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唐河東節度使柳公綽이 在公卿間하여 最名有家法하니라 《溫公》〈家範〉
中門東에 有小齋러니 自非朝謁之日이면 每平旦에 輒出至小齋어든 諸子仲郢이 皆束帶하여 晨省於中門之北하니라
公綽이 決私事하며 接賓客하고 與弟公權及群從弟로 再會食하여 自旦至莫히 不離小齋하고
燭至則命一人子弟하여 執經史하여 躬讀一過訖하고 乃講議居官治家之法하며 或論文하며 或聽琴하다가 至人定鍾然後에 歸寢이어든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하더니 凡二十餘年에 未嘗一日變易하니라
仲郢은 節度之子니 字諭蒙이요 公權은 節度之弟니 字誠懸이라
其遇飢歲어든 則諸子皆蔬食하더니 曰 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에 以學業未成이라하여 不聽食肉하시더니 吾不敢忘也하노라
姑姊妹姪이 有孤嫠者어든 雖疏遠이라도 必爲擇婿嫁之하되 皆用刻木粧奩하며 纈文絹으로 爲資裝하더니
及公綽卒하여는 仲郢이 一遵其法하여 事公權하되 如事公綽하며
爲京兆尹鹽鐵使하여 出遇公權於通衢에 必下馬端笏立하여 候公權過하여 乃上馬하며 公權이 莫歸어든 必束帶迎候於馬首하더니
公權이 屢以爲言하되 仲郢이 終不以官達로 有小改하니라
公綽의 妻韓氏는 相國休之曾孫이니 家法이 嚴肅儉約하여 爲搢紳家楷範이러니
歸柳氏三年에 無少長히 未嘗見其啓齒하며 常衣絹素하고 不用綾羅錦繡하며
每歸覲에 不乘金碧輿하고 祗乘竹兜子하여 二靑衣步屣以隨하니라
常命粉苦參黃連熊膽하여 和爲丸하여 賜諸子하여 每永夜習學에 含之하여 以資勤苦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