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 古柏行 路繞錦亭 元註 黃氏趙氏 皆謂此詩作於夔州
蓋武侯廟在成都 亦在夔州 兩廟皆有柏 此詩 子美初至夔州 見武侯廟 遂追感成都所見而作故云
誰能送 言此柏不辭剪伐爲用 而誰能取遣而用之乎 - 朝鮮 李德弘, 《艮齋集》 〈古文前集質疑〉
○ 或爲子美作此詩 備詩家衆體 非獨形容一時君臣相遇之盛 亦可以自況 而又以憫其所値之時不如古也
第深考之 信然 - 宋 李之儀, 《姑溪居士文集》 〈跋古柏行後〉
○ 古柏行一首 見睹物懷人氣勢之大 - 宋 何溪汶, 《竹莊詩話》 卷15
不然 廟前之柏 豈梁棟之需哉 - 明 王嗣奭, 《杜臆》 卷7
아름다운 무늬 드러내지 않았어도 세상 이미 놀랐건만
잘림도 베어짐도 거절 않지만 누가 이를 옮기리오
괴로워도 그 속에 땅강아지 개미들이 사는 것을 어찌 면할까마는
향기로운 잎에는 마침내 난새와 봉새들이 머물리라
[集評] 〈고백행〉의 ‘路繞錦亭’은 元註에 황씨와 조씨 모두 이 시는 夔州에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대개 武侯廟는 성도에 있고 또한 기주에도 있는데, 두 묘에 모두 측백나무가 있으나 이 시는 子美(杜甫)가 처음 기주에 이르러 무후묘를 보고 성도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誰能送’은 이 측백나무가 잘리고 베어져 쓰이는 것을 사양하지 않지만, 누가 取捨하여 그것을 쓸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혹자는 子美(杜甫)가 이 시를 지어 시인의 여러 체를 갖추었는데, 한때 훌륭한 군주와 신하가 만난 성대함을 형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을 비유하였고, 또 처한 때가 옛날과 같지 않음을 근심하였다고 하였다.
〈고백행〉 한 수는 사물을 보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큰 기세가 보인다.
성도와 기부에는 각각 제갈공명의 사당이 있고, 사당 앞에는 각각 오래된 측백나무가 있다.
여기에서는 기주 사당의 측백나무로 인해 성도의 것까지 아울러 언급했지만, 측백나무를 읊은 것은 아니다.
공은 평생 제갈공명을 극찬했는데, 대개 은밀히 (자신을) 비유하는 뜻이 있다.
공은 일찍이 스스로를 稷과 契에 견주어 재목은 공명과 같지만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마지막을 “재목이 크면 쓰이기 어려웠다네.[材大難爲用]”로 끝맺었는데, 이것이 시를 지은 본의이며 측백나무는 흥을 일으킨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당 앞의 측백나무가 어떻게 동량으로 쓰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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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고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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