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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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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孔文子 使太叔疾 出其妻하고 而以其女妻之注+ 疾娶於宋子朝하니러니 子朝出커늘 文子使疾 出其妻而己妻之하다어늘
疾誘其初妻之娣하여 爲之立宮하고 與文子女 如二妻之禮한대 文子怒하여 將攻之러라
孔子舍璩伯玉之家러니 文子就而訪焉한대 孔子曰 簠簋之事 則嘗聞學之矣어니와 兵甲之事 未之聞也로이다
退而命駕而行曰 鳥則擇木이어니와 木豈能擇鳥乎리오 文子遽自止之曰 圉也豈敢度其私哉注+리오 亦訪衛國之難也니이다
將止러니 會季康子問冉求之戰한대 冉求旣對之하고 又曰 夫子 播之百姓이라 質諸鬼神而無憾注+恨也하리니 用之則有名이리이다
康子言於哀公하고 以幣迎孔子曰 人之於冉求 信之矣 將大用之하소서하다


나라 太叔疾로 하여금 아내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注+당초에 太叔疾나라 子朝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동생을 총애하였다. 자조가 出奔하자 공문자가 태숙질로 하여금 아내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러자 太叔疾이 처음 아내의 동생을 유혹하여 집을 지어주고 孔文子의 딸과 함께 두 명의 아내처럼 대우하였다. 孔文子가 화가 나서 太叔疾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물러나 수레를 준비하라고 명하고 떠나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文子가 급히 만류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개인적인 일을 도모하겠습니까.注+는 도모하다는 뜻이다. 또한 나라의 환난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머무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季康子冉求에게 전쟁에 대해 묻자, 염구가 이에 대해 대답하고 나서 덧붙여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이 두루 퍼졌고 귀신에게 質正해보아도 한스러울 것이 없을 정도이니注+한스럽다는 뜻이다. 등용하신다면 이름이 날 것입니다.”
계강자가 이 일을 哀公에게 이야기한 다음 말하였다. “사람들이 염구를 신임하니 장차 그를 크게 등용하십시오.”


역주
역주1 41-15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孔文子 : 衛나라 대부 孔圉이다. ≪論語≫ 〈公冶長〉에 子貢이 孔文子가 어찌하여 文이라는 시호를 받았는지 묻자, “明敏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文’이라고 시호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라고 한 공자의 말이 보인다.
역주3 공자가……있었는데 : 璩伯玉은 ‘蘧伯玉’이라고도 한다. 衛나라 대부로 이름은 瑗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그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가자 거백옥이 使者를 보내왔으므로 공자가 거백옥의 안부를 물은 내용이 ≪論語≫ 〈憲問〉에 보인다. 아마도 이때인 듯하다.
역주4 簠簋(제사)에……못했습니다 : 이와 비슷한 내용이 ≪論語≫ 〈衛靈公〉에도 보인다. 衛 靈公이 공자에게 陣法에 대해 묻자, 공자가 “俎豆(祭器)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지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라고 하고, 다음날 위나라를 떠난 일이 있었다.
역주5 새는……있겠는가 : ≪史記集解≫에 服虔의 注에 “새는 자신(공자)을 비유하고, 나무는 가려는 나라를 비유한 것이다.[鳥喩己 木以喩所之之國]”라고 하였다.
역주6 幣帛을……하면서 : 이 부분은 ≪史記≫ 〈孔子世家〉에 “이때에 季康子가 公華, 公賓, 公林을 내쫓고 폐백으로 공자를 맞이하자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갔다.[會季康子逐公華公賓公林 以幣迎孔子 孔子歸魯]”라고 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역주7 (歸孽)[娣嬖] : 저본에는 ‘歸孽’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 哀公 11년 조와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娣嬖’로 바로잡았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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