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鄭나라 사람 완緩이 구씨裘氏라는 땅에서 열심히 책을 독송하더니, 3년이 지난 뒤에 완은 유자儒者가 되었다.
황하의 물이 연안 9리의 땅을 적셔 주듯이 그의 은택은 친가‧외가‧처가 삼족三族 전체에까지 널리 미쳤다.
그런데 유묵儒墨이 서로 논쟁하게 되자, 그 아버지는 동생 적翟의 편을 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완이 나타나서〉 말했다.
“당신의 아들을 묵자가 되도록 한 것은 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덤에 한 번 와보지도 않으십니까?
내 몸은 이미 변화하여 무덤 위 측백나무의 열매가 되어 있습니다.”
조물자造物者가 인간에게 보답할 적에는 인위적인 것으로 보답하지 아니하고, 천성으로 보답한다.
〈그러므로 아우인 적이 묵자가 된 것은 완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가 본시 그런 사람이 되게 되어서 그리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 완은 자기를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그 어버이를 경멸하였으니 이는 곧 〈우물을 판〉 제나라 사람이 그 우물물을 마시려는 다른 사람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완과 같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옳다고 하는 것은 덕을 쌓은 사람도 이미 잊어버린 것인데 하물며 도道와 일체가 된 유도자有道者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완처럼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는 것은〉 옛날에는 천지자연의 이법으로부터 도망친 죄라 하였다.
도道의 체득자 성인聖人은 안주하여야 할 천지자연의 이법理法에 안주하고 안주하여서는 아니 되는 인위人爲의 세계에는 안주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인衆人들은 안주하여서는 아니 될 인위에 안주하고 안주하여야 할 천지자연의 이법에는 안주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