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1馮著 :
위응물의 친구이다. 《元和姓纂》 卷1 〈河間馮氏〉에, “감찰어사 馮師古의 손자는 著와 魯인데, 著는 좌보궐이다.[監察御史馮師古 孫著魯 著左補闕]”라고 하였다. 위응물 시에 의하면, 풍저는 일찍이 廣州錄事‧緱氏尉‧洛陽尉를 역임하였으며 貞元 8년(792)에 左補闕을 지냈다.
역주2灞陵 :
즉 灞上인데, 漢 文帝를 이곳에 장사지냈기 때문에 패릉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灞陵은 장안 동쪽 교외 산이 있는 지역으로, 漢代에 패릉산은 장안 부근의 유명한 隱逸地였다. 東漢의 逸士인 梁鴻이 일찍이 이곳에 은거하였고, 약초를 팔던 韓康 또한 이곳에 은둔한 적이 있다. 풍저가 장안 동쪽 지역에서 왔다는 것은 그가 훌륭한 선비이며 隱士의 풍도를 지녔음을 말한다.
역주3采山 :
‘광석을 캐내다’ 또는 ‘나무를 베다’의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보았다. 左思의 《吳都賦》에,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산을 파내어 돈을 만든다.[煮海爲鹽 采山鑄錢]”라는 말이 있는데, 산에 들어가 銅을 캐내어 그것으로 동전을 주조한다는 뜻이다. 馮著가 長安에 온 것은 도끼를 사서 그것으로 산을 파 동전을 만들기 위함이니, 관직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왔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풍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우하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