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0 然後埋其骨이라야 乃成爲孝子니라 秦之西에 有儀渠之國者한대
注
畢云 渠는 舊作秉하니 據列子及太平廣記改라 史記正義에 括地志에 云 寧原慶三州는 秦北地郡이라
戰國及春秋時爲義渠니 戎國之地라하니 今甘肅慶陽府也며 在陝西之西라하다
詒讓案 渠는 吳鈔本에 作秉하니 不成字라 博物志에 引作義渠하며 新論同이라
宋本列子의 渠下注에 云 又康이라한대 康與秉은 竝渠之形誤라
周書王會篇에 云 義渠以玆白이라한대 孔晁注에 云 義渠는 西戎國이라하며 後漢書西羌傳에 云 涇北有義渠之戎이라하다
兪云 史記秦本紀에 厲共公三十三年에 伐義渠하고 虜其王이라하니 卽此國也라하다
그러한 연후에 그 뼈를 매장해야만 孝子가 될 수 있었다. 秦의 서쪽에 儀渠라는 나라가 있었다.
注
畢沅:‘渠’는 舊本에 ‘秉’으로 되어 있으니, ≪列子≫와 ≪太平廣記≫에 의거하여 고친다. ≪史記正義≫에 “≪括地志≫에 ‘寧州‧原州‧慶州 3주는 秦의 北地郡이다.
戰國時代 및 春秋時代의 義渠니 戎國 지역이다.’라 하였다.”라 하였으니, 지금 甘肅省 慶陽府이다. 陝西의 서쪽에 있다.
詒讓案:‘渠’는 吳寬의 鈔本에 ‘秉’으로 되어 있는데, 글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博物志≫에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 ‘義渠’로 되어 있으며, ≪新論≫도 같다.
宋本 ≪列子≫의 ‘渠’ 아래 注에 “또 ‘康’으로 쓰기도 한다.”라 하였는데, ‘康’과 ‘秉’은 모두 ‘渠’의 字形이 잘못된 것이다.
≪逸周書≫ 〈王會解〉에 “義渠以玆白(義渠는 ‘玆白’을 바쳤다.)”이라 하였는데, 孔晁의 注에 “義渠는 서쪽의 戎國이다.”라 하였으며, ≪後漢書≫ 〈西羌傳〉에 “涇水에 ‘義渠’라는 戎이 있다.”라 하였다.
兪樾:≪史記≫ 〈秦本紀〉에 “厲 共公 33년에 ‘義渠’를 정벌하여 그 왕을 사로잡았다.”라 하였으니, 〈‘義渠’가〉 바로 이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