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牧之以拾遺召 臨別 公因以縱逸爲戒 牧之始猶諱之
方知牧之此詩 言當日逸游之事耳 - 宋 胡仔, 《苕溪漁隱叢話後集》
而揚郡名都 十年久客 纖腰麗質 所見者多矣 而無一眞賞者 不怨靑樓之萍絮無情 而反躬自嗟其薄倖
非特懺除綺帳 亦詩人忠厚之旨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世稱杜牧詩情豪邁 又謂其不爲齪齪小謹 卽此等詩可見其槪 - 現代 劉永濟, 《唐人絶句精華》
十年艶游 所贏者只靑樓薄幸之名 則其他所輸者可想而知
毋怪吳公見此詩 卽予以薦引 - 現代 兪守眞, 《唐詩三百首詳析》
낭창한 가는 허리 손바닥에서 춤출 만큼 가벼웠지
[集評]○ 杜牧之(杜牧)의 〈遣懷〉 시는 내가 언젠가 이 시는 필시 사연이 있어서 지은 것이 아닐까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芝田錄》을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牛奇章(牛僧孺)이 維揚을 다스릴 때 두목이 그의 막부에 있으면서 밤이면 으레 微服을 하고 밖으로 놀러 다녔다.
牛公이 이를 듣고 街卒들 몇을 시켜 몰래 두목을 따라다니면서 뜻밖의 봉변을 막도록 하였다.
뒤에 두목이 拾遺를 제수받고 조정에 불려 갈 때 이별하는 자리에서 牛公이 방종하게 놀지 말라고 경계하니, 두목이 처음에는 오히려 이 말을 피하였다.
이에 牛公이 상자 하나를 가져오라 하여 보여주었는데, 모두 街卒들이 보고한 문서로 ‘杜書記는 무사하다.’라고 써 있었다.
나는 그제야 두목의 이 시가 당시 즐겁게 놀던 때의 일을 말한 것임을 알았다.
揚州는 이름난 도시로, 10년 동안 오래 나그네로 지내면서 가는 허리, 고운 형체를 가진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참으로 歎賞할 만한 자가 없었는데도 부평초나 봄에 날리는 버들솜 같은 妓房의 無情함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돌이켜 자신이 薄情하다고 스스로 탄식하였다.
〈청루에 드나들던〉 화려한 생활을 참회하며 지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인의 忠厚한 뜻이기도 하다.
○ 재주 있는 사람이 한 시대에 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 이 시를 쓰게 하였다.
시를 읽으면 단지 오만하게 불평하는 모습만 보인다.
세상에서는 두목의 시를 ‘豪邁(호방하고 굳셈)하다.’고 하고 또 ‘그가 조심조심하며 작은 일에 삼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 시에서 그런 기개를 볼 수 있다.
○ 이 작품은 두목이 화려한 꿈에서 깨어 기생들과 놀았던 일을 참회하는 시이다.
《全唐詩話》에는 “두목이 자잘한 행동에 구애받지 않았다.
吳武陵이 이 시를 보고 바로 〈阿房宮賦〉를 崔郾에게 올려 두목이 곧장 과거에 급제했다.”고 하였다.
○ 첫 구는 揚州에 이르렀을 때를 추억하며 쓴 것이고, 2구는 揚州의 妓女를 가리킨 것이다.
3구의 ‘十年’은 미인과 사랑하며 머물렀던 오랜 시간을 말한 것이니,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4구는 윗구절을 바로 이어 돌이켜 맺은 것이다.
10년을 기생들과 놀고 얻은 것이 단지 ‘靑樓薄幸’이란 이름뿐이라면 그 밖에 들려올 말은 상상해 알 만하다.
言下(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 회한의 뜻이 가득 드러나며, 또한 불가의 이른바 ‘도살하는 칼을 놓아버린다.’는 것과 ‘머리만 돌리면 언덕’이라는 뜻이다.
○ 재주 있는 사람의 붓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吳公이 이 시를 보고 바로 나를 추천했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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