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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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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延陵季子聘于上國하여 適齊라가 於其返也 其長子死於嬴博之間注+嬴博 地名也이어늘
孔子聞之曰 延陵季子 吳之習於禮者也라하고 往而觀其葬焉한대
其歛 以時服而已注+隨冬夏之服하고 無所加 其壙 掩坎하고 深不至於泉하며 其葬器之贈이요
旣葬 其封 廣輪揜坎하고 其高可隱也러니 旣封 則季子乃左袒하고 右還其封하여
且號者三曰 骨肉歸于土 命也어니와 若魂氣則無所不之 則無所不之라하고 而遂行하니 孔子曰 延陵季子之禮其合矣


나라 上國聘問하기 위해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의 큰 아들이 사이에서 죽었다.注+은 지명이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延陵季子나라 사람으로 禮法에 익숙한 자이다.” 그리고는 가서 장사 지내는 법을 살폈다.
연릉계자는 斂襲할 때에는 계절에 맞는 옷을 입힐 뿐이었고,注+계절에 맞는 옷만 입히고 더 장식하지 않은 것이다.壙中은 구덩이만 가릴 정도로 파고 물이 나는 데까지 깊이 파지 않았으며, 埋葬할 때에는 를 넣지 않았고,
매장한 다음 봉분할 때에는 는 구덩이를 덮을 만하고 높이는 사람을 가릴 만한 정도로 하였다. 봉분을 마치자 계자가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으로 그 봉분한 곳을 돌면서
또 세 차례 이렇게 號哭하였다. “뼈와 살이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운명이지만 는 가지 못할 데가 없느니라. 가지 못할 데가 없느니라.” 그리고는 드디어 떠났다. 공자가 말하였다. “연릉계자의 喪禮禮法에 맞다.”


역주
역주1 42-17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延陵季子 : 吳나라 季札로, 延陵에 봉해졌으므로 延陵季子라고도 불리는데, 上國에 두루 朝聘하면서 당시의 어진 사대부들과 사귀었다.
역주3 嬴邑과 博邑 : 모두 齊나라에 있는 지역으로 지금의 山東省 泰安縣 지역이다.
역주4 明器 : 장사 지낼 때에 亡人이 生時에 쓰던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무덤에 넣던 부장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나무나 대나무, 흙 등으로 만든다.
역주5 넓이 : 원문의 ‘廣輪’은 ≪禮記集說大全≫ 〈檀弓 下〉 陳澔 注에 “‘廣’은 ‘가로[橫]’를 가리키고 ‘輪’은 ‘세로[直]’를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역주6 (盟)[明] : 저본에는 ‘盟’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時) : 저본에는 있으나 ≪禮記≫ 〈檀弓 下〉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보아 번역하지 않았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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