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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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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弟子有宓子賤者한대 仕於魯하여 爲單父宰注+ 音善이라러니
恐魯君聽讒言하여 使己不得行其政일새 於是辭行 故請君之近史二人하여 與之俱至官이라
宓子戒其邑吏注+ 音密이라 令二史書호대 方書輒掣其肘하고 書不善이면 則從而怒之하니
二史患之하여 辭請歸魯한대 宓子曰 子之書甚不善하니 子勉而歸矣
二史歸報於君曰 宓子使臣書而掣肘하고 書惡而又怒臣하여 邑吏皆笑之하니 此臣所以去之而來也니이다
魯君以問孔子한대 子曰 宓不齊 君子也니이다 其才任霸王之佐로대 屈節治單父 將以自試也 意者以此爲諫乎인저
公寤하고 太息而歎曰 此寡人之不肖 寡人亂宓子之政하고 而責其善者 非矣
微二史 寡人無以知其過 微夫子 寡人無以自寤라하고
遽發所愛之使告宓子曰 自今已往으로 單父 非吾有也
從子之制하리니 有便於民者어든 子決爲之하고 五年一言其要하라
宓子敬奉詔하여 遂得行其政하니 於是 單父治焉이라
躬敦厚하며 明親親하며 尙篤敬하며 施至仁하며 加懇誠하며 致忠信하니 百姓化之러라


공자의 제자 중에 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나라에서 벼슬하여 邑宰가 되었다.注+(고을 이름)은 이다.
宓子賤宓子賤
그런데 노나라 임금이 참소하는 말을 듣고 자신의 뜻대로 정사를 베풀지 못하게 할까 염려하였다. 그래서 하직인사를 하고 떠날 때에 일부러 임금과 가까운 史官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고을에 갔다.
복자천은 고을의 아전에게 경계하는 말을注+ 두 사관에게 쓰게 하고는 쓸 때마다 팔을 잡아당기고, 글씨가 엉망이면 잘 쓰지 못했다고 화를 내었다.
두 사관이 근심하여 하직인사를 하고 노나라 서울로 돌아갈 것을 청하자, 복자천이 말하였다. “너희들의 글씨가 매우 형편없으니, 너희들은 돌아가거든 힘써 노력하라.”
두 사관이 돌아가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복자천이 신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고는 팔을 잡아당기고, 글씨가 엉망이면 또 신들에게 화를 내었으므로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들이 그 고을을 떠나 온 것입니다.”
노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宓不齊는 군자입니다. 그는 霸王을 보좌할 수 있는 재주가 있지만 절개를 굽혀 선보를 다스린 것은 자신의 재주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이니, 아마도 이것을 가지고 임금께 한 듯합니다.”
노나라 임금이 깨닫고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는 寡人不肖한 탓입니다. 과인이 복자천의 정사를 어지럽히고는 그에게 잘 다스리도록 요구하였으니 이는 저의 잘못입니다.
두 사관이 아니었다면 과인은 저의 잘못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부자가 아니었다면 과인은 스스로 깨우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끼는 使臣을 급히 보내 다음과 같이 복자천에게 고하게 하였다. “지금부터 선보 땅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그대가 하는 대로 따를 것이니 백성에게 편한 정사가 있으면 그대가 결정하여 처리하고 5년에 한 번씩 그 요점만 말해 달라.”
복자천이 삼가 詔書를 받고서 마침내 자신의 뜻대로 정사를 베풀 수 있게 되자,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
몸소 敦厚함을 힘쓰고 親親의 도리를 밝히며, 篤敬한 행실을 숭상하고 지극히 한 정치를 시행하며, 일마다 정성을 다하고 忠信을 다하니 백성들이 교화되었다.


역주
역주1 37-6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宓子賤(복자천) : 공자의 제자 宓不齊이다. 子賤은 그의 자이다.
역주3 單父(선보) : 魯나라의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山東省 單縣이다.
역주4 宓(성씨)은……密이다 : 宓은 두 가지의 음이 있는데, ‘편안하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密’로 읽고, 성씨로 쓰일 때는 伏羲氏의 후손이라는 뜻인 ‘복’으로 읽는다. 주석에서는 음이 ‘密’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음을 따라 ‘복’으로 읽었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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