衛孫桓子
가 侵齊
하여 遇敗焉
注+桓子는 孫良夫也라 侵齊라가 與齊師遇하여 爲齊所敗也라한대 齊人乘之
하여 新築大夫
하니 仲叔于奚
가 以其衆救桓子
하여 桓子乃免
하다
衛人
이 以邑賞仲叔于奚
한대 于奚辭
하고 請曲懸之樂
注+諸侯는 軒懸이라 軒懸은 闕一也라 故謂之曲懸之樂이라과 繁纓以朝
注+馬纓은 當膺以索群銜이라 以黃金爲飾也라어늘 許之
하고 書在三官
注+司徒는 書名하고 司馬는 書服하고 司空은 書勳也라이라
子路仕衛
라가 見其故
하고 以訪孔子
한대 孔子曰 惜也
라 不如多與之邑
이니라 惟器與名
은 不可以假人
注+器는 禮樂器요 名은 尊卑名이라이니 君之所司
注+司는 主라일새라
名以出信
하며 信以守器
하며 器以藏禮
注+有器然後에 得行其禮라 故曰器以藏禮라하니라하며 禮以行義
하며 義以生利
하며 利以平民
하나니 政之大節也
라
若以假人이면 與人政也니 政亡則國家從之하리니 不可止也니라
衛나라
가
齊나라를 침략하는 도중에 제나라 군대를 만나 싸워 패배하였다.
注+桓子는 孫良夫이다. 제나라를 침략하는 중에 제나라 군대와 만나 제나라에 패배한 것이다. 이때 제나라 사람이 틈을 타 공격하여
新築의
大夫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仲叔于奚가 그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桓子를 구하여 환자가 이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뒤에 위나라 사람이 중숙우해에게 고을을 상으로 주자 우해가 사양하고
曲懸의 음악과
注+제후는 을 쓴다. 軒懸은 四面에서 한쪽 면을 비워두기 때문에 ‘曲懸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을 갖추고 조현할 수 있도록
注+馬纓(말 가슴걸이)은 가슴에 걸어 재갈들을 묶는 것이다. 황금으로 장식한다. 청하였는데,
衛侯가 허락하고 이를 세
官府에 기록하게 하였다.
注+司徒는 名號를 기록하고 司馬는 服飾을 기록하고 司空은 功勳을 기록한다.
이때 자로가 위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보고 공자를 찾아가서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애석하다. 고을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器物과
名號만은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니,
注+器는 禮樂의 기물이고, 名은 尊卑의 명호이다. 이는 임금이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注+司는 주관한다는 뜻이다.
명호에 맞게 하여 백성의
信賴를 얻고 신뢰를 바탕으로 기물을 지켜내며 기물로써 거기에 담긴 예를 표현하는 것이다.
注+어떤 기물이 있은 뒤에야 그 기물을 가지고 예를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물로써 거기에 담긴 예를 표현한다.’라고 한 것이다. 예로써
義를 행하고
義로써 이익을 내며 이익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법이니, 이는 정치의 큰
綱領이다.
만약 이것을 남에게 빌려준다면 政權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권을 잃으면 국가도 따라서 망하게 되어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