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揚子法言(1)

양자법언(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양자법언(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韓文公稱荀子하여 以爲在軻雄之間이라하고
한문공韓文公(한유韓愈)이 순자荀子를 칭찬하여 “맹가孟軻양웅揚雄의 중간에 있다.”라고 하였고,
又曰 孟子 醇乎醇者也 荀與揚 大醇而小疵라하시니 三子 皆大賢이라
또 “맹자孟子는 순수하고 순수한 자이고, 순자荀子양자揚子는 크게는 순수하나 작게는 하자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세 사람은 모두 대현大賢이다.
祖六藝而師孔子하니 孟子好詩書하고 荀子好禮하고 揚子好易하여 古今之人 共所宗仰이라
육예六藝(육경六經)를 근본으로 삼고 공자孔子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맹자孟子는 《》‧《》를 좋아하고, 순자荀子는 《》를 좋아하고, 양자揚子는 《》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과 지금 사람들이 모두 종주로 삼아 우러러보는 분들이다.
如光之愚 固不敢議其等差 然揚子之生最後하여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진실로 감히 그 등급을 논할 수 없으나 양자揚子가 가장 늦게 태어나 〈맹자와 순자〉 두 분을 보았고,
監於二子而折衷於聖人하여 潛心以求道之極致하여 至于白首然後著書
성인聖人(공자孔子)에게 절충折衷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의 극치를 찾아 백발에 이른 뒤에 책을 저술하였다.
故其所得爲多하니 後之立言者莫能加也
그러므로 터득한 것이 많으니, 후세에 글을 쓴 자 중에 이보다 더한 자가 없다.
雖未能無小疵 然其所潛最深矣 恐文公所云 亦未可以爲定論也
비록 작은 하자가 없지는 못하나 몰두하여 연구한 것이 가장 깊으니, 한문공韓文公이 말한 것은 또한 정론定論이 될 수 없을 듯하다.
孟子之文 直而顯하고 荀子之文 富而麗하고 揚子之文 簡而奧하니 唯其簡而奧也 故難知
맹자孟子의 문장은 직설적이면서 드러나고, 순자荀子의 문장은 풍부하면서도 화려하고, 양자揚子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심오하니, 간결하면서도 심오하기 때문에 〈양자揚子의 글은〉 알기가 어렵다.
學者多以爲諸子而忽之러니 晉祠部郞中李軌始爲之註하고 唐柳州刺史柳宗元 頗補其闕이라
배우는 자들이 대부분 제자諸子라 하여 소홀히 여겼는데, 나라 사부낭중祠部郞中 이궤李軌가 처음 를 내고 나라 유주자사柳州刺史 유종원柳宗元이 그 부족한 부분을 상당히 보충하였다.
景祐四年 詔國子監하여 校揚子法言하여 嘉祐二年七月 始校畢上之하고
경우景祐 4년(1037)에 국자감國子監에 명하여 《양자법언揚子法言》을 교정하게 해서 가우嘉祐 2년(1057) 7월에 비로소 교정을 마쳐 올렸고,
又詔直祕閣呂夏卿校定하여 治平元年上之하며 又詔內外制看詳하여 二年上之하니
직비각直祕閣 여하경呂夏卿에게 명하여 교정하게 해서 치평治平 원년元年(1064)에 올렸으며, 내제內制외제外制에게 명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하여 치평治平 2년(1065)에 올렸으니,
然後 命國子監하여 鏤版印行이라
그런 뒤에 국자감國子監에 명하여 판각해서 인쇄하게 하였다.
故著作佐郞宋咸 司封員外郞吳祕 皆嘗註法言이라
저작좌랑著作佐郞 송함宋咸사봉원외랑司封員外郞 오비吳祕가 모두 일찍이 《법언法言》에 주를 내었다.
光少好此書하여 硏精竭慮하여 歷年已多러니 今老矣 計智識所及컨대 無以復進이로되
나는 젊어서부터 이 책을 좋아하여 전심專心으로 연구하고 힘을 다해 생각하면서 보낸 햇수가 이미 많은데, 지금은 늙어서 지혜와 식견이 미치는 바를 헤아려보면 더 이상 진전된 것이 없다.
竊不自揆하고 輒采諸家所長하여 附以己意하고 名曰集註라하니
그러나 외람되이 스스로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번번이 제가諸家들의 장점을 채택하여 나의 뜻을 붙이고 ‘집주集註’라고 이름하였다.
凡觀書者 當先正其文하고 辨其音이니 然後可以求其義
무릇 책을 보는 자는 마땅히 먼저 그 글자를 바로잡고 그 음을 분별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그 뜻을 찾을 수 있다.
故相宋公家 有李祠部註本及音義하니 最爲精詳이라
옛 정승인 송상 공宋庠 公의 집안에 이사부李祠部(이궤李軌)의 주본註本음의音義가 있으니, 가장 정밀하고 상세하다.
音義 多引天復本하니 未知天復何謂也 諸公校法言者 皆據以爲正이라
음의音義는 대부분 천복본天復本을 인용하였는데 천복天復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공諸公 중에 《법언法言》을 교정하는 자들이 모두 이것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宋著作 吳司封 亦據李本이나 而其文多異同하고 音義皆非之하여 以爲俗本이라
송저작宋著作(송함宋咸)과 오사봉吳司封(오비吳祕)도 이본李本에 근거하였으나 그 글에 이동異同이 많고 가 모두 잘못되어 속본俗本이라 하였다.
今獨以國子監所行者 爲李本하고 宋著作, 吳司封本 各以其姓別之하며
이제 다만 국자감國子監에서 간행한 것을 이본李本으로 삼고, 송저작宋著作오사봉吳司封을 각각 그 으로 구별하였으며,
或參以漢書하여 從其通者하여 以爲定本호되 先審其音하고 乃解其義
혹 《한서漢書》를 참고하여 통하는 것을 따라 정본定本을 만들되 먼저 그 음을 살피고 비로소 그 뜻을 해석하였다.
然此特愚心所安이요 未必皆是 冀來者擇焉하노라
그러나 이것은 다만 어리석은 나의 마음에 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고 반드시 다 옳지는 않으니, 후생들이 잘 선택하기를 바란다.
元豐四年十一月己丑 涑水司馬光序하노라
원풍元豐 4년(1081) 11월 기축己丑속수涑水 사마광司馬光은 서문을 쓰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