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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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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越王繄虧
盧云 卽無餘也 舊作緊하니 以意改
案 畢本 亦依盧校하니 今從之 史記周本紀 共王名繄扈라하니 與此相類
無餘 見越絶書外傳記地篇 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 字作余하니이라 依盧校하니 繄虧卽無餘
疑無餘本名 無虧 左傳僖十七年 齊有公子無虧 越王名 或與彼同이라
古語 長言之하여 或曰繄無 周禮職方氏 幽州醫無閭라하니 醫亦與繄 音同이라
續漢書郡國志 遼東屬國無慮縣 有醫無閭山이라하니 是醫無閭
短言之曰無慮 則無虧 長言之인댄 亦可云繄無虧 短言之 又可云繄虧
亦聲相轉也 但無餘 遠在夏世하고 而史記越世家 則謂句踐始爲越王이라
史記正義 引輿地志하여 云 周敬王時 有越侯夫譚하니 子曰允常 拓土始大하여 稱王이라하다
案 允常 爲句踐父 漢書古今人表 亦云 越王允常이라하니 竝與史記不同이라 此越王 或當是允常이니 亦未能決定也
又案 國語 世本 竝以越爲羋姓하니 則疑繄虧或卽執疵 詳後


越王 繄虧
盧文弨:〈‘繄虧’는〉 곧 ‘無餘’이다. ‘’는 舊本에 ‘’으로 되어 있으니, 잘못된 것이라 임의로 고친다.
:畢沅本에 또한 盧文弨에 의거하여 교감하였으니 지금 그것을 따른다. ≪史記≫ 〈周本紀〉에 “共王의 이름이 繄扈이다.”라 하였으니 이것과 서로 유사하다.
無餘’의 〈‘’는〉 ≪越絶書≫ 〈外傳 記地〉편과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을 보니 글자가 ‘’로 되어 있으니 같은 글자이다. 盧文弨에 의거하여 교감하니 ‘繄虧’가 바로 ‘無餘’이다.
아마 無餘本名無虧일 것이니 ≪春秋左氏傳僖公 17년 조에 “나라에 公子 無虧가 있다.”라 하였으니, 越王의 이름이 혹 저와 같았던 것이다.
古語를 길게 발음하여 혹 ‘繄無’라 하였다. ≪周禮≫ 〈職方氏〉에 “幽州鎭山醫無閭이다.”라 하였으니, ‘’는 또한 ‘’와 이 같다.
續漢書≫ 〈郡國志〉에 “遼東屬國 無慮縣醫無閭山이 있다.”라 하였으니 이것이 醫無閭이다.
〈‘醫無閭’를〉 짧게 발음하여 ‘無慮’이면, 無虧를 길게 발음할 경우 또한 ‘繄無虧’라 할 수 있고, 짧게 발음하면 또 ‘繄虧’라 할 수 있다.
’와 ‘’는 또한 소리가 변한 것이다. 다만 無餘는 멀리 나라 시대의 인물이고, ≪史記≫ 〈越世家〉에서는 句踐이 처음으로 越王이 되었다고 하였다.
史記正義≫에 ≪輿地志≫를 인용하여 “ 敬王越侯 夫譚이 있으니, 아들 允常이 영토를 개척한 것이 비로소 광대하여 이라 일컬었다.”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允常句踐父君이다. ≪漢書≫ 〈古今人表〉에도 ‘越王 允常’이라 하였으니, 모두 ≪史記≫와 같지 않다. 여기에서 말하는 越王은 혹 응당 允常일 것이니, 또한 결정할 수 없다.
又案:≪國語≫와 ≪世本≫에 모두 을 ‘羋姓’이라 하였으니, 의심컨대 繄虧는 바로 執疵일 것이다. 뒤에 상세히 나온다.


역주
역주1 山鎭 : 저본 傍注에 “‘山鎭’은 원문에 ‘鎭山’으로 잘못 도치되어 있으니, ≪周禮≫ 〈職方氏〉에 의거하여 고친다.”라고 하였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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