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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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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靈王 汰侈注+驕汰奢侈러라 右尹子革 侍坐注+右尹 官名이요 子革 이라러니 左史倚相 趨而過한대 王曰 是良史也 子善視之하라 是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注+三墳 三皇之書 五典 五帝之典이요 八索이요 國聚也하니라
對曰 夫良史者 記君之過하고 揚君之善이어늘 而此子以潤辭爲官하니 不可爲良史니이다
曰 臣又嘗聞焉호대 周穆王 欲肆其心注+이라하여 將過行天下하여 使皆有車轍竝馬迹焉이어늘
祭公謀父 作祈昭注+謀父 周卿士 祈昭 詩名이니 猶齊景公作君臣相說之樂하니 蓋曰徵招角招是也라하니 昭宜爲招 作招하여 以止王心注+止王心之逸遊이라 王是以獲이라하니
其詩焉한대 而弗知하니 若問遠焉이면 其焉能知리오 王曰 子能乎
對曰 能하노이다 其詩曰 祈昭之愔愔乎 式昭德音注+祈昭愔愔 言祈昭樂之安和하니 其法足以昭其德音者也이로다 思我王度하니 式如玉하며 式如金注+思王之法度하니 如金玉純美 詩云 追琢其章이요 金玉其相이라하니라이로다 刑民之力하여 而無有醉飽之心注+長而字어늘 刑傷民力하여 用之不勝不節호대 無有醉飽之心이니 言無厭足이라이로다
靈王 揖而入하여 饋不食하고 寢不寐 數日하니 則固不能勝其情하여 以及於難하다
孔子讀其志曰 古者有志하니 克己復禮爲仁注+이라 言能勝己私情하여 復之於禮則爲仁也이라하니 信善哉
楚靈王 若能如是 豈期辱於乾谿注+靈王 起章華之臺於乾谿하니 國人潰畔하여 遂死焉이라리오 子革之非左史 所以風也 稱詩以諫 順哉로다


은 교만하고 사치하였다.注+교만하고 사치한 것이다. 右尹 子革 靈王을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注+右尹官名이고, 子革은 이름이 然丹이다. 左史 倚相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자 楚王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훌륭한 史官이니 그대는 잘 보라. 이 사람은 ≪三墳≫, ≪五典≫, ≪八索(팔삭)≫, ≪九丘≫를 읽었다.”注+三墳≫은 三皇의 책이고, ≪五典≫은 五帝典籍이다.
그러자 子革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훌륭한 사관이란 임금의 잘못을 기록하고 임금의 잘한 점을 드러내는데, 이 사람은 글을 潤色하는 것만으로 관직을 맡고 있으니 훌륭한 사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또 말하였다. “신이 또 예전에 듣자오니, 옛날 은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부려注+는 욕심을 극도로 부린 것이다.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모든 곳에 수레바퀴 자국과 말발굽 흔적을 남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祭公(채공) 謀父(모보)가 〈祈昭〉를 지어注+謀父나라 卿士이다. 〈祈昭〉는 시 편명이다. ≪孟子≫ 〈梁惠王 〉에 “ 景公이 임금과 신하가 서로 기뻐하는 노래를 짓게 하였는데 지금의 〈徵招(치소)〉와 〈角招〉가 이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는 ‘’가 되어야 한다. ≪春秋左氏傳≫에는 ‘’라고 되어 있다. 왕의 私心을 막았습니다.注+방탕하게 노는 왕의 마음을 저지한 것이다. 왕이 이 때문에 文宮에서 편안히 돌아가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이 의상에게 그 시에 대해 묻자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더 옛날 것을 물어본다면 어찌 알겠습니까.” 왕이 물었다. “그대는 아는가?”
子革이 대답하였다. “압니다. 그 시에 ‘평화로운 〈祈昭〉의 음악이여! 법도가 왕의 德音을 밝히기에 충분하네.注+祈昭愔愔은 〈祈昭〉의 음악이 평화로우므로, 그 음악의 법도가 임금의 德音을 밝히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우리 왕의 법도를 생각하니 처럼 아름답고 처럼 아름답구나.注+왕의 법도를 생각하니 마치 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詩經≫ 〈大雅 棫樸〉에 “잘 다듬은 그 문장이요, 금옥 같은 그 바탕이로다.[追琢其章 金玉其相]”라고 하였다. 注+길러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데 백성들의 힘을 손상시켜 그 힘을 쓰기를 이기지 못할 듯이 하고 절제하지 못하는데도 만족해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물리거나 만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靈王하고 들어간 다음 며칠 동안 음식을 올려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못 이루었는데 결국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난리를 당하였다.
공자가 이 기록을 읽고 말하였다. “옛 기록에 注+은 이긴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좋구나.
靈王이 만약 이 말과 같이 하였다면 어찌 注+ 靈王乾谿에서 章華臺를 짓자 나라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결국 죽게 되었다. 子革左史를 비난한 것은 諷諫한 것이고, 시를 들어서 간한 것은 순리에 맞다.”


역주
역주1 41-7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楚 靈王 : 公子 圍로, 康王을 시해하고 등극하여 章華臺를 지었고, 吳나라를 치고 陳나라를 멸망시키고 醉하여 蔡侯를 죽이는 등 방탕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였다.(≪史記≫ 〈楚世家〉)
역주3 八索의……기록이다 : ≪春秋左氏傳≫ 昭公 12년 조 杜預의 注에 “八索은 八卦의 說이고 九丘는 九州의 기록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 周 穆王 : 周나라 제5대 왕으로 이름은 滿이다. 昭王의 아들로, 소왕이 楚나라의 원정 도중에 죽자 즉위했다. 8종의 駿馬를 타고 전 국토를 돌아다녔으며 서방의 이민족 犬戎을 토벌하려다가 실패하여 제후의 離叛을 초래하자 형벌을 정했는데, 이때부터 주나라의 덕이 쇠퇴했다고 한다.
역주5 백성들의……없도다 : ≪春秋左氏傳≫ 昭公 12년 조의 林堯叟의 注에는 “이때 穆王이 먼 곳을 유람하면서 백성의 힘을 過度하게 사용하고,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시는 일에 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6 사사로운……것이다 : 顔淵이 仁을 묻자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고 禮로 돌아가는 것이 仁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고 禮로 돌아가면 천하가 仁을 허여할 것이다. 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한 공자의 말이 ≪論語≫ 〈顔淵〉에 보인다.
역주7 乾谿에서……기약했겠는가 : 乾谿는 춘추시대 楚나라의 땅인 安徽省 亳縣에 있는 지명이다. 초 영왕이 이곳에 臺를 짓고는 방탕하게 놀다가 자신의 동생인 公子 比의 반란으로 인해, 산속을 방황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春秋左氏傳≫ 昭公 13년)
역주8 (煞舟)[然丹] : 저본에는 ‘煞舟’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然丹’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丘)[九] : 저본에는 ‘丘’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九’로 바로잡았다.
역주10 :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는 이 글자가 없다.
역주11 (耳補)[左傳] : 저본에는 ‘耳補’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左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殆)[沒] : 저본에는 ‘殆’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沒’로 바로잡았다.
역주13 文宮 : 漢文大系本과 ≪春秋左氏傳≫ 昭公 12년 조에는 ‘祗宮’이라고 되어 있다.
역주14 (聞)[問] :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問’으로 바로잡았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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