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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2)

한비자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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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8 大(意)[怒]無所拂悟하고 辭言無所繫縻라야 然後極騁智辯焉이라
意無拂忤하고 辭無繫縻하야 其智辯得以極騁이라
○盧文弨曰 意史作忠이요 이라 案悟與忤通이라 索隱正義所見史記 尙不倒 繫縻 各本作擊摩 注同이어늘 史作擊排
顧廣圻曰 忠字 藏本今本 作忤 正義云 拂悟 當作咈忤하니 古字假借耳라하니라
繫縻 藏本 作擊摩 是也 索隱引正作擊摩
先愼曰 御覽四百六十二引意作怒 悟作忤 繫縻作擊排 案大怒 謂盛怒也
意忠 幷誤 說文 屰也라하니 啎爲正字 悟忤 大怒之時 說尤爲難이라 無所怫啎者是也
繫縻 擊摩 古字相通이라 說文 縛也 牛轡也라하니 引申爲羇束字 易蒙釋文 擊本作繫라하고
中孚釋文 本又作縻 陸作䌕 京作劘라하고 禮記學記釋文 又作靡라하고
一切經音義十 古文劘攠二形同이라하니라 本書 作繫縻者 謂無縛束也
史記 作擊排 索隱謂說諫之詞 本無別有所擊射排擯也라하니라
案辭言恐有所擊排 卽多瞻顧縛束而不敢言하니 則必如是也


상대방이 매우 화를 내고 있는데도 거스르는 것이 없고 자신이 말을 할 때 속박되는 것이 없어야지, 그러한 후에야 지혜와 변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舊注:뜻에 거스르는 것이 없고 말에 속박되는 것이 없어 그 지혜와 변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盧文弨:‘’는 ≪史記≫에 ‘’으로 되어 있고, ‘’과 ‘’가 서로 바뀌어 있다. 살펴보건대 ‘’는 ‘’와 통용이다. ≪史記索隱≫과 ≪史記正義≫에서 보았던 ≪사기≫는 오히려 도치되지 않았다. ‘繫縻’는 각 에 ‘擊摩’라 되어 있고 舊注도 마찬가지인데 ≪사기≫에는 ‘擊排’로 되어 있다.
顧廣圻:‘’자는 잘못되었다. ‘’는 藏本今本에 ‘’로 되어 있다. ≪사기정의≫에 “‘拂悟’는 응당 ‘咈忤’가 되어야 하니 古字에서 假借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繫縻’는 藏本에 ‘擊摩’로 되어 있으니 옳다. ≪사기색은≫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바로 ‘擊摩’로 되어 있다.
王先愼:≪太平御覽≫ 권462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는 ‘’로 되어 있고, ‘’는 ‘’로 되어 있고, ‘繫縻’는 ‘擊排’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大怒’는 매우 화낸다는 말이다.
’와 ‘’은 모두 잘못되었다. ≪說文解字≫에 “‘’는 ‘(거스르다)’이다.”라고 하니 ‘’는 正字이고 ‘’와 ‘’는 모두 通假字이다. 상대방이 매우 화가 났을 땐 유세가 더욱 어렵게 된다. 거스르는 바가 없는 경우는 觸讋 太后에게 간언한 것과 같은 것이다.
繫縻’와 ‘擊摩’는 古字에서 서로 통용이다. ≪설문해자≫에 “‘’는 ‘(묶다)’이고, ‘’는 ‘牛轡(소의 고삐)’이다.”라고 하니 引申하여 구속하는 글자가 된다. ≪周易蒙卦의 ≪釋文≫에 “‘’은 본디 ‘’로 되어 있다.”라 하고,
中孚卦의 ≪釋文≫에 “는 본래 또 ‘’로 되어 있고 陸德明本에는 ‘’로 되어 있고 京兆本에는 ‘’로 되어 있다.”라 하고, ≪禮記≫ 〈學記〉의 ≪釋文≫에 “‘’는 또 ‘’로 되어 있다.”라 하고,
一切經音義≫ 권10에 “‘’는 古文에 ‘’와 ‘’ 두 글자와 모양이 같다.”라고 하였다. 本書에 ‘繫縻’로 되어 있는 것은 속박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기≫에 ‘擊排’로 되어 있으니 ≪사기색은≫에서 “유세하고 풍간하는 말에 본디 별도로 공격하거나 배격하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말에 공격하거나 거스르는 것이 있는 듯하면 대부분 염려되고 속박되어 감히 말을 못하니 필시 梁子季子에게 고하기를 임금과 말을 하려면 반드시 太宰와 함께 셋이 있는 자리에서 해야 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역주
역주1 拂辭互易 : 四庫全書本 ≪史記≫에는 ‘大忠無所拂辭 悟言無所擊排’로 되어 있다.
역주2 通叚字 : 通假字로 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로 본래의 글자를 대신하는 것이다.
역주3 觸讋(섭)之諫齊太后 : 觸讋은 觸龍이다. 실제로 촉룡이 간언한 대상은 齊 太后가 아니라 趙 太后이다. 戰國時代 趙나라 孝成王 때 太后가 섭정하였는데, 秦나라의 침공을 받아 齊나라에 구원을 청하니, 제나라에서는 태후의 아들을 인질로 보내주면 구원해주겠다 하였으나 태후가 따르지 않았다. 그때 左師인 촉룡이 태후를 보고 자기 아들을 천거하여 천한 직업에라도 써주기를 부탁하면서, 자기의 아들 사랑하는 일을 비유하여 태후로 하여금 인질을 보내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간언하였다.(≪戰國策≫ 〈趙策〉)
역주4 梁子之告季子 語必可與商太宰三坐 : 宋나라 太宰가 신분이 높아지자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였다. 季子가 송나라의 군주를 만나려고 하였는데, 梁子가 이 소식을 듣고 계자에게 말하기를 “송나라 임금과 말을 하려면 반드시 태재와 함께 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을 때 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태재의 의심을 사서 화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韓非子≫ 〈說林 下〉) 商은 宋나라를 가리킨 것이다.

한비자집해(2) 책은 2021.01.1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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