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는 初也요 計는 謀也라 此는 言國家將欲興師動衆인댄 君臣이 必先定計於廟堂之上하여 校量彼我之情하여 而知其勝負也라
原注
死生은 以戰陳言이라 故曰地요 存亡은 以國家言이라 故曰道라
戰勝則兵生而國存하고 不勝則兵死而國亡하나니 爲將者 不可不審察也니라
故로 經之以五事하고 校之以計하여 而索其情이니라
原注
孫子以兵爲國家之大事
하니 爲主, 爲將者
當經理之以五事
하고 又校量以七計
하여 而搜索其彼我勝負之情耳
라
一曰道요 二曰天이요 三曰地요 四曰將이요 五曰法이라
原注
惟有道라야 可以伐無道라 故로 以道先之하고 天時順이라야 宜興師라 故로 以天次之하고 地利便이라야 宜戰守라 故로 地又次之하고 將得人이라야 可制勝이라 故로 將又次之하고 法令行이면 則士用命이라 故로 法又次之하니 五事之序也라
道者는 令民與上同意하여 可與之死하며 可與之生하여 而不畏危也요
原注
爲君者 漸民以仁하고 摩民以義하며 維持之以禮樂하고 敎之以孝悌忠信하여 使民으로 知親其上, 死其長이라
故로 與君同心同德하여 上下一意하여 可與之同死하고 可與之同生이니 雖有危難이나 而不畏懼也라
原注
陰陽者
는 之屬也
요 寒暑者
는 暑雨祈寒之月
이니 所謂夏不征南
하고 冬不征北
이 是也
라
昔春秋之世에 歲星在越而吳伐之러니 後三十六年에 越滅吳하니
夫吳越之君이 德均勢敵이어늘 闔廬興師하여 志欲呑滅이요 非爲拯民이라
蓋秦始皇은 信讒拒諫하고 虐害生民하고 二世胡亥는 惟務弑戮하니 此는 歲星不爲福而反爲禍也라
又若
하며 하니 是知古人
이 但修人事
요 不必泥在陰陽
이라
故曰 天官時日을 明將은 不法하고 闇將은 拘之라하니라
原注
遠近은 以地里言이요 險易, 廣狹, 死生은 以地形言이라
地遠宜緩이요 地近宜速이며 地險宜用步요 地易宜用騎며 地廣宜用衆이요 地狹宜用寡며 死地宜戰이요 生地宜守니 此八者는 經之以地也라
原注
智則能謀하고 信則能守하고 仁則能愛하고 勇則能戰하고 嚴則能臨이니 此五者는 經之以將也라
原注
張賁註云 部曲有制하고 分官有道하여 使各主其用하여 而不失其義라하니 亦通이라
凡此五者는 將莫不聞이로되 知之者는 勝하고 不知者는 不勝이라
原注
凡此五者는 爲將之人이 莫不聞之로되 但知彼我之情者는 勝하고 不知彼我之情者는 不勝이라
原注
若吏卒縱橫하여 不用將命하여 金之不止하고 鼓之不進이면 是는 法令不行也라
夫魏絳, 穰苴는 初命爲將하니 當時國家 威令不行하고 上下懈怠하니 此는 楊干莊賈一不用命에 而魏絳穰苴輒斬之하니
蓋不如是면 則法令不行하고 軍不齊一하리니 何以取勝이리오
李靖은 爲將日久하여 法令素行하고 上下相得하니 亦奚用殺哉리오
原注
辨旌旗하고 審金鼓하며 明開闔하고 知進退하며 閑馳逐하고 便弓矢하며 習擊刺은 此練士之法也라
原注
司馬法曰 賞不踰時라하니 欲民速得爲善之利요 罰不遷列이라하니 欲民速覩爲不善之害라
將聽吾計하여 用之必勝이어든 留之하고 將不聽吾計하여 用之必敗어든 去之니라
原注
人君與大將이 定計於廟堂之上이면 大將便當選偏裨之將而節制之라
故로 言偏裨之將이 聽信吾計하여 用之而戰에 必能取勝이면 則留而任之하고
偏裨之將이 不聽吾計하여 用之而戰에 必然取敗면 則除而去之하여 不任也라
原注
言吳王이 將聽我所陳之計而用兵이면 則必勝이니 我乃留此矣요 將不聽我所陳之計而用兵이면 則必敗니 我乃去之他國이라하니
不應中間用此數語하여 解激吳王而求用이니 是亦何等心哉아
況此篇에 專言始計하니 首段은 總言人君與大將이 於廟堂之上에 經此五事하고 校以七計하여 搜索彼我勝負之情하고
第二段은 言大將選用偏裨之將하여 而授之以計하고 第三段은 言因利制權之道하니 是亦所謂計也라
末段은 總結上文하여 言得算多者勝하고 得算少者不勝하니 亦豈在夫計之外哉아
原注
計有所利요 而偏椑之將이 又皆聽信이어든 乃爲之勢하여 以佐助其外라
原注
如韓信이 知趙王陳餘不用李左車之計하니 是는 我之所利也라
又選二千人
하여 人持一赤幟
하고 山而望趙軍
하고 戒曰
若趙空壁逐我어든 則疾入趙壁하여 拔趙幟하고 立漢赤幟라하고
原注
兵者
는 詭詐之道也
니 如
枝曳柴揚塵
하고 하고 하고 는 皆用詭道以取勝也
라
原注
昔
에 趙奢救
與
할새 三十里而止
하고 令軍中曰 有以軍事諫者
면 死
하리라하고 堅壁留二十八日不行
하고 復益增壘
하다
秦 間使來入이어늘 趙奢善食遣之한대 間使還報秦將하니 秦將이 大喜曰 夫去國三十里而軍不行하고 乃增壘하니 閼與는 非趙地也라하다
趙奢旣以遣秦間하고 乃卷甲而趨之하여 一日一夜에 至閼與하여 離城五十里而軍하고 發萬人하여 拒北山이러니
原注
初擧孝廉하여 爲憲陵園丞이라가 遷遼東屬國都尉러니 鮮卑犯塞어늘
熲擊之할새 恐賊驚去하여 乃詐稱璽書召還하고 熲이 潛於還路에 設伏하여 悉斬獲之하니라
原注
如越與吳夾水相拒할새 越爲左右句卒하니 相去五里라
岑彭
은 漢將
이니 申令西擊山都縣
할새 而潛兵渡
하여 擊破秦豊
하니라
原注
敵人兵勢旣實
이면 則當爲不可勝之計
하여 以備之
니 如
이 是也
라
原注
敵將剛忿이면 則辱之令怒하여 彼志氣撓惑이면 則不謀而輕進이라
或曰 彼性剛忿이어든 我當撓惑之라하니 如後篇忿速可侮 是也라
原注
卑辭厚賂하여 使彼志驕니 志驕則怠而不爲備라 故로 可襲而破之니
로 與東胡
하니 東胡志驕
하여 不爲之備
하고 又求地於冒頓
이어늘 하고
原注
如
具進
이라가 及見使者
하여는 則佯曰 吾以爲亞父使
러니 今乃項王使也
라하고 更以惡草具進
한대 使者歸告項羽
하니 羽由是不聽范增之計
하고
如秦晉合兵伐鄭이어늘 鄭遣使夜出하여 說秦伯曰 今得鄭則歸於晉하리니 於秦에 無益也라
原注
乘敵人之無備하여 攻而取之하고 出敵人之不意하여 襲而破之니
夫未戰而廟算勝者는 得算多也요 未戰而廟算不勝者는 得算少也니라
原注
夫未戰之하여 先於廟堂之上에 以五事七計校量之하여 或得八九焉하면 是는 得算多而必勝也요 未戰之하여 先於廟堂之上에 以五事七計校量之하여 或得四五焉이면 是는 得算少而不勝也라
多算이면 勝하고 少算이면 不勝이어든 而況於無算乎아
原注
五事七計에 得多者는 勝하고 少者는 不勝하나니 而況於五事七計에 全無者乎아
原注
○ 愚謂 算은 卽計也니 正指五事七計言이요 不可別立一意說이니 恐非孫子本意라
道天地將法五者는 治國之常事라 故曰經이요 主孰有道로 至賞罰孰明七者는 制勝之權法이라 故曰計요 下文은 皆說因利制權之事라
시始는 처음이요 계計는 피아彼我를 헤아려 계책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장차 군대를 일으키고 병사를 동원하고자 하면 군주와 신하가 반드시 먼저 묘당廟堂(조정)의 위에서 계책을 결정하여 적과 우리의 실정을 비교하고 헤아려서 그 승부의 소재를 알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손자孫子가 〈시계始計〉를 제1편으로 삼은 것이다.
죽고 삶이 달려있는 자리이며 나라가 보존되고 멸망하는 갈림길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原注
손자孫子는 제齊나라 사람으로 오吳나라에서 벼슬하였고, 병서兵書 13편을 저술하였다.
첫머리에서 말하기를 “병兵(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의 큰일이다.
바로 육군六軍이 죽고 사는 자리이며, 한 나라가 보존되고 멸망하는 갈림길이다.”라고 하였다.
죽고 삶은 전진戰陣을 가지고 말하였으므로 지地(자리)라 하였고, 보존되고 멸망함은 국가로써 말하였으므로 도道(갈림길)라 하였다.
싸워서 이기면 장병들이 살고 나라가 보존되며, 이기지 못하면 장병들이 죽고 나라가 멸망하니, 장수 된 자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일로써 다스리고 계책으로써 비교하여 그 실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原注
손자孫子는 병兵을 국가의 큰일로 삼았으니, 군주가 되고 장수가 된 자가 진실로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다스리고 또 일곱 가지 계책으로써 비교하고 헤아려서, 적과 우리의 승부의 실정을 찾아야 할 뿐이다.
첫 번째는 도道요 두 번째는 천시天時요 세 번째는 지리地利요 네 번째는 장수將帥요 다섯 번째는 법령法令(법도와 호령)이다.
原注
이것은 이른바 ‘다섯 가지 일’이라는 것이다.
오직 도道가 있어야 도道가 없는 자를 정벌할 수 있으므로 도道를 맨 앞에 놓았고, 천시天時가 순하여야 군대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천시天時가 그다음이 되었고, 지리地利가 편리하여야 싸우고 수비하기에 적당하므로 지리地利가 또 그다음이 되었고, 장수를 훌륭한 사람을 얻어야 승리할 수 있으므로 장수가 또 그다음이 되었고, 법령이 잘 시행되면 병사들이 명령을 따르므로 법령이 또 그다음이 되었으니, 다섯 가지 일의 순서이다.
도道란 백성(병사)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뜻을 함께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서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原注
도道는 인의仁義와 예악禮樂,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이른다.
군주 된 자가 백성을 인仁으로써 스며들게 하고 백성을 의義로써 연마하며, 예악禮樂으로써 유지하고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가르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친애하고 상관을 위하여 죽을 줄을 알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와 마음을 함께하고 덕을 함께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한뜻이 되어서 함께 죽고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니, 비록 위험과 어려움이 있으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옛날 주周 무왕武王은 3천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마음을 함께하고 덕을 함께하였으니, 이는 윗사람과 뜻을 함께한 것이요,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억조의 백성이 있었으나 마음이 떠나고 덕이 떠났으니, 이는 윗사람과 뜻을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순경荀卿이 말하기를 “인仁한 사람의 군대는 상하가 한마음이 되고 삼군三軍이 힘을 함께하니, 신하가 군주를 대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할 때에 마치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을 호위하고 손과 발이 머리와 눈을 보호하고 가슴을 덮어주듯이 한다.” 하였으니,
이렇게 하여야 함께 죽고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천시天時란 음陰과 양陽, 추위와 더위를 때에 따라 제재制裁(조절)하는 것이다.
原注
음陰과 양陽, 추위와 더위를 때에 따라 제재함은 하늘[天道]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음陰과 양陽이란 시절과 날짜의 간지干支에 대한 고허孤虛와 왕상旺相의 등속이요, 추위와 더위란 무더운 장마와 크게 추운 달(시기)이니, 이른바 ‘여름에는 남쪽 지방을 정벌하지 않고 겨울에는 북쪽 지방을 정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옛날 춘추시대에 세성歲星이 월越나라에 있었는데,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를 정벌하였다가 36년 뒤에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다.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군주는 덕이 비슷하고 형세가 비슷하였는데, 합려闔廬가 군대를 일으켰으니 그 뜻은 병탄하여 멸망시키고자 한 것이지 백성을 구제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세성歲星이 월越나라에 복을 내리고 오吳나라에 화를 내렸으니, 이는 음陰과 양陽에 순응하지 아니하여 패망한 경우이다.
한漢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에 들어간 해에 세성歲星이 동정東井에 있었는데, 진秦나라가 멸망한 것은 어째서인가?
진시황秦始皇은 참소하는 말만 믿고 간언을 물리치고 생민生民을 학대하고 해쳤으며, 이세황제二世皇帝인 호해胡亥는 오직 살육殺戮에 힘썼으니, 이는 세성歲星이 복이 되지 않고 도리어 화가 된 경우이다.
또 주周 무왕武王은 갑자일甲子日에 군대를 일으켜 승리하였고,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갑자일甲子日에 군대를 일으켜 패하였으며, 송宋나라 유유劉裕가 남연南燕의 군주인 모용초慕容超를 정벌할 적에 왕망일往亡日에 싸워 승리하였으니, 이는 옛사람이 다만 사람의 일만 닦고 굳이 음陰‧양陽에 집착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관天官과 시일時日을 현명한 장수는 본받지 않고 어두운 장수는 구애받는다.” 한 것이다.
큰 추위와 큰 더위에는 군대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니, 한漢나라가 흉노匈奴를 정벌할 적에 날씨가 추워서 병사들의 손가락이 얼어 떨어져 나갔고, 마원馬援이 남만南蠻을 정벌할 적에 병사들이 전염병으로 많이 죽었으니, 이는 모두 천시天時를 따르지 아니하여 폐해를 받은 경우이다.
지리地利란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과 죽고 사는 지형이다.
原注
멀고 가까움은 땅의 거리를 가지고 말하였고,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과 죽고 사는 것은 지형地形을 가지고 말하였다.
땅의 거리가 멀면 마땅히 느려야 하고 땅의 거리가 가까우면 마땅히 신속하여야 하며, 지형이 험할 경우에는 마땅히 보병步兵을 써야 하고 지형이 평탄할 경우에는 마땅히 기병騎兵을 써야 하며, 땅이 넓을 경우에는 많은 병력을 써야 하고 땅이 좁을 경우에는 적은 병력을 써야 하며, 죽을 지형에서는 싸워야 하고 살 지형에서는 수비하여야 하니, 이 여덟 가지는 땅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장수란 지혜와 신의와 인자함과 용맹함과 엄격함이다.
原注
〈장수가〉 지혜로우면 능히 도모하고, 신의가 있으면 능히 지키고, 인자하면 능히 사랑하고, 용감하면 잘 싸우고, 엄격하면 잘 군림하여 통제하니, 이 다섯 가지는 장수로서 다스리는 것이다.
법령法令이란 부곡部曲(부대)과 절제節制(통제)와 관직을 맡김과 군량 수송로와 군수물자를 주관함과 사용할 물건을 계산함이다.
原注
곡曲은 부곡部曲을 이르고, 제制는 절제節制를 이르고, 관官은 편비偏裨의 임무를 나누어 맡김을 이르고, 도道는 군량의 수송로를 편리하게 함을 이르고, 주主는 군수물자를 주관하는 사람을 이르고, 용用은 사용하는 물건을 계산함을 이르니, 이 여섯 가지를 법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장분張賁의 주에는 “부곡部曲이 통제가 있고 관원을 나누어 맡김에 방도가 있어 부림에 각각 그 쓰임을 주관하여 그 의義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部曲有制 分官有道 使各主其用 而不失其義]” 하였으니, 또한 통한다.
무릇 이 다섯 가지는 장수치고 듣지 못한 자가 없으나, 이것을 아는 자는 승리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계책으로써 비교하여 그 실정을 찾는 것이다.
原注
무릇 이 다섯 가지는 장수 된 사람치고 듣지 못한 자가 없으나, 다만 적과 우리의 실정을 아는 자는 승리하고, 실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일곱 가지 계책으로써 비교하고 헤아려서 적과 우리의 실정을 찾을 뿐이다.
原注
도道가 있는 자는 승리하고 도道가 없는 자는 패함을 말한 것이다.
예컨대 한漢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에 들어갔을 적에 추호도 범함이 없으니 진秦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고, 항우項羽가 관중에 들어가서 진왕秦王 자영子嬰을 죽이고 궁실을 불태우고 부녀자와 보화寶貨를 노략질하고서 동쪽으로 가니 진秦나라 사람들이 크게 실망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한漢 고조高祖가 끝내 승리하고 항우項羽가 끝내 패망한 이유이다.
原注
재능이 있는 자는 승리하고 재능이 없는 자는 패하는 것이다.
한왕漢王(高祖)은 위魏나라의 대장 백직柏直의 이름을 듣고 말하기를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나니 어찌 우리 한신韓信을 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原注
두 나라의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누가 얻었는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얻은 자는 승리하고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잃는 자는 패하는 것이다.
조조曹操가 한겨울에 오吳나라를 정벌하였으니 이는 천시天時를 잃은 것이요, 모용초慕容超가 대현산大峴山을 점거하지 않았으니 이는 지리地利를 잃은 것이다.
原注
두 나라의 법도와 호령을 누가 더 잘 시행하는가?
법도와 호령이 행해지는 자는 승리하고, 법도와 호령이 행해지지 못하는 자는 패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강魏絳이 양간楊干을 욕보이고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장가莊賈를 목 벤 따위는, 이는 법도와 호령이 행해진 것이다.
만약 관리와 병사들이 제멋대로 방종하여 장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징을 쳐도 싸움을 그치지 않고 북을 쳐도 진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법도와 호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당唐나라 이정李靖이 태종太宗에게 대답하기를 “신臣이 돌궐突厥을 토벌할 적에 번蕃‧한漢의 군대를 통솔하여 천 리 멀리 변방에 출전하였으나, 일찍이 한 명의 양간楊干을 욕보이거나 한 명의 장가莊賈를 목 베지 않고도 또한 적심赤心(衷心)을 미루어 지극히 공정함을 보존했을 뿐입니다.” 하였다.
위강魏絳과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처음 임명되어 장수가 되었는데, 당시 국가의 위엄과 법령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상하上下가 태만하였으니, 이 때문에 양간楊干과 장가莊賈가 한번 명령을 따르지 않자 위강魏絳과 사마양저司馬穰苴가 곧바로 목벤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법도와 호령이 행해지지 않고 군대가 통일되지 않으니,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이정李靖은 장군이 된 지가 오래되어서 법도와 호령이 평소 행해지고 상하가 서로 친하였으니, 또한 어찌 죽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양간楊干은 도공悼公의 아우이니, 다만 그의 종을 목 베었을 뿐이다.
原注
병력이 강한 나라는 승리하고 병력이 약한 나라는 패배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齊 환공桓公이 병사 5만 명을 모집하여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었고, 진晉 문공文公이 병사를 불러 모집하여 선봉대 4만 명을 만들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룩하였고, 진秦 목공穆公이 적진을 무찌르는 병사 3만 명을 배치하여 이웃 적국을 복종시켰으니, 이는 병력이 강하여 이긴 경우이다.
原注
병사들이 훈련된 나라는 승리하고 병사들이 훈련되지 않은 나라는 패하는 것이다.
깃발을 분별하고 징소리와 북소리를 살피며 열리고 닫힘을 밝히고 나아가고 물러감을 알며 달리고 쫓음을 익히고 활을 잘 쏘며, 치고 찌름을 익히는 것은, 이는 병사들을 훈련하는 방법이다.
原注
상과 벌이 분명한 나라는 승리하고 상과 벌이 분명하지 못한 나라는 패배하는 것이다.
《사마법司馬法》에 이르기를 “상賞은 때를 넘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선善을 행한 이로움을 빨리 얻도록 한 것이요, “벌罰은 대열을 옮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선善하지 못한 해害를 빨리 보도록 한 것이다.
항우項羽는 사람을 부릴 적에 마땅히 봉해주어야 하는 공이 있어도 도장이 닳도록 차마 주지 못하다가 끝내 패망하였으니, 이는 상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요, 한漢 원제元帝는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소망지蕭望之를 핍박하여 죽였음을 알았으나 그 죄를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이는 형벌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다.
原注
내가 이 일곱 가지 계책(계산)을 가지고 비교하고 헤아려보면 적과 우리의 승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부하 장수가 나의 계책을 잘 따라서 그를 임용하면 반드시 승리할 경우에는 머물러 있게 하고, 부하 장수가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아서 그를 임용하면 반드시 실패할 경우에는 떠나게 해야 한다.
原注
앞의 ‘장將’자는 대장大將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여기의 ‘장將’자는 편비偏裨의 장수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군주가 대장과 함께 묘당廟堂의 위에서 계책을 결정하면 대장은 곧바로 편비偏裨의 장수를 선발하여 절제節制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편비偏裨의 장수가 내 계책을 따르고 믿어서 이들을 임용하여 싸워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면 머무르게 하여 임용하고,
편비偏裨의 장수가 내 계책을 따르지 않아서 이들을 임용하여 싸워 반드시 패망하게 되면 떠나게 하여 임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옛날 마속馬謖이 제갈량諸葛亮의 절도節度를 어기자 제갈량諸葛亮이 그를 목 베었다.
이는 장수가 자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데 임용했다가 반드시 패하는 경우이니, 이러한 경우에는 떠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原注
○ 장예張預의 주에 ‘장將’자를 평성平聲으로 읽었으니, ‘장將’자를 ‘장차’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손자孫子가 이것으로 오왕吳王을 격동시켜서 등용되기를 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왕吳王이 장차 자신(孫子)이 말한 계책을 따라 용병用兵을 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내가 마침내 여기에 머물 것이요, 장차 내가 말한 계책을 따르지 않고 용병을 하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내가 마침내 타국으로 떠나갈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충후忠厚한 마음이 아니니, 손자孫子의 본의를 잃은 듯하다.
손자孫子는 이 책을 지어서 장차 후세에 전하여 여러 사람의 법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에 이 몇 마디 말을 사용하여 오왕吳王을 격동시켜 등용되기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것이 무슨 마음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바로 장분張賁의 주를 취하고 장예張預의 말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이 편編에는 오로지 ‘시계始計’만을 말하였으니, 첫 단락은 군주와 대장이 묘당廟堂의 위에서 이 다섯 가지 일을 다스리고 일곱 가지 계책을 비교해서 적과 우리가 승부하는 실정을 찾을 것을 총괄하여 말하였고,
두 번째 단락은 대장이 편비偏裨의 장수를 가려 등용하여 계책을 내려주는 일을 말하였고, 세 번째 단락은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을 만드는 방도를 말하였으니, 이 또한 이른바 ‘계計’라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윗글을 총결하여 계책(승산)을 얻음이 많은 자는 승리하고 계책을 얻음이 적은 자는 승리하지 못함을 말하였으니, 또한 어찌 ‘계計’의 밖에 있는 것이겠는가.
계산하여 이롭고 또 편비偏裨의 장수가 믿고 따르거든 마침내 형세를 만들어 그 밖을 도와야 한다.
原注
계책에 이로운 바가 있고 편비偏裨의 장수가 또 모두 믿고 따르거든 마침내 형세를 만들어 그 밖을 돕는 것이다.
앞에서는 편비偏裨의 장수가 내 계책을 따른다고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계산하여 이로운데 편비偏裨가 따른다고 말한 것은 또한 호문互文이다.
세勢라는 것은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을 만드는 것이다.
原注
세勢라는 것은 그 이로운 바를 따라 권변權變의 방도를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조왕趙王과 진여陳餘가 이좌거李左車의 계책을 쓰지 않음을 알았으니, 이는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이에 감히 마침내 정형井陘으로 내려가서 병사 1만 명으로 하여금 먼저 나가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하고,
또다시 2천 명을 선발하여 사람마다 한 개의 붉은 깃발을 가지고 산속에 숨어 은밀히 조趙나라 군영을 엿보게 하면서 경계하기를,
‘만약 조趙나라에서 성벽城壁을 비우고 우리를 추격하거든 너희는 빨리 조趙나라 성벽城壁에 들어가서 조趙나라 깃발을 뽑아버리고 우리 한漢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아놓아라.’ 하였다.
다음날 한신韓信이 대장의 기와 북을 앞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井陘의 입구로 나갔으니, 이것은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을 만든 일이다.
原注
병兵이란 거짓으로 적을 속이는 방도이니, 예컨대 난지欒枝가 나무 섶을 끌고 가서 먼지가 일게 하고, 손빈孫臏이 군대로 하여금 아궁이의 수를 줄이고, 전단田單이 신명神明스런 스승을 세우고 소의 꼬리에 불을 붙이며, 한신韓信이 모래주머니로 유수濰水를 막은 따위와 같은 것은 모두 적을 속이는 방도를 사용하여 승리한 것이다.
이 아래 열네 가지 일은 모두 적을 속이는 방도이니, 바로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을 만드는 방법이다.
原注
그러므로 장수가 본래 유능하면 적에게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옛날 조사趙奢가 알여閼與를 구원할 적에 군대를 거느리고 조趙나라 도성인 한단邯鄲에서 30리쯤 떨어진 지점에서 멈추고, 군중軍中에 명령하기를 “감히 군대의 일을 가지고 간하는 자가 있으면 죽일 것이다.” 하고는, 성벽을 굳게 지켜 28일을 머무르며 행군하지 않고 다시 보루를 더욱 증축하였다.
진秦나라의 간사間使가 들어오자 조사趙奢는 음식을 잘 먹여 보냈는데, 간사間使가 돌아가 이 사실을 진秦나라 장수에게 보고하니, 진秦나라 장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조趙나라 군대가 도성에서 30리를 떠나 더 이상 행군하지 않고 도리어 보루를 증축하니, 알여閼與는 조趙나라의 땅이 아니다.” 하였다.
조사趙奢는 진秦나라 간사間使를 보낸 뒤에 마침내 갑옷을 말아 〈무장을 가볍게 하고〉 급히 달려가서 하루 만에 알여閼與에 이르러 성城에서 50리쯤 떨어진 곳에 군대를 주둔하고 병사 1만 명을 출발시켜 북산北山에서 막게 하였다.
진秦나라 군대가 오자, 마침내 진군秦軍을 대파하여 진군秦軍이 알여閼與의 포위를 풀고 돌아가게 하였으니, 이는 처음에는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뒤에 승리한 것이다.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면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原注
본래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면 적에게는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여몽呂蒙이 거짓으로 병을 칭탁稱託하자 손권孫權은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격문檄文을 보내 도성으로 돌아오게 하고 육손陸遜으로 여몽呂蒙을 대신하여 임무를 맡기고는 은밀히 여몽呂蒙을 보내어 관우關羽를 도모하게 하였으며,
진秦나라가 군중에 명령하기를 “감히 무안군武安君이 장군이 된 것을 누설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 하여 이를 통해 조괄趙括을 패퇴시켰으며, 단기명段紀明이 선비鮮卑를 공격하고자 하면서 소환당한 것처럼 속인 것이 이것이다.
原注
○ 단경段熲은 자字가 기명紀明이니, 무위武威 고장姑臧 사람이다.
처음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헌릉원憲陵園의 승丞이 되었다가 요동속국도위遼東屬國都尉로 승진하였는데, 선비鮮卑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단경段熲은 선비족鮮卑族을 공격할 적에 적이 놀라 도망할까 염려하여 마침내 거짓으로 황제의 친서에 의해 소환된다고 칭하고는, 돌아가는 길에 은밀히 매복을 설치하였다가 추격해오는 선비족鮮卑族을 모두 목 베거나 사로잡았다.
단경段熲은 한漢 환제桓帝 때 사람이니, 뒤에 신풍후新豊侯에 봉해졌다.
가까이 가서 습격하려 하면 멀리 떠나갈 것처럼 보이며,
原注
가까이 가서 적을 습격하려 하면 반드시 멀리 떠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와 물을 끼고 서로 항거할 적에 월越나라가 좌우 구졸句卒을 편성하니, 서로의 거리가 5리였다.
밤중에 다투어 북을 울리고 진격하니, 오吳나라가 군대를 나누어 막았다.
월越나라는 마침내 은밀히 물을 건너 오吳나라 중군中軍을 향해 습격해서 오吳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또 잠팽岑彭이 적의 서쪽 지역을 공격하라고 거듭 명령하고는 군대를 은밀히 출동시켜 면수沔水를 건너간 것이 이것이다.
잠팽岑彭은 한漢나라(後漢) 장수이니, 서쪽으로 산도현山都縣을 공격한다고 거듭 명령하였다가 군대를 은밀히 출동시켜 면수沔水를 건너가 진풍秦豊을 격파하였다.
진풍秦豊은 남군南郡 사람이니, 여구黎丘 땅을 점거하고 초楚 여왕黎王이라고 칭하였다.
멀리 습격하려 하면 가까이 진격할 것처럼 보이며,
原注
멀리 적을 습격하려 하면 반드시 가까이 진격할 것처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임진臨晉에 군대를 크게 배치하고 배를 진열하여 반드시 건너갈 형세를 보이자 위표魏豹가 군대를 보내어 막으니, 한신韓信은 하양夏陽으로부터 나무통을 가지고 황하黃河를 건너 습격하여 위魏나라 군대를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原注
작은 이익을 보여주어 적을 유인하여 오게 해서 격파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목李牧이 오랑캐를 이익으로 유인하여 경내에 들어오게 하여 그 무리들을 대파하였고, 초楚나라 사람이 매복을 설치한 뒤에 나무하는 자들을 가지고 교絞 땅 사람을 유인하여 패퇴시킨 것이 이것이다.
原注
계책을 써서 적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습격하여 취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현謝玄이 부견苻堅과 비수淝水를 끼고 진을 쳤는데, 사현謝玄이 진秦나라에게 “군대를 뒤로 물리면 싸우겠다.”고 말하자, 진秦나라 군대가 후퇴하였다가 이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니, 사현謝玄이 마침내 진군하여 진秦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고,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와 싸울 적에 병사들로 하여금 모두 그 눈썹을 붉게 칠하여 서로 혼란스럽게 하고 마침내 적미赤眉의 군대를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原注
적의 군세가 이미 견실하면 마땅히 적이 우리를 이길 수 없는 계책을 내어 대비해야 하니, 예컨대 조사趙奢가 알여閼與를 구원할 적에 병력을 많이 집결하여 진지를 굳게 지키면서 진秦나라 군대에 대비한 것이 이것이다.
原注
적의 군세가 강성하면 우선 잠시 피해야 한다.
예컨대 왕패王覇가 성문을 닫고 병사들을 휴식시켜서 주건周建과 소무蘇茂의 예봉銳鋒을 피하였고, 주아부周亞夫가 “초楚나라 군대가 날래고 가벼우니 더불어 예봉銳鋒을 다투기 어렵다.” 하여 성벽을 굳게 지키고 수비하다가 초楚나라 군대가 굶주리고 피곤해지기를 기다려서 출병하여 공격한 것이 이것이다.
原注
적장의 성질이 강하고 쉽게 분노하거든 모욕을 주어서 노하게 하여 적장의 마음과 기운이 흔들리고 의혹되면 깊이 도모하지 않고 가볍게 진격한다.
예컨대 진晉나라 사람이 완춘宛春을 사로잡아 초楚나라를 노하게 한 것이 이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장의 성질이 강하고 쉽게 분노하면 우리가 마땅히 흔들어 의혹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뒤의 〈구변九變〉 편에 “분노하여 속히 싸우려 하면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原注
말을 낮추고 뇌물을 많이 주어 저들로 하여금 마음이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니, 마음이 교만해지면 게을러져서 대비하지 않으므로 습격하여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묵특冒頓이 천리마千里馬와 연지閼氏를 동호東胡에게 주니, 동호東胡가 마음이 교만해져서 대비하지 않았고, 또다시 땅을 묵특冒頓에게 요구하자 묵특冒頓이 노하여 급습하여 멸망시켰으며,
월왕越王이 병력을 거느리고 오吳나라에 조회할 적에 열사列士들에게 모두 선물을 주자, 자서子胥가 “이는 저들이 우리들에게 낚싯밥을 주어 이용하려는 것이다.” 하였는데,
오吳나라가 뒤에 과연 월越나라에게 멸망당하였으며, 당공唐公 이연李淵이 이밀李密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말을 낮추어 추켜세우고 칭찬하자 이밀李密이 과연 교만해져 패망하였으니, 이러한 사례가 모두 이것이다.
原注
적들이 본래 편안하거든 마땅히 계책을 써서 수고롭게 해야 한다.
예컨대 오吳나라 삼군三軍이 번갈아 출동하자 초楚나라가 명령을 따름에 피폐하였고, 전풍田豊이 원소袁紹를 설득하여 밖으로는 영웅호걸과 결탁하고 안으로는 농사짓고 전투하는 방법을 가르친 뒤에 정예병을 선발하여 나누어 기병奇兵을 만들어서 적의 빈틈을 타 번갈아 출동하여 하남河南을 소요하게 하되, 저들이 오른쪽을 구원하면 그 왼쪽을 공격하고 저들이 왼쪽을 구원하면 그 오른쪽을 공격해서 조조曹操로 하여금 명령에 달려감에 피폐하게 만들고 조조曹操의 백성들이 생업을 편안히 하지 못하게 하려 한 따위가 이것이다.
原注
적들이 상하간에 친하거든 마땅히 계책을 써서 그 마음을 이간질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항우項羽의 사신이 한漢나라에 이르자 진평陳平이 태뢰太牢의 성찬을 장만하여 올리다가 사신을 보고는 거짓으로 말하기를 “나는 아보亞父의 사신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바로 항왕項王의 사신이다.” 하고는 다시 나쁜 푸성귀 음식을 장만하여 올렸고, 사신이 돌아가 항우項羽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항우項羽가 이로 말미암아 범증范增의 계책을 듣지 않은 것과 같다.
진秦 응후應侯가 사람을 시켜 조왕趙王에게 이간질하기를 “조趙나라의 염장군廉將軍(廉頗)은 인물이 상대하기 쉽고 또 장차 항복할 것이니, 지금 진秦나라는 다만 마복군馬服君(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하니, 이에 조趙나라가 염파廉頗를 물러나게 하고 조괄趙括을 등용한 것과 같다.
또 두 나라가 서로 친하여 서로 구원하거든 또한 마땅히 계책을 써서 이간질시켜야 한다.
예컨대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자, 정鄭나라가 밤중에 사신을 내보내어 진백秦伯을 설득하기를 “지금 정鄭나라를 얻으면 진晉나라에 귀속될 것이니, 진秦나라에게는 유익함이 없습니다.
우리 정鄭나라를 내버려두어 동쪽 길의 주인이 되게 하는(秦나라에 복종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것만 못합니다.” 하니, 진백秦伯이 깨닫고 군대를 물린 것이 이것이다.
적이 대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해야 한다.
原注
적이 대비가 없는 곳을 틈타 공격하여 취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해서 기습하여 격파해야 한다.
여몽呂蒙이 관우關羽가 철군한 틈을 타서 기습하여 남군南郡을 점령하고, 등애鄧艾가 음평陰平에서 사람이 없는 땅 700리를 행군하여 촉한蜀漢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한 것이 이것이다.
이는 병가兵家의 승리하는 방도이니, 미리 전해서는 안 된다.
原注
이는 병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방도이니, 미리 남에게 먼저 전하여 누설해서는 안 된다.
싸우기 전에 묘당廟堂에서 계산하여 우세한 자는 승산을 얻음이 많은 것이요, 싸우기 전에 묘당에서 계산하여 우세하지 않은 자는 승산을 얻음이 적은 것이다.
原注
싸우기 전에 미리 묘당廟堂의 위에서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으로 비교하고 헤아려서 혹 8, 9를 얻으면 이는 승산을 얻음이 많아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요, 싸우기 전에 먼저 묘당의 위에서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으로 비교하고 헤아려서 혹 4, 5를 얻으면 이는 승산을 얻음이 적어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승산이 적으면 이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승산이 없음에랴.
原注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에 승산을 많이 얻은 자는 승리하고 승산을 적게 얻은 자는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니, 하물며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에 승산이 전혀 없는 자임에랴!
내가 이것을 관찰하면 이기고 지는 것이 나타난다.
原注
내가 이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을 가지고 적과 우리의 실정을 관찰하면 이기고 짐을 알 수 있다.
原注
내가 생각하건대 산算은 바로 계計이니, 바로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별도로 한 가지 뜻을 세워 말해서는 안 되니, 이는 손자孫子의 본의가 아닌 듯하다.
도道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와 장수將帥와 법령法令 다섯 가지는 나라를 다스리는 떳떳한 일이므로 경經이라 하였고, 어느 군주가 도道를 가지고 있는가로부터 상賞‧벌罰은 누가 분명한가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가지는 승리를 만드는 권도權道의 법이므로 계計라 하였으며, 아래의 글은 모두 이로움을 따라 권도를 만드는 일을 말하였다.
이는 《손자孫子》의 〈시계始計〉 한 편의 대지大旨이니, 배우는 자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