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右丞此絶句 近世人 又歌入小秦王 更名陽關 用語中語也
舊本蘭畹集 載寇萊公陽關引 其語豪壯 送別之曲 當爲第一
指靑靑楊柳 又是輕攀折 動黯然 知有後會甚時節…… - 宋 胡仔, 《苕溪漁隱總話後集》 卷九
此辭一出 一時傳誦不足 至爲三疊歌之 後之詠別者 千言萬語 殆不能出其意之外
必如是方可謂之達耳 - 明 李東陽, 《麓堂詩話》
○ 李滄溟推王昌齡秦時明月爲壓卷 王鳳洲推王翰葡萄美酒爲壓卷
本朝王阮亭則云 必求壓卷 王維之渭城 李白之白帝 王昌齡之奉帚平明 王之渙之黃河遠上 其庶幾乎
愚謂 李益之回樂烽前 柳宗元破額山前 劉禹錫之山圍故國 杜牧之烟籠寒水 鄭谷之揚子江頭 氣象稍殊 亦堪接武 - 淸 沈德潛, 《說詩晬語》 卷上
[集評]○ 王右丞의 이 絶句는 근래 어떤 사람이 또 《小秦王》에 노래로 집어넣으면서 제목을 〈陽關〉으로 바꿨는데 詩語 가운데 나오는 말을 쓴 것이다.
구본 《蘭畹集》에는 寇萊公(寇準)의 〈陽關引〉이 실렸는데 그 내용이 호방하고 씩씩해 송별하는 노래 가운데 당연히 첫째가 된다.
그 노래도 왕우승의 이 절구를 채워 넣은 것으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변방의 풀빛에 안개 가득한 경치는 드넓은데, 渭水의 파도소리 흐느끼는 듯, 봄 아침에 비 개어 가벼운 먼지 가라앉자 전쟁터 가는 말 떠나누나.
푸르고 푸른 버드나무 가리키고, 또 가볍게 잡아 꺾느니, 나도 모르게 암담해져 뒤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
○ 시를 지을 때 뜻을 가지고 시어를 끌어가지 말고 시어를 가지고 뜻을 전달해야 한다.
시어가 뜻을 잘 전달해야 노래하고 읊조리면 전해질 수가 있다.
王摩詰의 ‘陽關無故人’이란 구절은 盛唐 이전에는 누구도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 시구가 나오자 한 번에 傳誦하기에는 부족해 세 번 반복해 노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뒤에 이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수많은 말을 지어내도 거의 이 시의 뜻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드시 이와 같아야 뜻을 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 李滄溟(李攀龍)은 王昌齡의 ‘秦時明月漢時關’(〈出塞〉)을 추숭하여 압권으로 삼았고, 王鳳洲(王世貞)는 王翰의 ‘葡萄美酒夜光杯’(〈涼州詞〉)를 추숭하여 압권으로 삼았다.
本朝(淸)의 王阮亭(王士禎)은 말하기를 “꼭 압권을 찾는다면, 王維의 ‘渭城朝雨浥輕塵’(〈渭城曲〉), 李白의 ‘朝辭白帝彩雲間’(〈早發白帝城〉), 王昌齡의 ‘奉帚平明金殿開’(〈長信怨〉), 王之渙의 ‘黃河遠上白雲間’(〈涼州詞〉)이 가까울 것이다.
唐代를 통틀어 이들 네 작품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라고 하였다.
滄溟과 鳳洲는 氣를 중심으로, 阮亭은 神을 중심으로 본 것으로 각자 자신의 견해가 있다.
내가 생각건대, 李益의 ‘回樂烽前沙似雪’(〈夜上受降城聞笛〉), 柳宗元의 ‘破額山前碧玉流’(〈酬曹侍御過象縣見寄〉), 劉禹錫의 ‘山圍故國周遭在’(〈金陵五題‧石頭城〉), 杜牧의 ‘烟籠寒水月籠沙’(〈泊秦淮〉), 鄭谷의 ‘揚子江頭楊柳春’(〈淮上與友人別〉)은 氣象은 전혀 다르지만 또한 매우 근접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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