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延陵季子聘于上國
하여 適齊
라가 於其返也
에 其長子死於嬴博之間
注+嬴博은 地名也라이어늘
孔子聞之曰 延陵季子는 吳之習於禮者也라하고 往而觀其葬焉한대
其歛
은 以時服而已
注+隨冬夏之服하고 無所加라요 其壙
은 掩坎
하고 深不至於泉
하며 其葬
은 無
器之贈
이요
旣葬
에 其封
은 廣輪揜坎
하고 其高可
隱也
러니 旣封
에 則季子乃左袒
하고 右還其封
하여
且號者三曰 骨肉歸于土는 命也어니와 若魂氣則無所不之라 則無所不之라하고 而遂行하니 孔子曰 延陵季子之禮其合矣라
吳나라
가
上國에
聘問하기 위해
齊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의 큰 아들이
사이에서 죽었다.
注+嬴과 博은 지명이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延陵季子는 吳나라 사람으로 禮法에 익숙한 자이다.” 그리고는 가서 장사 지내는 법을 살폈다.
연릉계자는
斂襲할 때에는 계절에 맞는 옷을 입힐 뿐이었고,
注+계절에 맞는 옷만 입히고 더 장식하지 않은 것이다. 그
壙中은 구덩이만 가릴 정도로 파고 물이 나는 데까지 깊이 파지 않았으며,
埋葬할 때에는
를 넣지 않았고,
매장한 다음 봉분할 때에는
는 구덩이를 덮을 만하고 높이는 사람을 가릴 만한 정도로 하였다. 봉분을 마치자 계자가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으로 그 봉분한 곳을 돌면서
또 세 차례 이렇게 號哭하였다. “뼈와 살이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운명이지만 魂과 氣는 가지 못할 데가 없느니라. 가지 못할 데가 없느니라.” 그리고는 드디어 떠났다. 공자가 말하였다. “연릉계자의 喪禮는 禮法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