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左傳定四年
에 할새 舍舟於淮汭
하고 自豫章與楚夾漢
하다
左司馬戌謂子常曰 我悉方城外하여 以毁其舟하고 還塞大隧直轅冥阨하리라한대
釋文에 云 阨는 本或作隘라하고 杜注에 云 三者는 漢東之隘道라하다
案 此冥隘는 卽左傳之冥阨라 史記蘇秦傳에 云 塞鄳阨도 亦卽此니
集解에 引徐廣云 鄳은 江夏鄳縣이라 注林은 地無考요 以左傳校之컨대 疑當作淮汭라
淮注
는 形近
하고 汭
는 篆文作
니 與林
으로 亦相近
하여 因而致誤
라
畢云 淮南子地形訓
에 作澠阸
한대 高誘曰 澠阸
는 今
農澠池
가 是也
라하니 則在今河南永寧縣
이라
史記魏世家에 云 秦攻冥阸之塞이라한대 集解에 云 徐廣曰 或以爲江夏鄳縣라하다
又杜預注左傳에 云 漢東之隘道라하고 括地志에 云 石城山은 在申州鐘山縣東南二十一里니 魏攻冥阸가 卽此山이라하다
呂氏春秋淮南子九塞는 此其一也라 玉海에 在信陽軍東南五十里라하니 今在河南信陽州東南九十里라하다
注
≪春秋左氏傳≫ 定公 4년에 “吳나라가 楚나라를 征伐할 때 淮水 물굽이에 배를 멈추고서 뭍으로 올라가 豫章에서부터 漢水를 사이에 두고 楚軍과 대치하였다.
〈楚나라〉 左司馬 戌이 子常에게 말하기를 ‘나는 方城 밖의 군대를 다 동원하여 저들의 배를 부수고, 돌아와 大隧‧直轅‧冥阨를 막을 것입니다.’ 하였다.”라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해 陸德明의 ≪經傳釋文≫에 “阨는 본래 혹 隘라고 한다.”라 하였고, 杜預의 注에 “이 세 지역은 漢東의 隘道이다.”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곳의 冥隘는 곧 ≪春秋左氏傳≫의 冥阨이다. ≪史記≫ 〈蘇秦傳〉에 “鄳阨를 틀어막았다.”라고 한 것도 바로 이곳이니,
≪史記集解≫에 徐廣의 말을 인용하여 “鄳은 江夏의 鄳縣이다.”라 하였다. 注林에 대해서는 어느 지방인지 고찰할 수 없다. ≪春秋左氏傳≫의 기사로 비교하건대 응당 ‘淮汭’라고 해야 할 듯하다.
‘
淮’와 ‘
注’는
字形이 비슷하고, ‘
汭’는
篆文으로 ‘
’라고 쓰니, ‘
林’과 또한
字形이 서로 비슷하여 이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畢沅:≪淮南子≫ 〈地形訓〉에는 ‘澠阸’라고 되어 있는데, 高誘가 말하기를 “澠阸는 지금의 弘農 澠池가 이곳이다.”라 하니, 곧 지금의 河南省 永寧縣이다.
≪史記≫ 〈魏世家〉에 “秦나라가 冥阸의 要塞를 공격했다.”라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해 ≪史記集解≫에 “徐廣이 말하기를 ‘혹 江夏의 鄳縣이라고 한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또 杜預가 ≪春秋左氏傳≫을 주석하면서 “漢東의 隘道”라 하였고, ≪括地志≫에 “石城山은 申州 鐘山縣 동남쪽 21리에 있으니, 魏나라가 冥阸를 공격한 곳이 바로 이 山이다.”라 하였다.
≪呂氏春秋≫ 및 ≪淮南子≫의 九塞는 이곳과 같은 곳이다. ≪玉海≫에 “信陽軍 동남쪽 50리에 있다.”라 하였으니, 오늘날 河南省 信陽州 동남쪽 90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