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 爲人之都를 若爲其都하면 夫誰獨擧其都以伐人之都者哉아 爲彼猶爲己也라
爲人之家를 若爲其家면 夫誰獨擧其家以亂人之家者哉아 爲彼猶爲己也라
然卽國都를 不相攻伐하고 人家를 不相亂賊하면 此天下之害與아 天下之利與아
卽必曰 天下之利也라하니라 姑嘗本原若衆利之所自生하면 此胡自生가
此自惡人賊人生與아 卽必曰 非然也라하고 必曰 從愛人利人生이라하니라
分名乎天下愛人而利人者면 別與아 兼與아 卽必曰 兼也라하리니
然卽之交兼者가 果生天下之大利者與인저 是故로 子墨子曰 兼是也라하니라 且鄕吾本言曰
注
畢云 鄕은 曏字省文이니 說文에 云 曏은 不久也라하고 鄭君注儀禮云 曏은 曩也라하다
남의 도성을 자기 도성처럼 위한다면 그 누가 홀로 자기 도성의 〈힘을〉 다해 남의 도성을 攻伐하겠는가. 저들을 자기처럼 위하기 때문이다.
남의 家를 자기 家처럼 위한다면 그 누가 홀로 자기 家의 〈역량을〉 다 기울여 남의 家를 어지럽히겠는가. 저들을 자기처럼 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라와 도성을 서로 공벌하지 않고 남의 家를 서로 어지럽히거나 해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겠는가, 천하의 이로움이겠는가.
그러면 반드시 천하의 이로움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을 한번 따져보면 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이것이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데에서 생기겠는가. 그러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고, 반드시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에서 생긴다고 할 것이다.
천하에서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가름’이겠는가, ‘아우름’이겠는가. 그러면 반드시 ‘아우름’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번갈아 아우르는 것’이야말로 과연 천하의 큰 이로움을 낳는 것이겠다. 이런 까닭에 子墨子께서 “‘아우름’이 옳다.”라 하셨다. 또한 전에 내가 본래 말하기를
注
畢沅:‘鄕’은 ‘曏’자의 省文이니, ≪說文解字≫에 “‘曏’은 ‘不久(오래되지 않아)’이다.”라 하였고, 鄭玄이 ≪儀禮≫에 주석을 달아 “‘曏’은 ‘曩(접때)’이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