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釋名≫ 〈釋喪制〉에 “棺을 묶는 것을 ‘緘’이라고 하니, ‘緘’은 ‘函(싸다)’이다. 옛날에는 棺에 못질을 하지 않았다.”라 하였다.
≪禮記≫ 〈喪大記〉에 “凡封用綍 去碑負引 君封以衡 大夫士以咸(무릇 棺을 구덩이에 내리는 데는 綍(상여 줄)을 사용하니, 사람들은 碑의 바깥쪽으로 손잡이 끈을 짊어지고 당기며 선다. 임금의 관을 구덩이에 내리는 데는 衡(가로막대)을 사용하여 〈여기에 관을 매달아 매장한다.〉 大夫와 士의 경우에는 咸(관에 감은 띠)에 〈줄을 걸어서 매장한다.〉)”이라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咸’은 ‘緘’으로 읽는다. 무릇 柩車(영구차)가 뫼 구덩이에 이르면 수레에서 관을 빼고 장식을 제거하고서 널을 싼 줄에 紼을 잇는다.
지금 齊나라 사람은 관을 묶는 것을 ‘緘繩’이라고 한다.”라 하였다. 또 ≪禮記≫ 〈檀弓〉에 “관을 묶는 데는 세로로 두 번, 가로로 세 번 묶는다.”라 하였다.
案:禮에 관을 묶는 데는 가죽을 쓰며 여기에서는 칡덩굴을 쓰니, 또한 검소함을 숭상하는 것이다.
≪漢書≫ 〈楊王孫傳〉에 “옛날에 帝堯를 장례 지낼 때에 속이 빈 나무로 널을 만들고 葛藟로 관을 묶었다. 파서 묻는 깊이는 아래로 지하수에 닿지 않고 위로 썩는 냄새가 새지 않을 정도였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