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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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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文章 중의 地理
19. 文章 중의 地理
文章地理, 必須愜當。
글에서 지리地理는 반드시 합당해야 한다.
간문제簡文帝의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에서 “거위 진법陣法으로 일축왕日逐王을 공격하고, 기병騎兵으로 강거康居를 휩쓸었다.
, 小月送降書。”
대완大宛에서 좋은 말을 바쳤고, 소월지小月氏항서降書를 보내왔다.”라고 하였다.
云:“天寒隴水急, 散漫俱分瀉。
소자휘蕭子暉의 〈농두수隴頭水〉에서는 “날은 차가운데 농수隴水는 세차게, 콸콸 쏟아져서 나뉘어 흐른다.
北注徂, 東流會。”
북쪽으로 흘러서 황룡黃龍으로 들어가고, 동쪽으로 흘러서 백마白馬에서 만난다.”라고 하였다.
此亦, 美玉之瑕, 宜愼之。
이 역시 밝은 구슬의 흠이요, 아름다운 옥의 티이니 조심해야 한다.
역주
역주1 梁簡文 : 《梁書》 〈簡文帝紀〉에서 “諱는 綱이고, 字는 世纘이며, 小字는 六通으로 高祖의 셋째 아들이었다. 大寶 2년에 侯景이 王偉를 시켜 시해하였다. 簡文帝는 평소 시 짓기를 좋아하여 그의 文集 序에서 ‘나는 7세에 詩癖이 생겨 나이가 들어서도 싫증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볍고 농염한 병폐가 있어 당시에 宮體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隋書》 〈經籍志〉에 “梁 《簡文集》 85卷은 陸罩가 만들고 목록을 붙였다.”라 하였다. 《周書》 〈蕭大圜傳〉에는 “《簡文集》 90卷”으로 되어 있다.[王利器]
역주2 雁門太守行 : 《漢書》 〈匈奴傳〉에서 “趙의 武靈王은 代로부터 陰山 기슭을 따라서 高闕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만들고, 雲中, 雁門, 代郡을 설치하였다.”라 하였다. 《漢書》 〈地理志〉에 “雁門郡은 秦나라에서 설치하였고 幷州에 속한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3 鵝軍攻日逐 : 《春秋左氏傳》 昭公 21년에서 “宋나라 公子 城이 華氏와 赭丘에서 싸우는데, 鄭翻은 황새의 陣法을 쓰고 싶었고 그의 마부는 거위 陣法을 쓰려고 하였다.”라 하였다. 《漢書》 〈匈奴傳〉에 “狐鹿孤 單于가 왕위에 올라 左大將을 左賢王으로 삼았는데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 先賢撣이 그 지위를 대신할 수 없게 되자, 다시 日逐王으로 삼았다. 日逐王은 左賢王보다 신분이 낮았다.”라 하였다.[趙曦明]
《春秋左氏傳》의 杜預 注에서는 “鸛과 鵝는 모두 陣의 이름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4 燕騎蕩康居 : 《戰國策》 〈燕策〉에서 “蘇秦이 燕 文侯에게 유세하며 ‘燕나라 군사는 戰車가 700이고 騎兵이 6,000입니다.’라고 했다.”라 하였고, 《漢書》 〈西域傳〉에 “康居國과 大月氏는 풍속이 같았으며, 동쪽으로 匈奴에 매여 섬겼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5 鵝軍攻日逐…小月送降書 : 《漢書》 〈西域傳〉에서 “大月氏는 單于에게 공격당해 패배하여 멀리 달아났다. 달아날 수 없었던 자들이 南山羌을 점유하니, 이들을 小月氏라 불렀다. 함께 漢나라 使者에게 보고하는 자들로 五翖侯가 있었는데, 모두 大月氏에 속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이것은 梁代 褚翔의 詩이지 簡文帝의 詩가 아니다. 梁 簡文帝의 〈從軍行〉에는 “먼저 小月氏의 軍陣을 평정하고, 大宛의 城을 물리쳐 없앴다. 좋은 말이 長樂宮으로 돌아왔고, 황금을 水衡에게 주었다.”라 하였다. 《樂府詩集》 卷32 참조. 이는 아마도 헷갈려 착오를 범한 것이다. 《樂府詩集》 卷39에 수록된 褚翔의 〈雁門太守行〉에는 “오랑캐 군사가 日逐王을 공격하고, 燕의 기병이 康居를 쓸었다. 大宛이 좋은 말을 보내오고, 小月氏가 항복문서를 보내왔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6 大宛歸善馬 : 《漢書》 〈西域傳〉에 “大宛國 영역인 貴城山에는 좋은 말이 많았는데, 말이 피와 같은 땀을 흘렸다. 武帝는 사자를 시켜 千金과 金馬를 가지고 가서 大宛에게 좋은 말을 청하게 하였지만 〈大宛 측에서〉 주려 하지 않자, 漢의 사자는 妄言을 하였고 이에 大宛 측에서 漢의 사자를 공격해서 죽였다. 이에 武帝가 貳師將軍을 파견하여 大宛을 치게 하자, 大宛國 사람들은 그들의 왕 毋寡를 斬首하고 말 3,000필을 바쳤다. 大宛의 왕 蟬封은 漢나라와 약속하기를, 해마다 天馬 두 필을 바치기로 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雁門과 大宛 사이는 직선거리로 약 3,000㎞에 달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시에 묘사된 戰況이 실제와 거리가 있다는 의미이다.[喩學詩]
역주7 蕭子暉 : 《梁書》 〈蕭子恪傳〉에서 “동생 蕭子暉는 字가 景光으로, 어려서 書體를 섭렵하였고 文才도 있었다.”라 하였다.[趙曦明]
《隋書》 〈經籍志〉에 文集 9권이 있었다고 한다.[王利器]
역주8 隴頭水 : 《後漢書》 〈郡國志〉에 “漢陽郡 隴縣은 州刺史의 관할로 隴坻라는 이름의 큰 비탈이 있다.”라 하였고, 注에서 《三秦記》를 인용하여 “그 비탈은 아홉 번을 돌아가는데 그 높이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고, 오르는 사람은 7일을 올라야 넘을 수가 있다. 정상은 100여 가구를 수용할 정도의 넓이인데, 맑은 물이 〈솟아〉 사방으로 흘러내린다.”라 하였다. 또 郭仲産의 《秦州記》를 인용하여 “隴山은 동서로 180리가 되는데, 고개에 올라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秦川이 4, 5백 리 너머에 가물가물하다. 산 동쪽 사람이 행역 나와서 이곳에 올라 돌아보면 고향생각에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래서 ‘隴頭에 물이 흘러 사방으로 나뉘어 내려가네. 생각하니 나 행역 나와 넓은 들판을 떠도누나. 높은 데 올라 멀리 바라보니, 눈물 흘러 두 줄기로 떨어지네.’라고 노래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9 黃龍 : 《宋書》 〈朱脩之傳〉에서 “鮮卑 출신의 馮宏이 燕王을 칭하며 黃龍城을 다스렸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0 白馬 : 《漢書》 〈西南夷傳〉에서 “冉駹으로부터 동북쪽으로도 君長이 열 명을 헤아렸는데, 白馬가 가장 컸고 모두가 氐族 무리에 속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隴은 서북쪽에 있고 黃龍은 북쪽에 있으며 白馬는 서남쪽에 있어서,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강물이 어떻게 거기까지 미칠 수가 있겠는가?[盧文弨]
〈隴水行〉과 〈雁門太守行〉이 거창하게 진술하고 있는 地理는 모두 과장의 수법에서 나온 것인데, 顔之推는 문장의 하자로 간주하고 있으니 타당치 않다. 그런데 《史記》 〈荊燕世家〉에 “漢나라 4년 劉賈를 시켜 병졸 2만 명과 기병 수백 기를 이끌고 白馬津을 건너 楚 땅에 들어가게 했다.”라고 한 기록이 있고, 《正義》에서 《括地志》를 인용하여 “黎陽은 일명 白馬津이라고도 하며, 滑州 白馬縣 북쪽 30리 되는 곳에 있다.”라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의 白馬는 이 白馬津으로 보아야 비로소 ‘동쪽으로 흐른다.[東流]’라고 한 뜻과 맞아 떨어진다. 굳이 멀리 西南에 있는 白馬氐를 갖다 맞추려고 할 필요는 없으며, 또 白馬氐를 가지고 어떻게 동쪽으로 흘러서 만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王利器]
역주11 明珠之纇(뢰) : 《淮南子》 〈氾論訓〉에서 “夏后氏의 瑞玉도 티가 없을 수는 없고, 明月珠도 흠이 없을 수 없다.”라 하였다.[趙曦明]
‘考’는 흠[瑕釁]이란 뜻이고, ‘纇’는 실이 맺힌 데[絲之結纇]와 같은 것이다.[盧文弨]
역주12 : 뢰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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