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道藏本에는 如此하고 畢本에는 作中山諸國하고 云 四字는 舊作且一不著何五字요 一本如此라
史記趙世家에 云 惠文王三年에 滅中山하고 遷其王於膚施라하고
表에는 作四年이라 元和郡縣志에 云 定州는 戰國時에 爲中山國이라
中山之地는 方五百里요 城中有山하니 故曰中山이라 今直隸定州是라하다
蘇云 中山之亡은 當魏文侯世라 墨子는 與子夏子門人으로 同時니 此事를 猶當及見之라 畢引史記趙惠文王三年滅中山하니 非是라하다
詒讓案 中山은 初滅於魏하고 後滅於趙하니 詳所染篇이라
然이나 此中山諸國四字는 乃後人肊改니 實當作且不著何四字라
舊本에 作且一하고 道藏本에 作且不一하니 竝衍一字라 且는 疑柤之借字니
國語晉語에 獻公이 田이라가 見翟柤之氛이라한대 韋注에 云 翟柤는 國名이라하니 是也라
不著何는 亦北胡國이니 周書王會篇에 云 不屠何靑熊이라한대 孔晁注에 云 不屠何는 亦東北夷也라하고
管子小匡篇
에 敗
하고 破屠何
라한대 尹注
에 云 屠何
는 東胡之先也
라하고
通鑑外紀
에 周惠王三十三年
에 齊桓公
이 救燕破屠何
라하니 屠著
는 聲類同
하니 不著何
는 卽不屠何也
라
又王會
에 伊尹
이 獻令
한대 正北有且略豹胡
라하니 且略
이 卽此且及
翟柤
요 豹胡
는 亦卽不屠何
니
豹不과 胡何는 竝一聲之轉이라 不屠何는 漢爲徒何縣하여 屬遼西郡하니 故城在今奉天錦州府錦縣西北이라
柤는 據國語컨대 爲晉獻公所滅이요 所在는 無考라
注
道藏本에는 이와 같다. 畢本에는 ‘中山諸國’이라 되어 있고, 말하기를 “〈‘中山諸國’〉 4자는 舊本에 ‘且一不著何’ 5자로 되어 있고, 어떤 본에는 이와 같다.
≪史記≫ 〈趙世家〉에 ‘趙 惠文王 3년에 中山을 멸하고, 그 왕을 膚施에 옮겼다.’라 하였고,
≪史記≫ 〈六國年表〉에는 ‘4년이다’라 하였다. ≪元和郡縣志≫에 ‘定州는 戰國시대에 中山國이었다.
中山國의 땅은 사방 5백 리이고, 城 가운데 山이 있으니 이 때문에 中山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直隸州와 定州가 바로 이곳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蘇時學:中山國이 멸망한 것은 魏 文侯의 시대이다. 墨子는 子夏子의 門人과 동시대 사람이니 이 일을 오히려 마땅히 보았을 것이다. 畢沅이 ≪史記≫ 〈趙世家〉에 “趙 惠文王 3년에 中山을 멸하였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으니, 옳지 않다.
詒讓案:中山은 처음에 魏나라에 멸망당하고, 뒤에 趙나라에 멸망당하였으니, ≪墨子≫ 〈所染〉에 상세히 나온다.
그러나 여기의 ‘中山諸國’ 4자는 곧 後人이 억측하여 고친 것이니, 실로 응당 ‘且不著何’ 4자가 되어야 한다.
舊本에 ‘且一’로 되어 있고, 道藏本에는 ‘且不一’로 되어 있으니, 모두 ‘一’자가 잘못 들어갔다. ‘且’는 아마 ‘柤’의 假借字일 것이니,
≪國語≫ 〈晉語〉에 “獻公이 田獵을 나갔다가 翟柤의 기운을 보았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韋昭의 注에 “翟柤는 나라의 이름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不著何’는 역시 북쪽 胡의 나라이니, ≪逸周書≫ 〈王會〉에 ‘不屠何의 푸른 곰[靑熊]”이라 한 구절에 대해 孔晁의 注에 “不屠何는 또한 東北 지방의 夷이다.”라 하였고,
≪管子≫ 〈小匡〉에 “胡貊을 패배시키고, 屠何를 격파하였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尹知章의 注에 “屠何는 東胡의 선조이다.”라 하였고,
劉恕의 ≪通鑑外紀≫에 “周 惠王 33년에 齊 桓公이 燕나라를 구제하고 屠何를 격파하였다.”라 하였다. ‘屠’와 ‘著’는 소리가 비슷하니 不著何는 곧 不屠何이다.
또 ≪逸周書≫ 〈王會〉에 伊尹이 〈사방에서 貢物을〉 바치는 법령을 만들었는데 북쪽에 且略과 豹胡가 있다고 하니 ‘且略’이 곧 이곳의 ‘且’이고 ≪春秋左氏傳≫의 ‘翟柤’이며, ‘豹胡’는 또한 곧 ‘不屠何’이다.
‘豹’와 ‘不’, ‘胡’와 ‘何’는 모두 음이 한 번 변전된 것이다. 不屠何는 漢나라 시대에 徒何縣이 되어 遼西郡에 속하였으니, 그 때문에 城이 지금의 奉天省 錦州府 錦縣 서북쪽에 있다.
柤는 ≪國語≫에 의거해보건대 晉 獻公에게 멸망당하였고, 있던 장소는 고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