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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1)

묵자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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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간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2-14 蔡公穀하니
畢云 蔡 一本作祭 呂氏春秋 作虢公鼓祭公敦이라하다
詒讓案 高誘謂虢公鼓卽虢石父라하니 見國語晉語鄭語한대 未知是否
蘇云 蔡公穀 呂覽 作祭公敦하니 竊謂當從呂覽作祭公爲是 爲周畿內國이니 周公少子所封이라
以下 世爲卿士於周하니 隱元年所書 卽其後也
若蔡 當幽王時하여 唯有 不聞更有名穀者라하다
案 蘇說 是也


蔡公穀에 물들었으니,
畢沅:‘’는 어떤 에는 ‘’로 되어 있다. ≪呂氏春秋≫에는 〈‘傅公夷’와 ‘蔡公穀’이〉 ‘虢公鼓’와 ‘祭公敦’으로 되어 있다.
詒讓案:高誘는 ‘虢公鼓’가 곧 ‘虢石父’라고 하였으니, ≪國語≫ 〈晉語〉와 〈鄭語〉에도 보이는데, 옳은지 모르겠다.
蘇時學:‘蔡公穀’은 ≪呂氏春秋≫에 ‘祭公敦’으로 되어 있으니, 내 생각에는 마땅히 ≪呂氏春秋≫를 따라서 ‘祭公’이 되어야 옳을 듯하다. ‘’는 나라 畿內의 나라이니, 周公少子해진 곳이다.
文公謀父 이후 대대로 나라에서 卿士가 되었으니, ≪春秋隱公 元年 조에 기록된 ‘祭伯來’라고 할 때의 ‘’가 바로 그 후손이다.
나라의 경우는 幽王 때에 오직 釐侯 所事만 있었고, 이름이 ‘’인 자가 더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蘇時學이 옳다.


역주
역주1 文公謀父 : 底本 傍注에 “‘文公謀父’는 蘇時學의 ≪墨子刊誤≫ 권1의 原文이 이와 같다. 그러나 ‘文公’이라 하면 위아래 글의 뜻이 전혀 통하지 않을 뿐더러 史書에도 ‘文公謀父’라는 사람은 없다. 이제 상고해보건대 ‘文’은 응당 ‘祭’의 誤字인 듯하다. ‘祭公謀父’는 ≪國語≫ 〈周語 上〉에 보이며, 周 穆王의 卿士이다.”라 하였다.
역주2 祭伯來 : ≪春秋左氏傳≫ 隱公 元年 조에 “冬十有二月 祭伯來(겨울 12월에 祭伯이 왔다.)”라 하였는데, 그 傳에 “祭伯 諸侯爲王卿士者 祭國 伯爵也(祭伯은 제후로서 왕의 卿士가 된 자이다. 祭는 國名이며 伯은 爵名이다.)”라 한 대목이 보인다.
역주3 釐侯所事 : 춘추시대 蔡나라의 군주로, 이름이 姬所事(재위 B.C.809~B.C.761)이다.

묵자간고(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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