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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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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昌齡
秦時明月漢時關
不敎胡馬渡
[集評]○ 此詩可入神品 秦時明月四字 橫空盤硬語也 人所難解 - 明 楊愼, 《升庵詩話》 卷2
○ 李于鱗言 唐人絶句 當以秦時明月漢時關壓卷 余始不信以少伯集中有極工妙者
旣而思之 若落意解 當別有所取
若以有意無意 可解不可解間求之 不免此詩第一耳 - 明 王世貞, 《藝苑巵言》 卷4
○ 王少伯七絶宮詞閨怨 盡多詣極之作
若邊詞 秦時明月一絶 發端句雖奇 而後勁尙屬中駟
于鱗遽取壓卷 尙須商榷 - 明 胡震亨, 《唐音發簽》 卷10
○ 秦時明月漢時關 懷古情深 隱隱自負
後二語其意顯然可見 因知秦征漢戰 勒絡著績能有幾人
唐解匈奴之征起于秦漢
至今勞師千里之外者 以將之非人也 - 明 陸時雍, 《唐詩鏡》 盛唐 卷4
○ 悲壯渾成 應推絶唱 - 淸 宋宗元, 《唐詩箋》 卷15
○ 秦漢二字分裝以就句結 不必泥定說
龍城 見衛靑傳
守邊貴得良將 將在邊 卽可倚爲萬里長城矣
如其不然 則置關而守 終非良策 徒苦國中征戍之人而已
千古守邊大議論 借征夫口中寫出
中晩絶句 涉議論便不佳 此詩亦涉議論 而未嘗不佳
此何以故
風度勝故 情味勝故 - 淸 黃生, 《唐詩摘抄》 卷4
○ 秦時明月一章 前人推獎之而未言其妙
蓋言師勞力竭而功不成 由將非其人之故
得飛將軍備邊 邊烽自熄 卽高常侍燕歌行歸重至今人說李將軍也 - 淸 沈德潛, 《說詩晬語》
○ 秦時明月一首 黃河遠上一首 天山雪後一首 皆邊塞名作 意態雄健 音節高亮 情思悱惻 令人百讀不厭也 - 淸 施補華, 《峴傭說詩》


〈변방을 나서며〉
왕창령
秦나라 때의 달, 漢나라 때의 관문
만 리의 먼 길 떠난 사람 돌아오지 않았네
다만 龍城에 날랜 장군만 있다면
오랑캐 말 陰山을 넘어오지 못하게 할 텐데
[集評]○ 이 시는 神品에 들 만하다. ‘秦時明月’ 네 글자는 허공을 가로지르듯 新奇한 말이니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 李于鱗(李攀龍)이 말하기를 “唐人의 絶句 중에는 ‘秦時明月漢時關’이 당연히 압권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처음에 《少伯集》 안에 지극히 공교롭고 오묘한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생각해보니 똑 떨어지듯이 이해가 되어, 마땅히 따로 취해야 할 바가 있었다.
만일 뜻이 있든 없든 또는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간에 그것을 찾아본다면, 이 시를 제일로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王少伯(王昌齡)의 七言絶句 宮詞인 〈閨怨〉은 조예가 깊은 작품들이 많다.
邊塞詩의 경우, 絶句인 ‘秦時明月’은 시작하는 구절이 비록 奇異하긴 하지만 후반부가 굳세어서 오히려 中品에 속한다.
于鱗(李攀龍)이 성급하게 이것을 壓卷으로 삼았는데, 모름지기 검토해봐야 한다.
○ ‘秦時明月漢時關’은 懷古의 정이 깊으며, 은연중에 자부심이 담겨 있다.
뒤의 두 구절은 그 뜻을 분명히 볼 수 있으니, 이로 인하여 秦나라와 漢나라의 정벌 전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내몰았는지 알 수 있다.
은 匈奴의 征伐이 秦漢 때 시작되었다고 이해했다.
지금까지도 천 리 밖에서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장수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슬픔과 장엄함이 어우러져 있으니, 응당 絶唱으로 推仰해야 한다.
○ ‘秦漢’ 두 글자를 나누어 꾸며 은연중에 결합시켰으니, 定說에 구애될 필요 없다.
‘龍城’은 〈衛靑傳〉에 나온다.
변방을 수비하는 것은 훌륭한 장수를 얻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장수가 변방에 있다면 곧 萬里長城처럼 의지할 만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관문만 만들어놓고 지키며 끝내 좋은 계책이 없어 다만 나라 안의 수자리 살러 가는 사람만 고생시킬 뿐이다.
천고에 변방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의론이, 수자리 살러 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빌려 묘사하였다.
中唐‧晩唐의 絶句는 議論을 거치면서 아름답지 않게 되었는데, 이 시는 또한 의론을 거쳤으면서도 일찍이 아름답지 않은 적이 없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風度가 뛰어나기 때문이고, 情味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 ‘秦時明月’ 한 편은 先人들이 推獎하긴 했지만 그 오묘함을 말하지는 않았다.
대개 군사들이 수고하여 힘을 다 쓰는데도 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장군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날랜 장군을 얻어 변방을 지킨다면, 변방의 봉화는 저절로 그칠 것이니, 이는 곧 高常侍가 〈燕歌行〉에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장군을 말한다.[至今人說李將軍]’를 중하게 여긴 뜻이다.
○ ‘秦時明月’(王昌齡, 〈出塞〉), ‘黃河遠上’(王之渙, 〈出塞〉), ‘天山雪後’(李益, 〈從軍北征〉), 이 시들은 모두 변새시의 명작이다. 그 정취는 씩씩하고 굳세며, 音節은 높고도 밝으며, 그 뜻은 말 못할 울분을 담고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백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게 한다.


역주
역주1 出塞 : 樂府詩 〈橫吹曲〉의 舊題로서, 唐代에는 ‘新樂府辭’였다.
역주2 萬里長征人未還 : 지금 보는 달빛은 秦나라 때의 달이며, 관문은 漢나라 때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秦나라 때는 萬里長城을 축조하여 흉노를 방비하였으며, 漢나라 때는 흉노가 침입하여 漢軍과 충돌하는 일이 더욱 잦았다. 그래서 ‘秦月’과 ‘漢關’을 나란히 들어서 뜻을 나타내었는바, 關塞는 옛날 그대로인데 변방의 우환이 그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3 但使龍城飛將在 : ‘但使’는 ‘다만 ~하기만 한다면’의 뜻이다. ‘龍城飛將’은 衛靑과 李廣의 일을 합쳐서 쓴 것으로, 위엄으로 敵境을 떨게 하는 名將을 가리킨다. ‘龍城’은 지금의 漠北塔果爾河 지역인데, 한나라 때 흉노족이 크게 모여 祭天하던 곳이다. 《漢書》 〈衛靑霍去病傳〉에 “元光 6년에 위청이 흉노를 쳐서 용성에 이르러 오랑캐 수백 명을 참수하였다.[元光六年 靑擊匈奴至龍城 斬首虜數百]”라고 하였다. ‘飛將’은 漢나라 때 변방을 수비했던 李廣 장군을 말한다. 《史記》 〈李將軍列傳〉에 “이광이 右北平에 거하니, 흉노들이 그것을 듣고 ‘漢나라의 飛將軍’이라 부르며 수년 동안 그를 피하였다.[廣居右北平 匈奴聞之 號曰漢之飛將軍 避之數歲]”고 하였다.
역주4 陰山 : 지금의 내몽고 중부에 있는데, 당시에 변방 밖의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역주5 唐汝詢 : 명나라의 문인으로, 字는 仲言, 華亭 사람이다. 《唐詩解》, 《唐詩十集》 등 당시에 대한 비평서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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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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