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 武王勝殷殺紂하여 環天下하여 自立以爲王에 事成功立하여 無大後患이라 因先王之樂하여 又自作樂하고 命曰 象하니라
注
畢云 呂氏春秋에 云 周公이 爲三象이라하니 乃成王之樂이라 此云 象又是武王作이니 未詳이라하다
案 毛詩周頌序에 云 維淸은 奏象舞也라한대 鄭箋에 云 象은 用兵時에 刺伐之舞니 武王制焉이라하다
禮記文王世子에 下管象이라한대 鄭注에 云 象은 周武王伐紂之樂이라하다
春秋繁露三代改制質文篇에 云 文王作武樂하며 武王作象樂하며 周公作汋樂이라하다
淮南子氾論訓에 云 周武象이라한대 高注에 云 武王樂也라하다
白虎通義禮樂篇에 云 周公曰 酌이요 武王曰 象者는 象太平而作樂하여 示已太平也니
合曰 大武라하니 此皆以象爲武王所作이라 畢專據呂覽古樂篇하여 以疑此書하니 殊爲失攷라
周禮大司樂六樂에 有大武而無象하니 則大武自爲周之正樂이요 象은 蓋舞之小者라
周頌의 孔疏에 謂象舞는 象文王之事요 大武는 象武王之事라 大武之樂도 亦爲象이라하니
合武象
하여 爲一
은 非也
라 左襄二十九年傳
에 云
라한대
杜注
에 云 象箾
는 舞所執
이니 이라하니 杜又以象爲文王樂
이라
史記吳世家集解에 引賈逵와 詩周頌疏에 引服虔은 說竝同하니 蓋皆傳聞之異라
武王이 殷나라를 이기고 紂를 죽여 천하를 도모하여 스스로 우뚝 서 왕이 되었을 때, 일이 이루어지고 功이 세워져 큰 後患이 없었다. 그리하여 先王의 樂을 이어받아 또 스스로 樂을 만들고서 ‘象’이라 命名하였다.
注
畢沅:≪呂氏春秋≫에 “周公이 세 개의 ‘象’을 지었다.”라 하였으니, 바로 成王의 樂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象’을 또 武王이 지었다고 하니, 자세히 알 수 없다.
案:≪毛詩≫ 〈周頌 維淸〉의 毛序에는 “〈維淸〉은 象舞를 연주한다.”라 하였는데, 鄭玄의 箋에 “‘象’은 用兵할 때 창칼로 찌르고 베는 모습을 본뜬 춤이니, 武王이 만든 것이다.”라 하였다.
≪禮記≫ 〈文王世子〉에 “下管象(堂 아래에서는 ‘象舞’의 曲을 管樂器로 연주한다.)”이라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象’은 周 武王이 紂을 誅伐하는 내용의 樂이다.”라 하였다.
≪春秋繁露≫ 〈三代改制質文〉에 “文王은 武樂을 지었고, 武王은 象樂을 지었고, 周公은 汋樂을 지었다.”라 하였다.
≪淮南子≫ 〈氾論訓〉에 “周武象”이라 하였는데, 高誘의 注에 “〈‘象’은〉 武王의 樂이다.”라 하였다.
≪白虎通義≫ 〈禮樂〉에 “周公의 樂을 ‘酌’이라 하며, 武王의 樂을 ‘象’이라 한 것은 太平함을 본떠서 樂을 지어 이미 太平한 시대임을 보인 것이니,
합하여 ‘大武’라 한다.”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象’을 武王이 지은 것이라 여긴 것이다. 畢沅은 ≪呂氏春秋≫ 〈古樂〉에만 의거하여 이 글을 의심하였으니, 상고함이 매우 잘못되었다.
≪周禮≫ 〈大司樂 六樂〉에 ‘大武’는 있으나 ‘象’은 없으니, 그렇다면 ‘大武’는 저대로 周公의 正樂이며, ‘象’은 아마도 舞 가운데 작은 것인 듯하다.
≪毛詩≫ 〈周頌 維淸〉 孔穎達의 疏에 “‘象舞’는 文王의 일을 본뜬 것이고 ‘大武’는 武王의 일을 본뜬 것인데, ‘大武’의 樂이 또한 ‘象’이 된다.”라 하니,
傳에서 ‘武’와 ‘象’을 合하여 하나로 본 것은 옳지 않다. ≪春秋左氏傳≫ 襄公 29년 조에 “〈季札이〉 象箾舞와 南籥舞를 본다.”라 하였는데,
杜預의 注에 “‘象箾’는 춤추는 사람이 손에 쥐는 것이니, 文王의 樂이다.”라 하였으니, 두예는 또 ‘象’을 文王의 樂으로 여긴 것이다.
≪史記集解≫ 〈吳世家〉에서 賈逵를 인용한 곳과 ≪毛詩≫ 〈周頌 維淸〉 공영달의 疏에서 服虔를 인용한 곳은 說이 모두 이와 같으니, 아마도 모두 傳聞이 달랐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