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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2)

근사록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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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師之九二 爲師之主하니 恃專則失爲下之道 不專則無成功之理
故得中爲吉注+易師九二 在師中이라 吉无咎하니 王三錫命이라하니라이니라
恃專則失爲下之道 如衛靑不敢專誅而具歸天子하야 使自裁之注+按 綱目 衛靑 率六將軍하고 擊凶奴할새 右將軍蘇建 盡亡其軍하고 脫身亡自歸어늘 靑曰 靑幸得以肺腑 待罪行間하니 不患無威 職雖當斬將이나 然以臣之尊寵으로 而不敢自擅誅於境外하야 於以見爲人臣不敢專權 不亦可乎아하고 遂囚建하야 詣行在하니 詔贖爲庶人하니라是也
不專則不能成功 所謂將在軍 君令 有所不受是也注+孫子 ○ 按 侯嬴 以此說公子無忌하니라 二居中이라 故有得中之象하니라
6-2 凡師之道 威和幷至則吉也니라
威而不和則人心懼而離하고 和而少威則人心玩而弛하니 九二剛中이라 故有威和相濟之象하니라


6-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사괘師卦구이효九二爻사괘師卦주체主體가 되었으니, 〈권한을〉 믿고 전제專制하면 아랫사람이 된 도리를 잃고, 전제專制하지 않으면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중도中道를 얻음이 한 것이다.注+주역周易사괘師卦 구이효사九二爻辭에 “(군대)에 있어서 중도中道에 맞으므로 하고 허물이 없으니, 왕이 총애하는 명령을 세 번이나 내린다.” 하였다.
〈권한을〉 믿고 전제專制하면 아랫사람이 된 도리를 잃는다는 것은 위청衛靑이 〈패전敗戰부하部下를〉 감히 자기마음대로 죽이지 않고 내용을 갖추어 천자天子에게 돌려주어 스스로 결재決裁하게 한 것과 같은 것이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위청衛靑이 여섯 명의 장군을 인솔하고 흉노凶奴를 공격할 적에 우장군右將軍 소건蘇建이 패전하여 군대를 모두 잃고 단신으로 도망해 돌아왔는데, 위청衛靑이 말하기를 ‘내 다행히 폐부肺腑(外戚)로 항오行伍의 사이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니, 위엄이 없음을 근심할 것이 없다. 내 직책이 마땅히 〈패전한〉 장수將帥참형斬刑에 처할 수 있으나 존귀하고 총애 받는 신하로서 감히 국경 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주벌誅罰을 행하지 아니하여, 신하가 되어서 감히 권력權力전제專制할 수 없음을 보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소건蘇建을 가두어 호송해서 행재소行在所로 보내오자, 황제皇帝가 명하여 속죄贖罪해서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하였다.
〔補註〕폐부肺腑는 사람의 중용한 장기臟器이므로 제왕帝王외척外戚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위청衛靑은 본래 정씨鄭氏인데, 그의 아버지가 평양후平壤侯 조수曹壽위온衛媼사통私通하여 낳았으므로 어미 을 따라 위씨衛氏로 하였으며, 이 다른 동모同母의 누이인 위자부衛子夫무제武帝후궁後宮이 되었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이것이요,
전제專制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른바 ‘장군將軍군중軍中에 있을 때에는 군주君主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注+손자병법孫子兵法》에 보인다.
○ 살펴보건대 후영侯嬴이 이 말을 가지고 공자公子 무기無忌를 설득하였다. 〔補註〕후영侯嬴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 사람이며 무기無忌신릉군信陵君에 봉해진 자로 선비를 좋아하여, 당시 나라의 맹상군孟嘗君전문田文나라의 평원군平原君조승趙勝나라의 춘신군春申君황헐黃歇(헐)과 함께 사호四豪로 일컬어진 인물人物이다.
는 것이 이것이니, 이효二爻에 있으므로 중도中道를 얻은 이 있는 것이다.
6-2 무릇 (군대)의 는 위엄과 온화함이 아울러 지극하면 하다.”
위엄만 있고 온화하지 못하면 인심人心이 두려워하여 이반離叛하고, 온화하기만 하고 위엄이 적으면 인심人心이 느슨하여 해이해지니, 구이효九二爻강중剛中인 까닭에 위엄과 온화함이 서로 구제救濟하는 이 있는 것이다.



근사록집해(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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