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盧云 卽無餘也라 繄는 舊作緊하니 非라 以意改라
案 畢本에 亦依盧校하니 今從之라 史記周本紀에 共王名繄扈라하니 與此相類라
無餘는 見越絶書外傳記地篇과 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에 字作余하니 同이라 依盧校하니 繄虧卽無餘라
疑無餘本名이 無虧니 左傳僖十七年에 齊有公子無虧라 越王名이 或與彼同이라
古語
에 無
를 長言之
하여 或曰繄無
라 周禮職方氏
에 幽州
醫無閭
라하니 醫亦與繄
로 音同
이라
續漢書郡國志에 遼東屬國無慮縣에 有醫無閭山이라하니 是醫無閭라
短言之曰無慮면 則無虧를 長言之인댄 亦可云繄無虧요 短言之면 又可云繄虧라
虧와 餘는 亦聲相轉也라 但無餘는 遠在夏世하고 而史記越世家엔 則謂句踐始爲越王이라
史記正義에 引輿地志하여 云 周敬王時에 有越侯夫譚하니 子曰允常이 拓土始大하여 稱王이라하다
案 允常이 爲句踐父라 漢書古今人表에 亦云 越王允常이라하니 竝與史記不同이라 此越王은 或當是允常이니 亦未能決定也라
又案 國語와 世本에 竝以越爲羋姓하니 則疑繄虧或卽執疵라 詳後라
注
盧文弨:〈‘繄虧’는〉 곧 ‘無餘’이다. ‘繄’는 舊本에 ‘緊’으로 되어 있으니, 잘못된 것이라 임의로 고친다.
案:畢沅本에 또한 盧文弨에 의거하여 교감하였으니 지금 그것을 따른다. ≪史記≫ 〈周本紀〉에 “共王의 이름이 繄扈이다.”라 하였으니 이것과 서로 유사하다.
‘無餘’의 〈‘餘’는〉 ≪越絶書≫ 〈外傳 記地〉편과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을 보니 글자가 ‘余’로 되어 있으니 같은 글자이다. 盧文弨에 의거하여 교감하니 ‘繄虧’가 바로 ‘無餘’이다.
아마 無餘의 本名이 無虧일 것이니 ≪春秋左氏傳≫ 僖公 17년 조에 “齊나라에 公子 無虧가 있다.”라 하였으니, 越王의 이름이 혹 저와 같았던 것이다.
古語에 無를 길게 발음하여 혹 ‘繄無’라 하였다. ≪周禮≫ 〈職方氏〉에 “幽州의 鎭山이 醫無閭이다.”라 하였으니, ‘醫’는 또한 ‘繄’와 音이 같다.
≪續漢書≫ 〈郡國志〉에 “遼東의 屬國 無慮縣에 醫無閭山이 있다.”라 하였으니 이것이 醫無閭이다.
〈‘醫無閭’를〉 짧게 발음하여 ‘無慮’이면, 無虧를 길게 발음할 경우 또한 ‘繄無虧’라 할 수 있고, 짧게 발음하면 또 ‘繄虧’라 할 수 있다.
‘虧’와 ‘餘’는 또한 소리가 변한 것이다. 다만 無餘는 멀리 夏나라 시대의 인물이고, ≪史記≫ 〈越世家〉에서는 句踐이 처음으로 越王이 되었다고 하였다.
≪史記正義≫에 ≪輿地志≫를 인용하여 “周 敬王 때 越侯 夫譚이 있으니, 아들 允常이 영토를 개척한 것이 비로소 광대하여 王이라 일컬었다.”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允常이 句踐의 父君이다. ≪漢書≫ 〈古今人表〉에도 ‘越王 允常’이라 하였으니, 모두 ≪史記≫와 같지 않다. 여기에서 말하는 越王은 혹 응당 允常일 것이니, 또한 결정할 수 없다.
又案:≪國語≫와 ≪世本≫에 모두 越을 ‘羋姓’이라 하였으니, 의심컨대 繄虧는 바로 執疵일 것이다. 뒤에 상세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