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閎夭, 泰顚, 南宮括, 散宜生은 모두 ≪尙書≫ 〈君奭〉에 보인다. 散宜生은 또한 ≪孟子≫ 〈盡心〉에도 보이는데,
趙岐의 注에 “散宜生은 文王의 네 신하 중의 하나이다. 散宜生은 文德이 있어 재상이 되었다.”고 하였다.
≪大戴禮記≫ 〈帝繫〉에 “堯임금이 散宜氏의 딸을 배필로 맞이하였다.”고 하였으니, 散宜는 아마도 國名으로 氏를 삼았을 것이다.
畢沅:紂는 文王을 羑里에 가두었는데, 이때 散宜生이 千金을 가지고 天下의 진귀한 보물을 구하여 騶虞와 雞斯가 끄는 수레,
玄玉 100工, 大貝 100朋, 玄豹‧黃羆‧靑豻‧白虎의 가죽 1,000合을 얻어 費仲을 통하여 紂에게 바쳤다.
紂가 이를 보고 기뻐하여 文王을 사면하고 소를 잡아 연회를 베풀어주었으니, 이상의 내용은 ≪淮南子≫ 〈道應訓〉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