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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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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回問於孔子曰 臧文仲武仲 孰賢이니잇고 孔子曰 武仲 賢哉니라
顔回曰 武仲 世稱聖人이나 而身不免於罪하니 是智不足稱也注+武仲爲季氏하여 廢適立庶라가 爲孟氏所譖하여 出奔于齊 好言兵討 而挫銳於邾하니 是智不足名也注+武仲 與邾戰而敗績이어늘 國人頌之曰 我君小子 侏儒하여 使我敗於邾로이다
夫文仲 其身雖歿이나 而言不杇하니 惡有未賢注+立不杇之言이라 故以爲賢이라이리오 孔子曰 身歿言立 所以爲文仲也
然猶有不仁者三 不智者三하니 是則不及武仲也니라 回曰 可得聞乎잇가
孔子曰 下展禽注+展禽 柳下惠 知其賢而使在下位하여 不與立於朝也하고 置六關注+六關 關名이라 魯本無此關이로대 文仲置之하여 以稅行者 故爲不仁이라 傳曰 廢六關 非也하고 妾織蒲注+傳曰 織蒲라하니 席也 言文仲爲國爲家 在於貪利也 三不仁이요 設虛器注+居蔡 天子之守龜 非文仲所有 故曰虛器也라하니라하고 縱逆祀注+夏父弗忌爲宋人하여 躋僖公於閔公之上이어늘 文仲縱而不禁也하고 祠海鳥注+海鳥止于魯東門之上이어늘 文仲不知하고 而令國人祠之하니 是不知也 三不智니라
武仲在齊할새 齊將有禍 不受其田하여 以避其難注+武仲奔齊어늘 齊莊公將與之田한대 武仲知莊公將有難하고 辭而不受也하니 是智之難也니라
夫臧仲之智로도 而不容於魯 抑有由焉하니 作而不順하고 施而不恕也夫注+不順不恕 爲廢適立庶 武仲之所以然 欲爲施於季氏也인저 夏書曰 念玆在玆라하니 順事恕施注+此在常하여 當順其事하고 恕其施也니라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 중에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장무중이 더 현명하다.”
안회가 말하였다. “장무중은 세상 사람들이 聖人이라고 하지만 그 몸이 죄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注+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였지만 나라에 의해 銳鋒이 꺾였으니 이는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注+
그렇지만 장문중은 그 몸은 죽었지만 그의 말은 不朽하게 남아 있으니 어찌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注+불후한 말을 남겼기 때문에 현명하다고 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 몸은 죽었지만 훌륭한 말을 후세에 남겼기 때문에 文仲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지 못한 일이 세 가지가 있고 지혜롭지 못한 일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이런 점 때문에 장무중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안회가 물었다.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展禽下位에 두고注+ 六關을 설치하고注+六關關門의 이름이다. 노나라에는 본래 이 관문이 없었는데 장문중이 설치하여 행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였기 때문에 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 ≪春秋左氏傳≫에 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에게 부들자리를 짜게 한 것이注+春秋左氏傳≫에는 ‘ 는 부들자리이다. 장문중이 나라를 위하고 집안을 위하는 것이 이익을 탐하는 데에 있다는 말이다. 세 가지 하지 못한 일이고, 虛器를 설치하고注+ 는 천자의 逆祀를 방치한 채 그대로 두고注+ 장문중이 내버려 두고 막지 않은 것이다. 바닷새에게 제사 지내게 한 것이注+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세 가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장무중은 제나라에 있을 때 제나라에 난리가 있을 것을 알고 田地를 받지 않아 그 화를 피하였으니,注+장무중이 제나라로 달아나자 莊公이 그에게 田地를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장무중은 장공에게 난리가 있을 것을 알고 사양하고 받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지혜롭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장무중과 같은 지혜로도 노나라에 용납되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일을 처리하는 데 사리를 따르지 않고 정사를 시행하는 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注+사리를 따르지 않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한 것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기 때문이고, 장무중이 그렇게 한 까닭은 계씨에게 시행하기 위해서인 것이다.書經夏書에 ‘늘 이를 생각하라.’라고 하였으니, 사리를 따르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베풀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注+이를 늘 생각하여 사리를 따르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18-3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臧文仲과 臧武仲 : 장문중은 춘추시대 魯나라 卿인 臧孫辰으로, 문중은 시호이다. 장무중은 노나라 대부인 藏孫紇로, 장문중의 손자이다.
역주3 장무중이……것이다 : ≪春秋左氏傳≫ 襄公 23년에 季武子가 長子인 公鉏(공서)를 제쳐두고 次子인 紇(흘)을 후계로 삼으려 하자, 장무중이 계교를 써서 이를 성사시켰다. 이런 이유로 孟孫氏가 장무중을 몹시 싫어하였는데, 뒤에 孟莊子가 죽자 공서가 다시 계교를 써서 차자인 羯(갈)을 후사로 세워 세력을 확장하니, 장무중이 자신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음을 직감하고 제나라로 달아났다.
역주4 장무중이……하였다 : 이 사건은 ≪春秋左氏傳≫ 襄公 4년에 보이는데, 두예의 주에 襄公이 어렸기 때문에 ‘小子’라고 하고, 臧紇(장문중)이 키가 작았기 때문에 ‘侏儒(난쟁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5 展禽은……것이다 : 이 사실은 ≪論語≫ 〈衛靈公〉에 보이는데 “장문중은 그 지위를 도적질한 자일 것이다. 유하혜의 현명함을 알고서도 함께 조정에 서지 아니하였다.[臧文仲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라고 하였다.
역주6 육관을 폐쇄하였다 : ≪春秋左氏傳≫ 文公 2년 조에 보인다.
역주7 부들자리를……하였으니 : ≪春秋左氏傳≫ 文公 2년 조에 보인다.
역주8 큰……것이다 : 이 사실은 ≪論語≫ 〈公冶長〉에 보이는데 “장문중이 큰 거북을 보관하되 기둥머리 斗栱에는 山 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水草를 그렸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라고 하였다.
역주9 守龜 : 天子와 諸侯가 점을 치던 거북을 이른다.
역주10 夏父弗忌가……올렸는데 : 魯 文公 2년에 太廟에서 큰 제사를 지내면서 신주의 차례를 정할 때에 僖公을 위에 두고 閔公을 아래에 둔 일을 가리킨다. 임금이 된 순서로 보면 민공이 위이고, 형제 간의 서열로 보면 희공이 민공의 庶兄이었다. 이때 하보불기가 宗伯으로서 제사를 주관하면서 “내가 보기에 新鬼(희공)는 크고 故鬼(민공)는 작으니, 큰 분을 앞에 모시고 작은 분을 뒤에 모시는 것이 順理이고, 성현을 위로 올리는 것이 明哲함이니, 명철과 순리가 예이다.”라는 논리를 주장하며 희공과 민공의 서열을 바꾸었다.(≪春秋左氏傳≫ 文公 2년)
역주11 바닷새가……하였으니 : 爰居라는 바닷새가 魯나라 東門에 3일 동안 머물자, 장문중이 神이라 여겨 나라사람들을 시켜 제사 지내게 하였다는 내용이 ≪國語≫ 〈魯語〉에 보인다.
역주12 [是使] : 저본에는 이 글자가 없으나, 앞뒤의 문맥이 통하지 않아 ≪春秋左氏傳≫ 襄公 4년 조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3 (文)[武] : 저본에는 ‘文’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武’로 바로잡았다.
역주14 (今)[念] : 저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念’으로 바로잡았다.

공자가어(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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