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者
에 桀紂 貴爲天子
하고 富有天下
호대 今謂
曰 汝 行如桀紂
라하면 則有怍色
하야 有不服之心者
는
仲尼墨翟이 窮爲匹夫로대 今에 謂宰相하야 曰 子 行如仲尼墨翟이라하면 則變容易色하야 稱不足者는
故로 勢爲天子라도 未必貴也며 窮爲匹夫라도 未必賤也라
湯이 放桀하고 武王이 殺紂하니 貴賤이 有義乎아
儒者 僞辭하고 墨者는 兼愛하나니 五紀六位 將有別乎아
“당신은 어찌하여 스스로의 행실을 닦지 않습니까.
행실을 닦음이 없으면 남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남에게 신뢰받지 못하면 관직에 임명되지 못하고 관직에 임명되지 못하면 이익이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명예를 기준으로 따져보고 이익을 기준으로 헤아려본다면 의義야말로 진실로 제일의 가치입니다.
그러니 만일 명예나 이익을 버리고 근본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기로 한다면 사인士人의 수행修行은 하루라도 닦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끄러움 없는 자가 부자가 되고 입심 좋아 말 많은 자가 유명해집니다.
대저 명예나 이익 가운데 큰 것은 거의 부끄러움 없고 말 많은 데에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명예를 기준으로 따져보고 이익을 기준으로 헤아려 본다면 곧 입심 좋고 말 많은 것이야말로 진실로 제일의 가치입니다.
그러니 만일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기로 한다면 사인士人의 행동은 〈무슨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천성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夏의 걸왕桀王과 은殷의 주왕紂王은 귀하기로는 천자였고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소유하였지만, 지금 종이나 마구간지기에게 말하기를 ‘너는 행동이 걸‧주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 부끄러워하는 빛이 있거나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걸‧주가〉 미천한 사람들도 천하게 여기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중니仲尼와 묵적墨翟은 옛날에 곤궁하기로는 필부였지만 지금 어떤 재상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행동이 중니나 묵적과 같다.’고 하면 그는 용모를 고치고 얼굴빛을 바꾸어 정색하고서 ‘저는 중니‧묵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중니‧묵적을〉 사인士人들도 진실로 존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누려 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존귀한 것은 아니며 곤궁하여 필부의 처지에 놓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참된 귀함과 천함의 구분은 그 인간의 행동의 선과 악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훔치는 좀도둑은 잡히지만 큰 것을 훔치는 큰 도둑은 제후가 됩니다.
게다가 그 제후의 권력이 있고서 비로소 의사義士가 그 아래에 있게 됩니다.
옛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자기 형을 죽여 그 형수를 아내로 삼았는데도 이런 무법자에게 관중管仲이 신하가 되었으며, 제나라의 실력자 전성자상田成子常이 자기 주군을 죽이고 나라를 훔쳤는데, 공자는 이 극악무도한 전상田常으로부터 폐백을 받고 그의 초청에 응했습니다.
그러니 〈관중이건 공자이건〉 이들은 말로는 환공이나 전상을 경멸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인 것입니다.
이것은 말과 행동의 실제가 마음속에서 서로 배반하고 싸우면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니 또한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옛날 책에서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어느 쪽이 악이고 어느 쪽이 선인가.
성공한 자가 우두머리가 되고 성공하지 못한 자가 꼬리가 되게 마련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대가 〈그런 소리나 하고〉 행실을 닦지 않으면 곧, 이윽고 관계의 멂과 가까움에 질서가 없게 되고, 귀貴와 천賤의 예의가 없게 되고, 장長과 유幼의 차례가 없게 될 것이니, 다섯 가지 근본윤리[五紀]와 여섯 가지의 관계윤리[六位]를 장차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요임금은 자신의 장남을 죽였고, 순임금은 모제母弟였던 상象을 추방하였으니 이러고서도 멂과 가까움에 질서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또 탕湯이 걸桀을 추방하고 무왕武王이 주紂를 죽였으니 이러고서도 귀貴와 천賤 사이에 예의가 있다고 할 것인가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버지 왕계王季는 형들을 제쳐놓고 적자嫡子가 되었고, 주공周公은 형들을 죽였으니 이러고서도 장長과 유幼 사이에 순서가 있다 할 것인가요.
유자儒者는 말을 거짓으로 하고 묵자墨者는 구별 없이 박애하라고 주장하니 이러고서도 오기五紀와 육위六位의 윤리가 장차 구별이 가능하다 할 것인가요.”
“또 가령 그대가 바로 명성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겠는데, 명성을 추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의 실상은 모두가 도리에 맞지 않고, 근본의 참된 도道에 비추어볼 때 옳지 않은 것입니다.
전날에 그대와 무약無約 선생에게 가서 우리의 논쟁거리를 가지고 가르침을 청한 일이 있었지요.
‘소인은 재물 때문에 자기 몸을 희생하고, 군자는 명성 때문에 자기 몸을 희생한다.
그들이 본연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본성本性을 바꾸는 목적은 다르나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버리고 해서는 아니 될 일에 자기 몸을 희생함에 이르러서는 같다.’
그래서 말하기를 ‘재물 때문에 자기 몸을 희생하는 소인이 되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 너의 자연인 천天을 따르며, 명성 때문에 자기 몸을 희생하는 군자가 되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 자연인 천天의 도리를 따르도록 하라.
때론 구부리고 때론 곧게 나아가면서 너의 자연自然인 천天의 극치를 주시하면서 사방의 만물을 바라보면서 때의 추이와 함께 변화하라.
〈시비상대是非相對의 견지에 얽매이지 말고〉 때로는 옳다 하고 때로는 그르다 하면서 너의 회전축을 잡으며 홀로 너의 뜻을 이루어 나가면서 도道와 함께 소요逍遙 배회徘徊하며 즐겨라.
너의 행동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오로지 한정하지 말며 너의 독단적인 정의正義를 내세워 그것을 완성하려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추구해야 할 참다운 도道를 장차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너의 부富를 좇지 말 것이며 너의 세속적 성공에 몸을 희생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장차 너의 자연인 천天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약無約의 말처럼〉 은의 왕자 비간比干은 〈주紂를 간諫하다가〉 심장이 갈라졌으며 오吳의 오자서伍子胥는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간하다가〉 눈알이 도려내졌으니, 이것은 충忠이 초래한 재앙입니다.
직궁直躬은 아버지의 범죄를 증명했고 미생尾生은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이것은 신信이 초래한 재앙입니다.
또 춘추시대의 은자隱者 포초鮑焦는 〈나무를 붙들고〉 선 채로 말라 죽었으며 은대의 은자隱者 신도적申徒狄은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스스로 황하의 물속에 빠졌으니, 이것은 염결廉潔이 초래한 해害입니다.
공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보지 못하였고, 광자匡子는 아비와 대립하여 아버지를 종신토록 만나지 않았으니 정의로 인한 과실입니다.
이것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것이며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이들 사인士人들은 자기의 말을 엄정하게 하고 자기의 행실을 말한 대로 꼭 실천하였는데, 그 까닭에 도리어 그 재앙을 당하고 그 환난에 걸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