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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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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在宋注+夫子在宋國이라 見桓魋自爲石槨호대 三年而不成注+見桓魋作石槨호대 三年未成이라하고 夫子愀注+ 七小切이라然曰注+夫子作色而言이라 若是其靡也注+如此奢侈 死不如速朽之愈注+人之死不如速朽腐之爲也로다
冉子僕曰注+冉有爲夫子僕하여 而問曰 凶事不豫라하니 此何謂也注+在禮 喪事不豫備라하니 何爲也잇고잇고 夫子曰 旣死而議謚注+ 音示注+旣沒之後 方議謚號하고 謚定而卜葬注+謚號旣定 方卜葬地하고 旣葬而立廟注+葬事旣畢 方立廟之하니
皆臣子之事 非所豫屬也注+此皆人臣人子之事 不當以先屬備也어든 況自爲之哉注+況桓魋自爲石郭哉


42-2 공자가 송나라에 있을 때注+부자가 송나라에 있을 때이다. 가 자신의 石槨을 만든 지 3년이 되도록 완성하지 못한 것을 보고注+환퇴가 石槨을 만들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완성하지 못한 것을 본 것이다. 부자가 정색하여注+頭註:(정색하다)는 의 반절이다. 말하였다.注+부자가 정색하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사치스럽게 만든단 말인가.注+이처럼 사치한다는 것이다. 죽었으면 차라리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낫다.”注+사람이 죽으면 차라리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冉子(염유)가 수레를 몰다가 물었다.注+염유가 부자를 위하여 수레를 몰다가 물은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注+예에 喪事는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는 어째서이냐고 한 것이다. 부자가 대답하였다. “죽은 다음에 시호를注+頭註:(시호)는 이다. 의논하고,注+죽은 다음에야 시호를 의논하는 것이다. 시호를 정한 뒤에 葬地를 택하고,注+시호를 정한 뒤에야 葬地를 택하는 것이다. 장사를 지낸 뒤에 사당을 세우는 법이다.注+장사를 지낸 다음에야 사당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모두 신하와 자식 된 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미리 맡기지 않는데注+이는 모두 신하와 자식 된 자의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미리 맡겨 대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 만드는 것에 있어서이겠는가.”注+하물며 환퇴가 자신의 석곽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이겠느냐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桓魋(환퇴) : 송나라의 대부이다. 환퇴가 공자를 죽이려 하자, 공자가 微服 차림으로 송나라를 지난 일이 ≪孟子≫ 〈萬章 上〉에 보인다.
역주2 禮에……합니다 : 사람이 죽기 전에 喪具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禮記≫ 〈檀弓 上〉에 “喪事의 도구를 미리 갖추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긴다. 군자는 하루 이틀 사이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喪具 君子恥具 一日二日而可爲也者 君子弗爲也]”라고 하였고, ≪春秋左氏傳≫ 隱公 원년 조에도 “아직 죽지 않은 사람에게 부의물을 미리 주었으니, 예가 아니다.[預凶事 非禮也]”라고 하였다.
역주3 (比)[此] : 저본에는 ‘比’로 되어 있으나, 江陵本과 慶長本에 의거하여 ‘此’로 바로잡았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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