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2 無從下之政上이요 必從上之政下라 是故로 庶人竭力從事라도 未得次己而爲政이요
注
畢云 次는 恣字省文이라 下同이라 一本에 作恣하니 俗改라하다
王引之云 畢說非也라 次는 猶卽也니 下文諸次字竝同이라 此言士在庶人之上이라 故로 庶人이 未得卽己而爲正이면 有士正之也라
次卽은 聲相近하고 而字도 亦相通이라 康誥에 勿庸以次女封이라하며 荀子致士와 宥坐二篇에 竝作勿庸以卽女라하며
家語始誅篇에 作勿庸以卽女心이라하니 皆其證이라 說文에 垐는 古文에 作堲이라하니 亦其例也라하다
案 意林引下篇한대 次는 竝作恣하니 則畢說도 亦通이라
節用上篇에 云 聖王旣沒한대 于民次也라한대 恣도 亦作次하니 可證이라
아래로부터 위를 바로잡는 일은 없으며, 반드시 위로부터 아래를 바로잡는다. 이런 까닭에 庶人은 있는 힘을 다하여 일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바로잡는 일을 할 수 없고,
注
畢沅:‘次’는 ‘恣’자의 자획을 생략한 것이다. 아래도 같다. 어떤 本에는 ‘恣’로 되어 있으니, 세상 사람이 고친 것이다.
王引之:畢沅의 說은 옳지 않다. ‘次’는 ‘卽’과 같으니, 아래 글의 모든 ‘次’자가 모두 같다. 여기서는 士가 庶人의 위에 있기 때문에 庶人이 자기에게 닥쳐 바로잡는 일을 할 수 없으면 士가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次’와 ‘卽’은 소리가 서로 비슷하고 글자 또한 서로 통용한다. ≪書經≫ 〈康誥〉에 “勿庸以次女封(너 封의 뜻에 나아가지 말라.)”이라 하였으며, ≪荀子≫ 〈致士〉와 〈宥坐〉 2篇에 모두 “勿庸以卽女(너에게 나아가게 말라.)”라 하였으며,
≪孔子家語≫ 〈始誅〉에 “勿庸以卽女心(너의 뜻에 나아가게 말라.)”이라 하였으니, 모두 그 증거이다. ≪說文解字≫에 “‘垐’는 古文에는 ‘堲’으로 되어 있다.”라 하였으니, 또한 그 용례이다.
案:≪意林≫에서 ≪墨子≫ 〈天志 下〉를 인용하였는데, ‘次’는 모두 ‘恣’로 되어 있으니, 畢沅의 說이 또한 통한다.
≪墨子≫ 〈節用 上〉에 “聖王旣沒 于民次也(聖王이 돌아가시자 백성이 방자해져)”라 하였는데, ‘恣’ 또한 ‘次’로 되어 있으니, 증거가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