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問於孔子曰 管仲之爲人
은 何如
잇고 子曰 仁也
注+得仁道也라니라 子路曰 昔管仲說襄公
이어늘 公不受
하니 是不辯也
요
欲立公子糾而不能
하니 是不智也
注+齊襄立에 無常이어늘 鮑叔牙曰 君使民慢하니 亂將作矣라하고 奉公子小白하여 出奔莒하고 公孫無知殺襄公이어늘 管夷吾召忽奉公子糾하여 奔魯라 齊人殺無知한대 魯伐齊하여 納子糾어늘 小白自莒先入하니 是爲桓公이라 公乃殺子糾어늘 召忽死之也라요 家殘於齊
어늘 而無憂色
하니 是不慈也
요
桎梏而居檻車
어늘 無慙心
하니 是無醜也
注+言無恥惡之心이라요 事所射之君
하니 是不貞也
요
召忽死之어늘 管仲不死하니 是不忠也라 仁人之道가 固若是乎잇가
孔子曰 管仲說襄公이어늘 襄公不受는 公之闇也요 欲立子糾而不能은 不遇時也요
家殘於齊어늘 而無憂色은 是知權命也요 桎梏而無慙心은 自裁審也요 事所射之君은 通於變也요
不死子糾는 量輕重也라 夫子糾未成君하고 管仲未成臣하니 管仲才度義라
管仲不死하고 束縛而立功名하니 未可非也라 召忽雖死나 過與取仁은 未足多也니라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
管仲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
仁하다.”
注+仁道를 얻은 것이다. 자로가 물었다. “예전에 관중이
齊 襄公에게 유세하였는데도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말재주가 없는 것입니다.
管仲
公子 糾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注+제 양공이 즉위하여 無道하자, 포숙아가 말하기를 “임금이 백성으로 하여금 不信하게 하니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고 공자 小白을 모시고 莒나라로 出奔하였고, 公孫無知가 양공을 시해하자 管夷吾(管仲)와 소홀은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出奔하였다. 제나라 사람이 공손무지를 죽이자 노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공자 규를 들여보냈는데, 소백이 거나라에서 먼저 제나라로 들어갔으니 이 사람이 桓公이다. 환공이 마침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따라 죽은 것이다. 집안이 제나라에서 망했는데도 근심하는 낯빛이 없었으니 이는 자애롭지 못한 것입니다.
차꼬를 찬 채
檻車에 갇혀 있었는데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이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注+羞惡之心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이 쏘아서 죽이려던 임금을 섬겼으니 이는
貞操가 없는 것입니다.
召忽은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이는 不忠한 것입니다. 仁人의 道가 참으로 이와 같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관중이 양공에게 유세하였는데도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양공이 사리에 어두웠기 때문이고, 공자 규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못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집안이 제나라에서 망했는데도 근심하는 낯빛이 없었던 것은 時命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고, 차꼬를 찬 상태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스스로 헤아리고 살폈기 때문이고, 자신이 쏘아서 죽이려던 임금을 섬긴 것은 변화에 통달하였기 때문이고,
공자 규를 따라 죽지 않은 것은 生死의 경중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당시 공자 규가 임금이 되지 않았고 관중도 신하가 되지 않았으니 관중은 다만 무엇이 의에 맞는지를 헤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