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畢云 聆은 當爲瓴이니 聆缶는 太平御覽에 引作爲吟謠하니 是也라 缶는 是䍃字之壞라하다
王云 今本墨子에 作聆缶者하니 聆乃𤬻字之譌니 𤬻은 卽瓴字也라 但移瓦於左하고 移令於右耳라
北堂書鈔樂部七缶下와 鈔本太平御覽樂部三及二十二缶下에 引墨子하여 竝作吟缶라
吟은 亦𤬻之譌라 蓋墨子書에 瓴字는 本作𤬻이라 故로 今本譌作聆하고 諸類書譌作吟이나 而缶字는 則皆不譌也라
其刻本御覽에 作吟謠者는 後人이 不知吟爲𤬻之譌하여 遂改吟缶爲吟謠耳라
上文云 諸侯는 息於鐘鼓하며 士大夫는 息於竽瑟이라하고 此云 農夫는 息於𤬻缶라하니 鐘鼓竽瑟𤬻缶는 皆樂器也라
淮南精神篇에 叩盆拊瓴하며 相和而歌라하니 盆은 卽缶也라 若吟謠는 則非樂器니 不得言吟謠之樂矣라하다
案 王說이 是也라 說文瓦部에 云 瓴은 𦉥也니 似缾者라하고
又缶部에 云 缶는 瓦器니 所以盛酒漿이라 秦人鼓之以節歌라하다
詩陳風宛丘篇에 坎其擊缶라한대 毛傳에 云 盎을 謂之缶라하며 爾雅釋器에 同한대 郭注에 云 盆也라하며
史記李斯傳에 云 擊甕叩缻는 眞秦之聲也라하니 瓴은 甕同物이요 缻는 卽缶之俗이라
注
畢沅:‘聆’은 마땅히 ‘瓴’이 되어야 한다. ‘聆缶’는 ≪太平御覽≫에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吟謠’로 썼으니, 옳다. ‘缶’는 ‘䍃’자의 字畫이 훼손된 것이다.
王念孫:今本 ≪墨子≫에는 ‘聆缶’로 되어 있다. ‘聆’은 바로 ‘𤬻’자의 誤字이니, ‘𤬻’이 곧 ‘瓴’자이다. 다만 瓦를 왼쪽으로 옮기고, 令을 오른쪽으로 옮겼을 뿐이다.
≪北堂書鈔≫ 〈樂部 7〉의 〈缶 下〉, 鈔本 ≪太平御覽≫ 〈樂部 3〉과 〈樂部 22〉의 〈缶 下〉에 ≪墨子≫를 인용하면서 모두 ‘吟缶’라고 썼다.
‘吟’ 또한 ‘𤬻’자의 誤字이다. 아마도 ≪墨子≫라는 책에 ‘瓴’자가 본래 ‘𤬻’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今本에 잘못되어 ‘聆’으로 썼고, 類書들에도 잘못되어 ‘吟’으로 썼으나, ‘缶’자는 모두 잘못되지 않았다.
그 刻本 ≪太平御覽≫에 ‘吟謠’로 되어 있는 것은 後人이 ‘吟’이 ‘𤬻’의 誤字임을 알지 못하고서 마침내 ‘吟缶’를 고쳐 ‘吟謠’라고 했던 것일 뿐이다.
윗글에서 “諸侯息於鐘鼓 士大夫息於竽瑟”이라 하고 여기에서 “農夫息於𤬻缶”라 하였으니, 鐘鼓와 竽瑟과 𤬻缶는 모두 樂器이다.
≪淮南子≫ 〈精神〉에 “叩盆拊瓴 相和而歌(盆을 두드리고 瓴을 치며 서로 화답하여 노래한다.)”라 하였으니, ‘盆’이 곧 ‘缶’이다. ‘吟謠’와 같은 것은 樂器가 아니니, ‘吟謠之樂’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案:王念孫의 說이 옳다. ≪說文解字≫ 〈瓦部〉에 “瓴은 𦉥이니, 缾(물장군)과 비슷한 것이다.”라 하였으며,
또 ≪說文解字≫ 〈缶部〉에 “缶는 瓦器이니, 술과 음료를 담는 것이다. 秦나라 사람이 이것을 두드려서 노래에 박자를 맞추었다.”라 하였다.
≪詩經≫ 〈陳風 宛丘〉에 “坎其擊缶(질장구를 두드린다.)”라 하였는데, 毛傳에 “‘盎’을 ‘缶’라고 한다.”라 하였으며. ≪爾雅≫ 〈釋器〉에도 똑같이 되어 있는데, 郭璞의 注에 “〈缶는〉 盆(동이)이다.”라 하였으며,
≪史記≫ 〈李斯傳〉에 “동이를 두드리고 질장구를 두드리는 것은 진짜 秦나라의 소리이다.”라 하였으니, ‘瓴’은 甕과 같은 물건이요 ‘缻’는 곧 ‘缶’의 俗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