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兪云 於故二字는 當爲衍文이라 下文에 云 然而今天下之士君子曰 然이라 乃若兼則善矣나 雖然이나 不可行之物也라한대
正與此文一律이라 惟其爲難物이라 故로 爲不可行之物也니 今衍於故二字면 則無義矣라하다
案 于故는 雖難通이나 然非衍文也라 竊疑于卽迂之借字라 文王世子云 況于其身以善其君乎아한대
鄭注에 于讀爲迂라하니 是其證이라 故者는 事也라 迂故는 言迂遠難行之事라
尙同中篇에 云 故로 古者에 聖人之所以濟事成功하여 垂名於後世者는 無他故異物焉이라한대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이는 천하의 어렵고 우활한 일이다.”라 한다.
注
‘于’는 舊本에 ‘於’로 되어 있다. 이제 道藏本에 근거하여 바로잡는다.
兪樾:‘於故’ 두 자는 응당 衍文일 것이다. 아래 글에 “然而今天下之士君子曰 然 乃若兼則善矣 雖然 不可行之物也(그러나 지금 천하의 사군자들은 “그렇다. 아우르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글과 같은 형식이다. 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행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지금처럼 ‘於故’ 두 자가 잘못 들어가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案:‘于故(於故)’는 비록 뜻이 통하기 어렵지만 衍文은 아니다. 아마도 ‘于’는 ‘迂(멀다)’의 假借字일 것이니, ≪禮記≫ 〈文王世子〉에 “況于其身以善其君乎(하물며 자기 몸을 굽혀서 그 임금을 선하게 하는 데 있어서랴.)”라고 했는데,
鄭玄의 注에서 “‘于’는 ‘迂’로 읽는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증거이다. ‘故’는 ‘事’이다. ‘迂故’는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을 말하는 것이다.
≪墨子≫ 〈尙同 中〉에 “故古者 聖人之所以濟事成功 垂名於後世者 無他故異物焉(그러므로 옛날 성인들이 일을 잘해내고 공업을 이루어 후세에 이름을 드리웠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難物迂故’는 ‘他故異物’과 文例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