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 則家日損
하며 身日危
하며 名日辱
하며 處官
이 失其理矣
하니 則子西
와 와 之徒
가 是也
라
注
蘇云 春秋時에 子西有三하니 一爲鄭公孫夏요 一爲楚鬭宜申요 一爲楚公子申이라
畢云 經傳에 或作豎貂하니 此作刀者는 貂省文이라
舊作刁하니 非라 玉篇에 云 刀는 丁ㄠ切이니 亦姓이니 俗作刁라하다
案 論語憲問篇
에 或問子西
하니 曰 彼哉彼哉
라한대 集解
에 馬融云 子西
는 鄭大夫
이니 或曰 楚
라하다
此子西或亦斥楚公子申하니 蘇說未塙이라 易牙豎刀는 竝見公羊僖十八年傳이라
左僖二年傳에 作寺人貂라한대 杜注에 云 寺人은 奄官豎貂也라하니 貂刀는 字通이라
집안은 날로 쇠락하며 자신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이름은 날로 치욕스러워지며 관직에서 일을 보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을 것이니, 子西와 易牙와 豎刀 같은 무리가 이들이다.
注
蘇時學:春秋시대에 子西라는 사람이 셋이 있으니, 그중 한 명이 鄭나라의 公孫夏이며, 다른 한 명이 楚나라의 鬭宜申이며, 다른 한 명이 楚나라의 公子 申이다.
畢沅:經傳에 어떤 곳에는 ‘豎貂’라 되어 있으니, 여기에 ‘刀’로 되어 있는 것은 ‘貂’의 자획을 생략한 것이다.
舊本에 ‘刁’으로 되어 있으니, 옳지 않다. ≪玉篇≫에는 “‘刀’는 ‘丁’과 ‘ㄠ’의 반절이다. 姓으로도 쓰니, 俗字로는 ‘刁’라고 쓴다.”라 하였다.
案:≪論語≫ 〈憲問〉에 “혹자가 子西에 대해 묻자 孔子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여!’라 하였다.”라 하였으며, 何晏의 ≪論語集解≫에 “馬融의 說에 ‘子西는 鄭나라 大夫이니, 혹자는 楚나라 令尹인 子西라고 한다.’라 하였다.”라 하였는데,
이 子西는 어떤 本에서는 또한 楚나라 公子 申을 排斥하였으니, 蘇時學의 설은 확실치 않다. 易牙와 豎刀는 모두 ≪春秋公羊傳≫ 僖公 18년 조에 보인다.
≪春秋左氏傳≫ 僖公 2년 조에 ‘寺人 貂’라 되어 있는데, 杜預의 注에 “寺人은 宦官인 豎貂이다.”라 하였으니, ‘貂’와 ‘刀’는 글자를 통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