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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1)

묵자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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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간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3-8 則家日損하며 身日危하며 名日辱하며 處官 失其理矣하니 則子西 之徒 是也
蘇云 春秋時 子西有三하니 一爲鄭公孫夏 一爲楚鬭宜申 一爲楚公子申이라
玆所擧 蓋鬭宜申也라하다
畢云 經傳 或作豎貂하니 此作刀者 貂省文이라
舊作刁하니 玉篇 云 刀 丁ㄠ切이니 亦姓이니 俗作刁라하다
案 論語憲問篇 或問子西하니 曰 彼哉彼哉라한대 集解 馬融云 子西 鄭大夫이니 或曰 楚라하다
此子西或亦斥楚公子申하니 蘇說未塙이라 易牙豎刀 竝見公羊僖十八年傳이라
左僖二年傳 作寺人貂라한대 杜注 云 寺人 奄官豎貂也라하니 貂刀 字通이라


집안은 날로 쇠락하며 자신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이름은 날로 치욕스러워지며 관직에서 일을 보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을 것이니, 子西易牙豎刀 같은 무리가 이들이다.
蘇時學:春秋시대에 子西라는 사람이 셋이 있으니, 그중 한 명이 나라의 公孫夏이며, 다른 한 명이 나라의 鬭宜申이며, 다른 한 명이 나라의 公子 이다.
여기서 든 사람은 아마도 鬭宜申인 듯하다.
畢沅:經傳에 어떤 곳에는 ‘豎貂’라 되어 있으니, 여기에 ‘’로 되어 있는 것은 ‘’의 자획을 생략한 것이다.
舊本에 ‘’으로 되어 있으니, 옳지 않다. ≪玉篇≫에는 “‘’는 ‘’과 ‘ㄠ’의 반절이다. 으로도 쓰니, 俗字로는 ‘’라고 쓴다.”라 하였다.
:≪論語≫ 〈憲問〉에 “혹자가 子西에 대해 묻자 孔子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여!’라 하였다.”라 하였으며, 何晏의 ≪論語集解≫에 “馬融에 ‘子西나라 大夫이니, 혹자는 나라 令尹子西라고 한다.’라 하였다.”라 하였는데,
子西는 어떤 에서는 또한 나라 公子 排斥하였으니, 蘇時學의 설은 확실치 않다. 易牙豎刀는 모두 ≪春秋公羊傳僖公 18년 조에 보인다.
春秋左氏傳僖公 2년 조에 ‘寺人 ’라 되어 있는데, 杜預에 “寺人宦官豎貂이다.”라 하였으니, ‘’와 ‘’는 글자를 통용한다.


역주
역주1 易牙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 名은 巫이며, 雍巫 또는 狄牙라고도 한다. 요리 솜씨가 뛰어났으며, 親子를 음식으로 만들어 바쳐 齊 桓公의 신임을 얻었다. 豎刀와 함께 정권을 농단하였다.
역주2 豎刀 :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 스스로 거세하여 궁에 들어가 齊 桓公의 신임을 얻었다. 管仲이 죽자, 易牙와 함께 정권을 농단하였다.
역주3 令尹子西 :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 令尹이었던 자서는 으스대기 좋아하는 성벽의 白公을 벗으로 삼았다가 그의 반란에 도리어 희생되었다.

묵자간고(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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