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山
, 常頹縱
, 飮酒誕節, 兗州號爲濌伯。” 此字皆無音訓。
梁孝元帝
謂吾曰:“由來不識。唯張簡憲見敎, 呼爲
。自爾便遵承之, 亦不知所出。”
顧雖
, 猶出簡憲、孝元之下, 而二人皆云重邊, 吾所見數本, 並無作黑者。
《진중흥서晉中興書》에는 “태산太山의 양만羊曼이라는 사람은 늘 방종하고 호기를 부렸으며 술을 마시면 허랑해져 연주袞州에서 ‘탑백濌伯’이라고 불렀다.”고 하나, 여기서 답濌자는 어디에도 독음讀音과 훈訓이 기록된 것이 없다.
양 원제梁 元帝께서 언젠가 내게 이르시길 “유래由來를 알지 못하겠구려. 다만 장간헌張簡憲이 가르쳐주기를 탑갱嚃羹(국을 들이마시다)의 탑嚃과 같은 독음讀音이라고 하여, 그 후로는 이 독음을 따르고는 있지만, 역시 그 출처出處는 알 수가 없소.”라고 하셨다.
간헌簡憲은 상주자사湘州刺史였던 장찬張纘의 시호諡號로, 강남江南에서는 석학碩學이라 일컬어졌었다.
생각건대, 〈이 책을 지은〉 하법성何法盛과는 생존生存 연대年代가 매우 가까우므로, 노인들끼리 전해왔음이 분명하다.
세간에는 답답濌濌이라는 말도 있는데, 대개 ‘베풀지 않은 바가 없이 해이하다.’거나, ‘용납치 않은 바가 없어 절제가 없다.’는 뜻이다.
고야왕顧野王의 《옥편玉篇》에서는 잘못하여 흑黑자의 편방偏旁에 답沓자를 쓴 〈답䵬으로〉 되어 있다.
고야왕顧野王이 비록 박식하다 하나 장간헌張簡憲이나 원제元帝보다는 나중에 태어났는데, 이들 두 분은 모두 중重변이라고 했으며, 내가 살펴본 여러 판본 어디에도 흑黑자를 〈편방偏旁으로〉 쓴 것은 없었다.
〈답濌으로 쓰여 그 편방偏旁을 회의자會意字로 풀이한 것이〉 중답重沓이라면 ‘풍부하게 쌓는다.’는 의미일 것이나, 〈그 편방偏旁에〉 흑黑자를 쓴다면, 더욱 뜻이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