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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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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行解 第五注+孔子衣逢掖之衣하고 冠章甫之冠하여 以見魯哀公한대 公問儒行이라 故以名篇하니라
孔子在衛注+夫子在衛國이라할새 冉求言於季孫曰注+冉求謂魯季孫言이라 國有聖人而不能用注+言魯國有聖德之夫子어늘 不能用이라하고 欲以求治注+欲求國治 是猶却步而欲求及前人이니 不可得已注+是如退行하고 又欲追及前行之人이니 豈可得哉리오
今孔子在衛어늘 衛將用之注+今夫子在衛國이어늘 衛君欲任用之하니 己有才而以資隣國注+吾國有人而不能用하고 却與隣國爲憑籍이니 難以言智也注+不可謂之智니이다
季孫以告哀公한대 公從之注+季孫以冉求之言으로 告于哀公한대 公從其言이라하다 孔子旣至舍注+孔子旣至魯傳舍한대 哀公館焉注+公使孔子就舍이라


제5편 儒者德行을 해설함注+공자가 哀公을 보았는데, 애공이 儒者의 덕행에 대해 물었기 때문에 이렇게 편명을 붙인 것이다.
孔子 哀公儒者德行에 관해 주고받은 말을 기록한 편이기에, 편명을 ‘儒行解’라고 하였다. 儒者는 스스로 우뚝 서고, 강하고 굳세며, 소신을 바꾸지 않으며, 어진 자를 추천하고 능한 자를 돕는다. 이 편은 후세 유자들의 처세의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수신에도 지침이 된다. 이 편은 〈儒行〉이라는 편명으로 ≪禮記≫에도 실려 있다.
공자가 나라에 있을 때注+夫子가 위나라에 있을 때이다. 冉求季孫에게 말하였다.注+염구가 노나라 계손에게 말한 것이다. “나라에 성인이 있는데도 등용하지 못하면서注+노나라에 성인의 덕을 가진 부자가 있는데도 등용하지 못한 것이다. 잘 다스려지기를 구하는 것은注+나라가 다스려지기를 구하려는 것이다. 뒷걸음치면서 앞사람을 따라잡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注+뒷걸음치면서 또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가능하겠냐고 한 것이다.
지금 공자가 위나라에 있는데 注+지금 부자가 위나라에 있는데 위나라 임금이 등용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자기 나라에 人才가 있는데 이웃 나라에 주어 힘을 보태는 것이므로注+이는 우리나라에 인재가 있는데 등용하지 않고 도리어 이웃나라에 주어 힘을 보태는 것이다. 지혜롭다 말하기 어렵습니다.”注+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손이 애공에게 아뢰자 애공이 그 말을 따랐다.注+계손이 염구의 말을 애공에게 아뢰자 애공이 그 말을 따른 것이다. 공자가 이윽고 客舍에 이르렀는데注+공자가 이윽고 노나라 객사에 도착한 것이다. 애공이 머무르게 하였다.注+애공이 공자로 하여금 객사에 머무르게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逢掖衣를……쓰고서 : 선비의 衣冠을 말한다. 봉액의는 소매가 큰 홑옷으로 도포의 일종이고, 장보관은 송나라 제도인 冠의 일종이다.
역주2 5-1 : 저본의 표제에 “뒷걸음치면서 앞사람을 따라잡기를 구하다.[却步求前]”, “애공이 부자를 머물게 하다.[哀公館夫子]”라고 되어 있다.
역주3 위나라가……하니 : 魯 哀公 10년에 공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와 위나라에 있었는데, 위나라 군주 出公 輒이 공자를 등용하려고 하였다. 이때 자로가 공자에게 묻기를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라고 한 내용이 ≪論語≫ 〈子路〉에 보인다.

공자가어(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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