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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1)

묵자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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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간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10 吳起之裂 其事也일새니라
淮南子繆稱訓 云 吳起刻削而車裂이라하고 亦見氾論訓 及韓詩外傳一 呂氏春秋執一篇高注 史記本傳 不云車裂하니 蓋文不具
畢云 謂事功이라하다
蘇云 墨子嘗見楚惠王而吳起之死當悼王二十一年이라 上距惠王之卒已五十一年이니
疑墨子不及見此事 此蓋門弟子之詞也라하다 汪中說同이라
案 魯問篇 墨子及見田齊大公和어늘 和受命爲諸侯 當楚悼王十六年이라 距起之死僅五年耳
況非樂上篇 說齊康公興樂萬이라하니 康公之薨 復在起死後二年이라
然則此書雖多後人增益이나 而吳起之死非墨子所不及見 明矣 蘇說 攷之未審이라


吳起가 찢겨 죽임을 당한 것은 그가 일을 잘하였기 때문이다.
淮南子≫ 〈繆稱訓〉에 “吳起가 너무 刻薄한 나머지 車裂刑에 처해졌다.”라 하였고, 또한 ≪淮南子≫ 〈氾論訓〉과 ≪韓詩外傳≫1과 ≪呂氏春秋≫ 〈執一高誘에도 보인다. ≪史記≫ 〈吳起列傳〉에는 ‘車裂’이라는 말이 없는데, 아마도 글을 생략한 듯하다.
畢沅:〈‘’는〉 事功을 말한다.
蘇時學:墨子 惠王을 만난 적이 있고, 吳起가 죽은 것은 悼王 21년이다. 위로 惠王이 죽은 때로부터 이미 51년이 지났으니,
아마도 墨子는 이 일을 직접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墨子 제자의 말인 듯하다. 汪中의 설이 蘇時學의 설과 같다.
:≪墨子≫ 〈魯問〉에 墨子田齊太公 를 만났는데, 勅命을 받아 제후가 된 것은 초 도왕 16년이니, 吳起가 죽은 때는 그로부터 겨우 5년 후이다.
게다가 ≪墨子≫ 〈非樂 〉에서 “ 康公이 ‘’이라는 을 흥기시키다.[齊康公興樂萬]”라 하였는데, 강공이 죽은 것은 다시 吳起가 죽고 나서 2년 후이니,
그렇다면 이 책이 비록 후인이 덧붙인 대목이 많지만 吳起의 죽음을 墨子가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蘇時學의 설은 고증이 자세하지 못하다.



묵자간고(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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