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謂伯魚曰 鯉乎아 吾聞可以與人終日不倦者는 其唯學焉이라
其容體不足觀也요 其勇力不足憚也요 其先祖不足稱也요 其族姓不足道也로대
終而有大名하여 以顯聞四方하고 流聲後裔者는 豈非學之效也리오 故君子不可以不學이니라
其容不可以不飭
이니 不飭無類
요 無類失親
注+類宜爲貌라 不在飭故無貌니 不得言不飭無類也라 禮貌矜莊然後에 親愛可久라 故曰 無類失親也라이요 失親不忠
注+情不相親이면 則無忠誠이라이요 不忠失禮
注+禮以忠信爲本이라요 失禮不立
注+非禮則無以立이라이라
夫遠而有光者
는 飭也
요 近而愈明者
는 學也
라 譬之汚池
는 水潦注焉
이요 雚葦生焉
이로대 雖或以觀之
라도 孰知其源乎
注+源은 泉源也라 水潦注於池而生雚葦로대 觀者誰知其非源泉乎아 以言學者雖從外入이라도 及其用之하여는 人誰知其非從此出也者乎아리오
공자가
에게 말하였다. “
鯉야! 내가 듣기로 남과 종일토록 말하더라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학문뿐이라고 한다.
그 용모는 볼 만한 것이 없고, 그 勇力은 두렵게 할 만한 것이 없고, 그 선조는 칭송할 만한 분이 없고, 그 가문은 말할 만한 것이 없지만,
결국 큰 명성을 이루어 사방에 널리 알려지고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것은 어찌 학문의 효과가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군자는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그 용모를 정돈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정돈하지 않으면
禮에 맞는 모습이 없고 예에 맞는 모습이 없으면 친할 수 없고
注+類는 마땅히 貌가 되어야 한다. 정돈하지 않기 때문에 禮貌가 없는 것이니, ‘不飭無類’라고 말할 수 없다. 예모가 엄숙한 뒤에야 친애함이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예모가 없으면 친함을 잃는다고 한 것이다. 친할 수 없으면 진실되지 못하고
注+마음으로 서로 친하지 않으면 진실함이 없는 것이다. 진실되지 못하면
禮를 잃고
注+예는 忠信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대체로 멀어도 빛이 나는 것은 정돈하기 때문이고, 가까이 있으면 더욱 밝은 것은 학문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연못은 빗물이 흘러들어가고 갈대가 자라지만 혹시 보고자 하더라도 누가 그 물의 근원을 알겠는가.”
注+源은 물의 근원이다. 연못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가고 갈대가 자라지만 이를 보는 자 중에 누가 연못이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아님을 알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학문이 비록 밖에서 들어왔더라도 적용할 때에는 사람들 중에 누가 학문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