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五首各一古迹 第一首古迹不曾說明 盖庾信宅也 借古迹以詠懷 非詠古迹也 - 明 王嗣奭, 《杜臆》 卷8
○ 其一 自蜀言之 則中原皆爲東北 支離猶云割裂 不相屬也
公于此自稱詞客 盖將自比庾信 先用引起下句 而以己之哀時 比信之哀江南也
公自蕭瑟 借詩以陶冶性靈 而借信以自詠己懷也 - 明 王嗣奭, 《杜臆》 卷8
末以庾信之懷況己懷也 卽子山 卽子美 - 淸 浦起龍, 《讀杜心解》 卷4의 2
古跡則人各其人 各事其事 與諸將一類 彼何以獨無冒乎
旣云冒矣 又謂其古跡則庾信宅也 一詩兩用 成何體裁
且詩中止言庾信 不言其宅 而宅又在荊州 公身未到 何得詠及之
至顧辰則謂因己懷而感古跡 黃生則謂因古跡而自詠懷 總緣胸中爲本章所碍 不得解脫 遂添幾許蛇足耳
予直以詩意詩法斷之 世或不以其言爲河漢也 - 淸 浦起龍, 《讀杜心解》 卷4의 2
○ 首章詠懷 以庾信自方也 上四 漂泊景況 下四 漂泊感懷 - 淸 仇兆鰲, 《杜詩詳注》 卷17
按子山自梁使周 被留不返 三峽五溪 踪跡未到 不當付會 - 淸 仇兆鰲, 《杜詩詳注》 卷17
次詠宋玉以文章同調相憐 詠明妃爲高才遇寄慨 先主武侯則有感於君臣之際焉
或疑首章與古跡不合 欲割取別爲一章 何其固也 - 淸 楊倫, 《杜詩鏡銓》 卷13
○ 五詩詠古卽詠懷 一面當作兩面看 其源出太沖詠史 - 淸 楊倫, 《杜詩鏡銓》 卷13
〈옛 자취를 읊으며 심회를 적다 첫 번째 시〉
갈호가 임금을 섬겼으나 끝내 믿음을 저버렸으니
시인은 시대를 슬퍼하며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네
[集評]○ 〈詠懷古跡〉 5수는 각각 하나의 古迹을 읊었다. 제1수는 고적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庾信의 집일 것이다. 고적을 빌려 회포를 읊은 것이요, 고적만을 읊은 것이 아니다.
○ 첫 번째 수는 蜀으로부터 말을 시작했으니, 中原은 모두 東北이요, ‘支離’는 찢겨져 나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三峽樓臺’라고 한 것이며, ‘淹日月’은 체류하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다.
‘五溪衣服’은
과 같은 말이며, ‘共雲山’은 同居를 의미한다.
‘羯胡’를 말함으로써 그가 漂泊하는 까닭을 소급한 것이다.
공은 여기서 자칭 ‘詞客’이라 하였는데, 대개 스스로를 庾信에 비유하여 다음 句의 내용을 먼저 이끌어낸 것이며, 자신이 시대를 슬퍼하는 것을 유신이 江南을 슬퍼한 것에 비기고 있다.
荊州에 庾信의 집이 있으니 ‘江關’은 바로 그곳을 지칭한다.
공은 스스로 쓸쓸해하며 詩를 빌려 性靈을 도야하였고, 庾信을 빌려 자신의 회포를 노래하였다.
○ 이것은 회포를 읊은 시로 古跡과는 관련이 없으며, 아래의 시 네 수와도 관련이 없다.
시 전체는 ‘漂泊西南’으로 主句를 삼았으며, 首句에서 그 이유를 미루어 말하였다.
3‧4구는 떠돌아다니는 것을 읊었으며 5‧6구는 流水對로 首尾가 雙關된다.
‘終無賴’를 통해 ‘支離’라는 말의 뜻을 펼쳤고, ‘且未還’을 통해 ‘蕭瑟’의 뜻을 일으켰다.
마지막 구에서는 庾信의 마음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비유하였으니, 子山(庾信)이 곧 子美(杜甫)인 것이다.
○ 두보의 다른 五詩類를 통해 예전의 논설을 살펴보건대 이 說들은 전혀 안목이 없다.
《杜臆》에서는 시의 첫 章이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의심하면서 마침내 다섯 수의 總序로 삼았으니, 그 말이 맞는 듯하지만 틀렸다.
〈詠懷古跡〉 5수는 사람은 각자 그 사람을 읊었고 일은 각자 그 일을 읊어서 〈諸將〉 5首와 똑같은 종류인데, 〈諸將〉에만 어떻게 序文이 없단 말인가.
또 이미 서문이라 말하고 그 古跡은 유신의 집이라고 말하여 시 한 편에서 두 가지 의미를 썼으니 이것이 무슨 체재인가.
또 시 가운데 유신만을 말하고 그의 집은 말하지 않았으며 집은 또 荊州에 있는데 公(杜甫) 자신은 아직 형주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시를 이와 같이 읊을 수 있는가.
스스로도 적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차 江陵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어긋남이 매우 심하다.
顧辰의 경우에는 자기 회포를 통해 고적을 느꼈다고 말하고, 黃生의 경우에는 고적을 통해 스스로의 감회를 읊었다고 하였으니, 모두 가슴속에서 本章에 구애되어 벗어나지 못해서 사족을 붙이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나는 다만 詩意와 詩法으로 판단한 것뿐인데 세상에서는 혹 그 말을 허황된 것으로 보지 않기도 한다.
○ 첫 장의 ‘詠懷’는 庾信으로 자신을 빗대었다. 위의 4句는 떠도는 생활의 景況을 서술하였고, 아래의 4句는 떠도는 생활의 感懷를 서술하였다.
○ 5‧6구는 主賓이 雙關하니 대개 안녹산이 唐을 배반한 것은 侯景이 梁을 배반한 것과 같다.
公(杜甫)이 故國을 그리워함은 유신이 江南을 슬퍼하는 것과 같다.
첫 장에서 庾信을 선택한 것은 自敍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일 뿐이다.
혹은 유신이 일찍이 강릉에 있는 宋玉의 고택에 산 적이 있기 때문에 마침내 시 전체를 통틀어 유신을 가리킨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子山(庾信)이 梁에서 周로 사신을 갔다가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했던바, 三峽五溪에는 그 종적이 닿지 않았으니 牽强附會하는 것은 부당하다.
○ 〈詠懷古跡〉 5수는 古跡을 빌려 자신의 회포를 읊은 것이다.
庾信은 난리를 피해 建康에서 江陵으로 갔는데, 비록 蜀 땅은 아니지만 宋玉의 집에 살게 되었다.
公(杜甫)이 떠돌아다니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 다음에는 宋玉을 읊으면서 文章을 가지고 同調相憐하였고, 明妃를 읊어 높은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만나는 바가 기구함을 개탄하였으며, 先主와 諸葛武侯의 경우에는 君臣의 사이에 느끼는 바를 담았다.
혹자는 시의 첫 수가 古跡과 맞지 않으니 그것을 잘라서 별도의 한 章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얼마나 고루한 생각인가.
○ 다섯 수의 시는 古跡을 읊으면서 곧 회포를 읊은 것이니, 한 면만으로도 마땅히 양면을 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근원은 太沖(左思)의 詠史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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