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시삼백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王維
獨坐
彈琴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集評]○ 林間之趣 人不易知 明月相照 似若會意 - 明 唐汝詢, 《唐詩解》
○ 幽逈之思 使人神氣爽然 - 淸 黃培芳, 《唐賢三昧集箋注》
○ 輞川諸詩 皆妙絶天成 不涉色相
只錄二首 (鹿柴及此詩) 尤爲色籟俱淸 讀之肺腑若洗
屠隆 鴻苞論詩 獨坐幽篁裏 中歲頗好道 冲玄淸曠 爽氣襲人
如寒泉漱齒 煩囂頓除 神丹入口 凡骨立蛻 - 淸 黃叔燦, 《唐詩箋注》
○ 毋乃有傲意 - 淸 宋顧樂, 《唐人萬首絶句選》
○ 人不知而月相照 正見獨坐 - 淸 黃生, 《唐詩摘抄》
○ 獨字起下人不知 知音者惟林間明月耳 - 淸 章燮, 《唐詩三百首注疏》
○ 相字與獨字反對 但相照者明月 則愈形其獨也 言外有無盡意味 - 淸 王文濡, 《唐詩評注讀本》
○ 輞川集中 如孟城坳 荷池 欒家瀨 諸作 皆閑靜而有深湛之思
此詩 言月下鳴琴 風篁成韻 雖亦一片靜境 而以渾成出之
坊本唐詩三百首 特錄此首者 殆以其質直易曉 便于初學也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 澄而不淺 空而生明 謂之漏 如竹里館 - 現代 錢鍾書, 《談藝錄》
○ 鹿柴 欒家瀨 竹里館 鳥鳴澗 皆一時淸景與詩人興致相會合
故雖寫景色 而詩人幽靜恬淡之胸懷 亦緣而見 此文家所謂融情入景之作 - 現代 劉永濟, 《唐人絶句精華》
○ 游國恩說
竹里館 這樣的詩 的確能給人一種無比淸幽的美感
但是 把空山不見人等句聯系起來 就不能不驚訝詩人感情的幽冷和孤獨了 - 現代 《中國文學史》
○ 詩中凡是明用孤獨字樣來表達生活動態時 多少總帶有寂寞的味兒 偏于傷感 和欣賞的心情似乎較少聯系
嘯是一種比較激劇的抒發動作 長嘯就更不平靜了
彈琴可以和閑適的情趣有聯系 但也常意味着尋覓知音而含有傾訴的作用
由寂寞而傾訴 而長嘯 只能是一種傷感與憤慨的暗示 和悠然自得的情緖是很難結合得上的
這是一首對現實政治不滿的作品 和他前期在政治上的積極態度 以及晩期不同流合汚的思想, 是有密切聯系的 - 現代 張志岳, 《詩詞論析》
○ 詩歌創造出了一介遠離塵囂 幽淸寂靜的境界 其中分明活動着一介高雅閑逸 離塵絶世 彈琴嘯詠 怡然自得的詩人的形象
詩人以寂靜爲樂 內心是淡泊平和恬靜的 就像一潭沒有波瀾的水 - 現代 陳鐵民, 《王維新論》
○ 詩人欣賞着環境的冷寞 體驗着內心的孤獨 沈浸在寂靜的快樂之中 - 現代 袁行霈, 《中國詩歌藝術硏究》
○ 同樣是無人之境 王維的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在寧靜中透出幽雅
韋應物 野渡無人舟自橫(〈滁州西澗〉) 却在寧靜中透出寂寞
柳宗元的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江雪〉) 却在寧靜中透出孤獨與寒寂 - 現代 周裕鍇, 《中國禪宗與詩歌》
○ 淸幽寂靜之極 從中可以感受到一種離塵絶世 超然物外的思想情緖
但是詩人是快樂的 他感到身上沒有俗務拘牽 心中沒有塵念縈繞
從而獲得了寂靜之樂 - 現代 陶文鵬, 《唐代文學史》
○ 全然不以字句取勝
而從整體上見美 傳達出一種高雅淸絶之神韻
從意境上看 外景與內情結合無間 融爲一體
從語言上看 則自空靈中蘊意味 由平淡中見高韻 - 現代 霍有明, 《論唐詩繁榮與淸詩演變》
○ 景極幽 境極靜 心極寧 月與人無間相契 這裏的月 帶有與幽人情趣相通的色彩 是抒情性的形象 - 現代 秦似, 《唐詩新選》
○ 摩詰居士的寂寞 似乎該屬于求仁得仁又何怨乎的一類
居士奉佛 今卽以佛理說之
佛家有透網金鱗之喩
居士惟恐觸網
故對所謂網者 旣不免深懷畏忌
而對其未曾觸網 亦不免深懷自喜
獨坐幽篁裏 爲人我隔絶
居士所證之果 似亦只是辟支小果 去法華經所云 利益天人 度脫一切的大乘佛法 似還大有一段距離在
惟其如此 故居士頗有自了自救的自得之樂
居士是有心出世的 其寂寞心之因是求仁得仁
故其于寂寞中所感者 亦少苦而多樂
自竹里館詩觀之 其由寂寞心所産生之果 爲修道者的自得 - 現代 葉嘉塋, 《從李義山嫦娥詩談起》


〈죽리관〉
왕유
고요한 대숲에 홀로 앉아
거문고 타고 다시 길게 읊조리네
깊은 숲속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밝은 달이 와서 비추네
[集評]○ 숲속에서 사는 멋은 남들이 알기 쉽지 않은데, 밝은 달이 나를 비추니 마치 내 마음을 아는 듯하다.
○ 깊고도 원대한 생각이 읽는 이로 하여금 정신과 기운을 상쾌하게 한다.
○ 輞川에서 지은 詩들은 모두 絶妙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형상에 얽매이지 않았다.
다만 두 수(〈鹿柴〉와 이 시)만을 기록한 것은, 이들이 더욱 색채와 소리가 모두 맑아서, 읽고 있으면 肺腑가 씻은 듯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明 屠隆의 《鴻苞論詩》에는 “ ‘고요한 대숲에 홀로 앉아[獨坐幽篁裏]’와 ‘’는 텅 비고 그윽하며, 맑고 환하여 그 상쾌한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든다.
마치 차가운 샘물로 이를 닦는 것처럼 번잡함과 시끄러움이 단숨에 없어지며, 神丹을 입에 넣은 것처럼 모든 뼈가 즉시 새롭게 바뀐다.”고 하였다.
○ 오만한 뜻이 전혀 없다.
○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달만이 비추니, 확실히 홀로 있음을 알겠다.
○ ‘獨’이라는 글자가 아래의 ‘人不知’를 일으켰으니, 知音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숲 사이의 밝은 달뿐이다.
○ ‘相’이라는 글자는 ‘獨’이라는 글자와 반대지만 서로 비추는 것은 밝은 달이니, 그 홀로 있음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言外에 무궁한 의미가 담겨 있다.
○ 《輞川集》 가운데 〈孟城坳〉, 〈荷池〉, 〈欒家瀨〉 등의 작품은 모두 한가롭고 고요하면서도 깊고 맑은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시는 달 아래에서 거문고 타는데 바람과 대숲이 和音을 이루는 것을 말하였으니, 비록 하나의 고요한 境界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坊本 《唐詩三百首》에 특별히 이 시를 기록한 것은, 아마도 이 시가 질박하고 직설적이며 이해하기 쉬워서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 맑으면서도 얕지 않으며 텅 비었으면서 밝은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을 ‘漏’라고 하는데 〈竹里館〉 같은 것이 그러하다.
○ 〈鹿柴〉, 〈欒家瀨〉, 〈竹里館〉, 〈鳥鳴澗〉은 모두 한때의 맑은 경치와 시인의 흥취가 서로 만나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景色을 묘사했지만 시인의 고요하고 맑은 胸懷도 이로 인해 드러났으니, 이는 文學에서 말하는 바 ‘情이 녹아 景으로 들어간[融情入景]’ 작품이다.
○ 游國恩이 말하였다.
“〈竹里館〉 같은 이런 시는,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맑고 그윽한 美感을 사람에게 분명히 전해준다.
그러나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空山不見人]’ 등의 구절과 관련시켜 보면, 시인이 지닌 감정의 幽冷함과 孤獨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시에서 대체로 ‘孤’나 ‘獨’이라는 글자들을 분명히 사용하여 생활 모습을 나타날 때에는 대부분 적막한 맛을 띠느라 哀傷의 감정에 치우쳐 버려 欣賞하는 心情과는 비교적 관련이 적은 법이다.
‘嘯’는 비교적 격렬하게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동작인데 ‘長嘯’는 더욱 平靜하지 못한 것이다.
‘彈琴’은 한적한 情趣와 관련지을 수도 있지만, 知音을 찾는다는 것도 늘상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자기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한 것이다.
적막한 가운데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며 또 길게 휘파람을 부는 것은 다만 傷感과 憤慨의 암시일 수 있으며, 悠然히 自得한 정서와는 매우 합치되기 힘든 부분이다.
이 시는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작품으로서, 시인이 젊은 시절 정치적으로 취했던 적극적인 태도 그리고 만년에 타락한 時流와 합치되지 못했던 思想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詩歌는 세속의 시끄러움과는 멀리 떨어진, 幽淸하고 寂靜한 境界를 창조해내었고, 그 안에는 분명 高雅하고 閑逸하여 塵世와는 멀리 떨어진 채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조리며 편안하게 自得한 시인의 형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시인이 寂靜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마음은 淡泊하고 평화롭고 恬靜하여, 마치 못에 물결이 전혀 일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 시인은 환경의 冷寞함을 欣賞하고 마음속의 고독을 체험하면서 寂靜한 쾌락 속에 깊이 침잠해 있다.
○ 똑같이 無人之境을 읊은 작품으로 王維의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滁州西澗〉)는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그윽한 아름다움이 스며 나온다.
韋應物의 ‘野渡無人舟自橫’(〈江雪〉)은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도리어 적막함이 스며 나오고,
柳宗元의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은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도리어 孤獨과 寒寂이 스며 나온다.
○ 淸幽 寂靜의 지극함, 그 속에서 세속과 멀리 떨어져 物外에서 超然한 사상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이것이 쾌락이니, 그는 몸에 있어서는 세속의 일에 구애받는 것이 없고 마음에는 속된 생각에 얽힘이 없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寂靜한 즐거움을 얻었던 것이다.
○ 字句만 보아서는 전혀 뛰어난 것을 취할 바가 없다.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보아야 高雅하고 淸絶한 神韻을 전달할 수 있다.
意境의 측면에서 보자면 外景과 內情이 결합함에 간격이 없어 混融하게 一體를 이루었다.
言語의 측면에서 보자면 空靈한 가운데 의미를 蘊蓄하고 있고, 平淡한 속에서 高韻을 드러낸다.
○ 風景은 지극히 그윽하며, 地境은 지극히 고요하고, 心境은 지극히 편안하며, 달은 사람과 간격이 없이 서로 꼭 들어맞는다. 여기에서 달은 幽人의 정취와 서로 통하는 색채를 띠고 있으니, 이는 抒情性을 형상화한 것이다.
○ 摩詰居士(王維)의 寂寞은 라고 하는 부류에 해당할 듯하다.
居士가 부처를 신봉하였으니, 지금 佛家의 이치로 그것을 설명하겠다.
佛家에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에 관한 비유가 있다.
居士는 오직 그물망에 걸릴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그물’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두렵고 꺼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자신 한 번도 그물망에 걸린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마음속 깊이 스스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獨坐幽篁裏’는 남과 내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이다.
居士가 보여준 깨달음의 경지는, 마치 ‘스승 없이 홀로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것[辟支小果]’과 같아서 《法華經》에서 말하는 ‘하늘과 사람을 이롭게 하여, 일체의 중생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利益天人 度脫一切]’는 大乘的인 佛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오직 이처럼 했기 때문에 居士에게는 자못 ‘自了’, ‘自救’하는 ‘自得’의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居士는 세속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寂寞한 마음의 원인은 ‘仁을 구하여 仁을 얻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寂寞한 가운데 느낀 것도 고통은 적고 즐거움이 많았다.
〈竹里館〉을 통해서 보자면 寂寞한 마음에서 나온 결과는 修道者의 自得이었던 것이다.


역주
역주1 竹里館 : 輞川 별장의 勝景 중 한 곳이다.
역주2 幽篁 : ‘篁’은 대나무 숲이다. ‘幽篁’은 빽빽하여 깊고 고요한 대나무 숲을 말한다.
역주3 復長嘯 : ‘復’는 又의 의미이다. ‘嘯’는 휘파람을 부는 것인데, 여기서는 시를 읊거나 노래하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4 중년에는……좋아하다 : 《唐詩三百首 2》 123번 〈終南別業〉 참조.
역주5 仁을 구하여……원망하였겠는가 : 원문의 ‘求仁得仁’은 《史記》 〈伯夷列傳〉에 나오는 孔子의 말이다. 공자는 “伯夷와 叔齊는 과거의 원한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들은 仁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으니 또 어찌 원망하였겠는가?[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求仁得仁 又何怨乎]”라고 했다.
동영상 재생
1 225 죽리관 270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