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適(700?~765)
盛唐시인으로, 자는 達夫‧仲武이며, 滄洲(지금의 河北省 景縣)사람이다. 邊塞詩에 뛰어나고, 岑參과 더불어 ‘高岑’이라 불린다.
젊은 시절 빈한하였으나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長安 등지에서 벼슬을 구하다 실패하자 宋中(지금의 河南 商丘일대)에 우거하였다. 이 시기에 李白‧杜甫 등과 교유하였다. 후에 天寶 8년(749) 50세 무렵 宋州刺史 張九皐의 추천으로 有道科에 급제하였으나 封丘尉라는 미관에 제수되자 실망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유랑하였다. 그 후 河西節度使 哥舒翰에게 인정받아 그의 書記가 되었다. 안녹산의 난 때 哥舒翰을 도와 潼關을 지켰는데 관군이 패배하자 패배원인을 왕에게 잘 진술한 공으로 侍御使가 되고 諫議大夫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직언으로 權臣 李輔國에게 미움을 받아 彭州刺史‧蜀州刺史로 좌천되었다. 후에 劍南節度使 등을 거쳐 관직이 左散騎常侍에 이르렀고, 渤海縣侯에 봉해졌다.
현재, 시집인 《高常侍集》과 편찬서인 《中興間氣集》이 전한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품으로 〈燕歌行幷序〉 〈送李少府貶峽中王少府貶長沙〉가 있다.