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庭廣記에 曰 先聖은 生有異質하니 凡四十九表라 反首와 洼面과 月角과 日準과
河目
注+上下眶이 平而長이라과 海口
와 斗脣
과 昌顔
과 均頤
와 輔
와 騈齒
와 龍形
과 龜脊
과 虎掌
과 騈脇
과 參膺
과
圩頂과 山臍와 林背와 翼臂와 注頭와 阜脥과 堤眉와 地足과 谷覈과 雷聲과 澤腹이요
面如蒙倛하고 手垂過膝하며 眉一十二彩요 目六十四理라 立如鳳峙하고 坐如龍蹲하며
手握天文하고 足履度字하며 望之如仆하고 就之如升하며 脩上과 趨下와 末僂와 後耳요
視若營四海하고 耳垂珠庭하고 胸有文하니 曰制作定世符라 身長九尺六寸이요 腰大十圍라하니라
○孔子適周에 周大夫萇弘이 語劉文公曰 吾觀孔仲尼호니 有聖人之表라
河目而龍顙은 黃帝之形貌也요 脩肱而龜背하고 長九尺有六寸하니 成湯之容體也라
言稱先王하고 躬履謙讓하고 洽聞強記하고 博物不窮하니 抑非聖人之興者乎아하니라
○齊子與適魯하여 見孔子라 子與曰 聞子之名호대 不覩子之形이 久矣러니
○先聖四十七世孫孔傅云 家廟所藏에 衣燕居服하고 顔子從行을 謂之小影이라하니 於像에 最眞이라
唐劉禹錫新州廟碑에 謂堯頭禹耳요 華冠象佩니 取之自鄒魯者가 卽所傳小影也라하니라
○四十六世孫孔宗壽云 家藏所畵에 先聖이 按几而坐하고 從其十弟子者를 亦謂之小影이요
其立而顔淵侍者를 世謂之行敎니 行敎는 已有世本이어니와 小影은 摹者多訛라하니라
○廣陵馬大年이 爲夏縣令하여 寄居司馬朴家할새 見所藏先聖畫像하니
乃唐人王維筆이니 眼中神彩가 殊不類라 常像은 上長下短하고 背微僂하니 以傳考之하면 當然이라
莊子
에 載老萊子出薪
하여 遇先聖
하고 反以告曰 有人於此
하니 脩上而趨下
하고 末僂而後耳
하며 視若營四海
注+注에 長上而促下라 末僂는 微曲也요 後耳는 耳近後也라 視若營四海는 則憂世之容可掬이라라하니
其像은 皆可畵로대 若夫視若營四海는 則非摩詰이면 不能作也라 抑形狀은 末也니
論語
에 記聖人之氣象曰 子
는 溫而厲
하며 威而不猛
하며 恭而安
은 則雖摩詰
이라도 亦莫作也
注+見祖庭廣記하니라라
의
像注+옥빛과 붉은빛이 감도는 안색에 녹색 비녀와 황색 갓끈, 자줏빛 갖옷을 착용하였다.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先聖께서는 남과 다른 형질을 타고 나셨으니 모두 49가지의 특이점이 있으셨다.
와 우묵한 얼굴, 가운데가 튀어나온 이마와 높은 코,
河水 같이 긴 눈과
注+위아래 눈언저리가 평평하고 길다. 바다 같이 큰 입, 큰 입술과 빛나는 미간, 평평한 턱과
와 용 같은 형상, 거북이 같은 등과 범 같은 손바닥,
과 솟은 가슴,
오목한 정수리와 산처럼 불룩한 배꼽, 숲처럼 널찍한 등과 날개를 드리운 듯한 긴 팔, 움푹 꺼진 머리, 언덕처럼 두툼한 뺨과 제방처럼 긴 눈썹, 땅 같이 네모난 발과 깊이 통하는
우레 같은 목소리와 윤택한 배가 있다.
얼굴은
와 같고 손은 무릎 아래로 늘어지고, 눈썹은 열두 빛깔이 나고 눈에는 예순네 개의 결이 있고, 서 있으면 봉황이 우뚝 선 듯하고 앉아 있으면 용이 웅크린 듯하고,
손바닥에 천문을 쥐고 있고 발바닥에 度자 모양이 있고, 멀리서 바라보면 엎드린 듯하고 가까이 가서 보면 올라갈 듯하고, 상반신은 길고 하반신은 짧고, 등줄기는 굽고 귀는 뒤로 붙었고,
에 드리우고, 가슴에는
라는 글자가 있다. 신장은 9척 6촌, 허리둘레는 10
이다.”
魯司寇像
○공자께서 주나라에 갔을 때 주나라 대부 萇弘이 劉文公에게 말하였다. “내가 孔仲尼를 살펴보니 聖人의 표시가 있었습니다.
河水 같이 긴 눈에 용 같은 이마는 黃帝의 모습이고, 팔이 길고 거북 같은 등을 하고 있으며 키는 9척 6촌이니 成湯의 용모입니다.
○제나라 태사 子與가 노나라에 가서 공자를 뵈었다. 자여가 말하였다. “그대의 이름을 듣고서도 그대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
先聖의 47세손
가 말하였다. “
家廟에 소장된 것 가운데, 공자께서
燕居服을 입으시고
顔子께서 따르고 있는 그림을
小影이라고 하니, 초상 중에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깝다.
唐나라 때
劉禹錫의
에
라고 한 것이 곧 전해진
小影이다.”
○46세손
가 말하였다. “집에 소장한 그림 가운데, 선성께서 안석에 기대어 앉아서 열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계신 것 역시 ‘
小影’이라고 한다.
선성께서 서 계시고 안연이 모시고 있는 것을 세상에서는 ‘行敎’라고 하는데, ‘행교’는 세상에 전하는 본이 있으나 ‘소영’은 摹寫한 것 가운데 잘못된 것이 많다.”
○
廣陵 이
夏縣의 현령이 되어
의 집에 기거할 때 소장되어 있던
先聖의 화상을 보았다.
바로 당나라 사람
의 필적이었는데, 눈 속의 정신과 광채가 전혀 닮지 않았다. 일반적인 화상은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짧으며 등이 약간 굽어 있는데, 전하는 기록으로 고증해보면 이런 모습이 당연한 것이다.
그 형상은 모두 그릴 수 있으나, 눈초리가 사해를 경영할 듯하다는 것은 摩詰(王維)이 아니면 그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형상을 그리는 것은 지엽적인 것이다.
≪
論語≫에 성인의 기상을 “공자께서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시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시고 공손하면서 편안하시다.”라고 기록한 것은 비록 마힐이라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