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는 知道之可以貴며 可以賤이며 可以約이며 可以散하노니
道不可聞이니 聞而非也며 道不可見이니 見而非也며 道不可言이니 言而非也니라
有問道而應之者는 不知道也니 雖問道者라도 亦未聞道하나니라
以無內로 待問窮하나니 若是者는 外不觀乎宇宙하며 內不知乎大初라
태청이 다시 무위無爲에게 묻자 무위가 말했다.
“그대가 도를 아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가?”
“나는 도가 귀해질 수도 있고 천해질 수도 있으며 묶을 수도 있고 흩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태청이 이 이야기를 무시無始에게 하면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무궁이 알지 못하는 것과 무위가 아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도를 깊이 체득했기 때문이고 안다고 하는 것은 도를 얕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도를 내면에 둔 것이고 아는 것은 도를 밖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태청泰淸이 크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인가.
누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임을 알겠는가.”
“도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들을 수 있다면 도가 아니며 도는 볼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볼 수 있다면 도가 아니며 도는 말할 수 없으니 말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드러난 모습을 드러나 보이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도를 물었을 때 대답하는 자는 도를 알지 못하는 자이니 비록 도에 관해 묻더라도 도가 무엇인지 들을 수 없다.
도는 물을 수 없는 것이며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물을 수 없는 것인데 물으니 이것은 물음이 다한 것이다.
대답할 수 없는데 대답한다면 이것은 도가 안에 없는 것이다.
안에 없는데 물음이 다한 것을 기다리니 이 같은 자는 밖으로는 우주를 보지 못하고 안으로는 태초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이다.
이 때문에 곤륜산을 지나가지 못해서 태허에서 노닐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