 의복衣服을 받고 삼명三命은 지위地位를 받고 사명四命은 기물器物을 받고 오명五命은 법칙法則을 받고 육명六命은 관작官爵을 받고 칠명七命은 나라를 하사받고 팔명八命은 목牧이 되고 구명九命은 백伯이 된다.” 하였다. 주註에 “명命은 왕명王命이니, 구등九等의 명命이 각기 그 의식儀式이 다른 바, 지위의 존비尊卑를 바로잡는 것이다.” 하였다.
〔補註〕구의九儀는 아홉 가지 의식儀式을 이르며, 사국賜國은 영지領地를 받아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고, 목牧과 백伯은 제후 중에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아 주위의 제후들을 다스리는 자를 이른다. 후세의 군현郡縣은 제후국과 같고 주州의 목사牧使와 도道의 감사監司는 바로 목牧과 백伯이다. 이상이니, 더욱 귀할수록 더욱 엄격하다.
일명一命을 사士라 하는데, 부자간父子間에 또한 집을 달리 하니, 더욱 귀할수록 구분하는 제도가 더욱 엄밀하다.
25-4 이 때문에 집을 달리하는 것이니, 지금 세상의
축위逐位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축위逐位는 한 가족家族씩 순서대로 각각 구역을 만드는 것이요, 재산을 분배하고 따로 사는 것이 아니다.” 〔補註〕축위逐位는 큰 저택 안에 각기 소가족小家族 단위로 나누어 삶을 이른다.와 같은 것이요, 따로 사는 것과는 같지 않다.”
[張伯行 註] 이는 또 이궁異宮(집을 달리 함)의 제도가 이거異居와 다름을 말한 것이다.
이른바 이궁異宮은 지금 세상에 축위逐位가 있는 것과 같고 마침내 나누어 사는 것이 아니다.
집을 달리하면 각기 어버이를 사랑하는 정情을 다할 수 있고, 나누어서 달리 살지 않으면 윤리를 돈독히 하는 뜻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 인仁이 지극하고 의義가 극진해서 인仁과 의義를 겸하여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