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48 王之兵自敗於秦晉으로 喪地數百里하니 此兵之弱也요 莊蹻爲盜於境內어늘
注
○先愼曰 乾道本에 蹻上有蹊字라 顧廣圻云 藏本今本에 無蹊字라 按蹊字는 當衍이니 荀子議兵篇에 莊蹻起에 楚分爲三四라하니 楊倞注引此無蹊字라
史記西南夷列傳에 始楚威王時에 使將軍莊蹻將兵이라하고 又云 莊蹻者는 故楚莊王苗裔也라하니라
索隱에 楚莊王弟爲盜者라하니 當是據此耳라 呂氏春秋介立篇云 莊蹻之暴郢이라하니라
高誘注에 莊蹻는 楚成王之大盜라하니 成은 當作威라 又異用篇云 跖與企足이라하니 高誘注에 企足은 莊蹻也니 皆大盜人名이라하니라
蹻誤作蹊니 校者旁改하야 遂致兩有라하니라 先愼按 顧說是니 今據刪하노라
왕의 군사가 秦나라와 晉나라에게 패배한 이후로 수백 리의 땅을 잃으니 이는 군사가 약한 것이요, 莊蹻가 경내에서 도적질을 하는데도
注
○王先愼:乾道本에는 ‘蹻’자 위에 ‘蹊’자가 있다. 顧廣圻는 “藏本과 今本에는 ‘蹊’자가 없다. 살펴보건대 ‘蹊’자는 응당 衍文이니 ≪荀子≫ 〈議兵篇〉에 ‘莊蹻起 楚分爲三四(莊蹻가 봉기하여 楚나라가 서넛으로 나뉘었다.)’라고 하니 楊倞의 注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蹊’자가 없다.
≪史記≫ 〈西南夷列傳〉에 ‘始楚威王時 使將軍莊蹻將兵(예전 楚나라 威王 때에 장군 莊蹻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게 하였다.)’이라 하고, 또 ‘莊蹻者 故楚莊王苗裔也(莊蹻라는 자는 죽은 楚나라 莊王의 후예이다.)’라고 하였다.
≪史記索隱≫에 ‘楚莊王弟爲盜者(楚나라 莊王의 아우가 도적이 되었다.)’라고 하니 응당 이에 의거해야 한다. ≪呂氏春秋≫ 〈介立篇〉에 이르기를 ‘莊蹻之暴郢(莊蹻가 郢 땅에서 폭정을 행하였다.)’이라고 하였다.
高誘의 注에 ‘莊蹻는 楚나라 成王 시기의 큰 도적이다.’라고 하였으니, ‘成’자는 응당 ‘威’자가 되어야 한다. 또 ≪呂氏春秋≫ 〈異用篇〉에 이르기를 ‘盜跖과 企足’이라고 하니 高誘의 注에 ‘企足은 莊蹻이니 모두 큰 도적의 인명이다.’라고 하였다.
‘蹻’자가 ‘蹊’로 잘못 되어 있는 것이니, 교감하는 자가 함부로 고쳐 마침내 두 가지 경우가 있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고광기의 說이 옳으니, 지금 이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