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며 며 이니 苟得於道
하면 無自而不可
커니와 하니라
“저는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의 육경六經을 익힌 지 스스로 오래되었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가지고 72명의 군주에게 나아가 유세하여 선왕의 도道를 논하고 주공과 소공의 자취를 밝혔지만 한 명의 군주에게도 채택되어 쓰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달래기가 어렵고 도를 밝히기 어려움이.”
무릇 육경이란 선왕이 남긴 자취이니 어찌 그 자취를 남긴 참다운 모습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자취와 같은 것이고 자취란 발걸음에서 나온 것이니 당신의 자취가 어찌 당신의 발걸음일 수 있겠습니까.
흰 물새가 서로 마주 보면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으며, 벌레가 수컷이 위쪽에서 울면 암컷이 아래쪽에서 호응하여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아서, 같은 부류들은 저절로 상대를 암컷이나 수컷으로 삼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새끼를 낳습니다.
본성은 바꾸어서는 아니 되고 운명을 변화시켜서는 안 되며 때를 지체시켜서는 안 되며 도를 막아서는 안 되니 만약 도를 터득하면 무엇을 말미암든 안 될 것이 없겠지만 도를 잃어버리면 말미암아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자가 석 달 동안 외출하지 않다가 다시 노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까막까치는 알을 까서 새끼를 낳고, 물고기는 거품을 뿌려 새끼를 낳고 허리 가는 벌레들(벌 종류)은 누에를 키워 자기 자식으로 삼고 〈사람은〉 동생이 생기면 형이 울고불고 합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저는 조화造化와 벗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조화와 벗이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