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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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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自阼階注+公出降自東階하고 孔子賓階注+夫子自西階而入이라 升堂立侍注+升公堂하여 立侍公傍이라한대 公曰 夫子之服 其儒服與注+公謂子曰 子衣儒者之衣服잇가
孔子對曰注+子答公言이라 丘少居魯注+孔子稱名曰 丘年少時居魯國이라 衣逢掖之衣注+衣深衣之大也하고 長居宋注+及長則居宋地 冠章甫之冠注+載章甫之冠이라 章甫 儒冠名이라하니
丘聞之호니 君子之學也博注+丘聞君子之學 廣博이라하고 其服以鄕注+所服其衣 只隨鄕俗이라이라하니 丘未知其爲儒服也注+丘不知其爲儒衣也로이다


애공은 阼階(동쪽 계단)로부터 내려오고注+애공이 동쪽 계단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공자는 賓階(서쪽 계단)로부터注+부자는 서쪽 계단으로부터 들어간 것이다. 에 올라 애공을 모시고 섰다.注+公堂에 올라서 애공의 옆에서 모시고 선 것이다. 애공이 말하였다. “夫子의 의복은 儒者의 의복입니까?”注+애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유자의 의복을 입고 있는가?”라고 한 것이다.
공자가 대답하였다.注+공자가 애공에게 답한 것이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거처할 때에는注+공자가 본인의 이름을 일컬으면서 말하기를, “제가 어렸을 때 노나라에 거처하였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봉액의를 입었고注+소매가 넓은 深衣를 입은 것이다. 장성해서 나라에 거처할 때에는注+장성하여서 송나라에 거처한 것이다. 장보관을 썼습니다.注+장보관을 쓴 것이다. 장보는 유자가 쓰는 관 이름이다.
저는 군자의 학문은 넓어야 하고注+자신은 군자의 학문은 넓어야 한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의복은 그 고을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고注+입는 의복은 다만 고을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유자의 의복인지 모르겠습니다.”注+자신은 그것이 유자의 의복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5-2 : 저본의 표제에 “장보관을 쓰다.[冠章甫冠]”라고 되어 있다.
역주2 저는……들었습니다 : 이 부분은 江陵本과 원문은 같으나 주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江陵本의 주석에는 “저는 군자는 도를 배우고 그 의복을 넓고 크게 만들어 그 고을의 풍속을 따른다고 들었다.[丘聞君子之學道 寬大其衣以隨鄕俗]”라고 되어 있다.
역주3 : 江陵本과 慶長本에는 모두 ‘褒’로 되어 있다.

공자가어(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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